Ⅱ-4 아마추어 필자시대

‘이순신의 두 얼굴’ 딱정벌레 왕국의 여행자’ ‘물고기 열하일기’ ‘클릭을 발명한 괴짜들’ ‘현산어보’. 최근 1~3년 사이 나온 책들이다. 제각기 다른 주제를 다뤘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저자들이 모두 ‘아마추어’라는 사실. 여기서 아마추어란 단지 사회적 통념과 도식에 따른 분류일 뿐 전문지식의 결여를 뜻하는 건 아니다. 실제 이들은 책 1권으로 자기 존재를 당당히 알린 해당 분야의 고수 아닌 고수들이다.

바야흐로 ‘아마추어 필자 시대’다. 전문가가 출판을 독점하던 시대는 끝났다. 세상은 미세하게 분화되었고 그만큼 틈새도 많아졌다. 학자와 연구원의 몫으로만 둘 수 없을 만큼 지식의 범람은 보편화되었다.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아마추어 마니아들이 지식과 정보를 가공하는 일은 이제 흔전만전한 현상이다.

[책읽는 대한민국] Ⅱ-4 아마추어 필자시대

이들은 책을 통해 얻은 지식, 혹은 현장에서 획득한 정보를 축적해 다시 책이라는 새로운 생산물을 만들어내면서 출판 시장에 탄력을 가하는 주인공이다. 아마추어 필자들의 등장은 지식의 민주화, 지식의 시민화 산물이다.

지난해 ‘이순신의 두 얼굴’(창해)을 낸 회사원 김태훈씨(41)는 처음에는 그저 책읽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독자였다. 그러다 전쟁영웅과 전쟁사 쪽으로 관심을 집중했고 그의 지적 탐구는 이순신으로까지 비약했다. 김씨는 “전쟁만큼 인간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할 수 있는 분야가 없다”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한니발, 카이사르, 나폴레옹 등의 인물에 관심을 갖고 관련 서적을 탐독하다가 한국의 전쟁 영웅 이순신으로 관심이 옮겨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중에는 성인을 위한 이순신 서적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어린이 혹은 청소년용 책들은 찬사만 잔뜩 늘어놓았을 뿐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한계까지 다룬 책은 구할 수 없었다.

“기존의 이순신 이야기로는 임진왜란이라는 큰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죠. 답답한 마음에 제 스스로 ‘난중일기’ ‘징비록’ ‘임진장초’ ‘선조실록’을 차례 차례 섭렵해 나갔습니다. 지식이 조금씩 쌓이면서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는 좋아하던 술자리를 크게 줄이고 휴일은 거의 반납하다시피 하며 책 1권을 완성해냈다.

아마추어들의 관심 영역도 크게 확장됐다. 인물, 역사, 예술이라는 고전적인 관심 분야에서 곤충, 생태, 요리, 운동, 패션, 사진, 미용 등 다방면으로 넘나들며 지식을 밭갈이하고 있다.

‘딱정벌레 왕국의 여행자’(사이언스북스)는 아마추어의 장점이 돋보이는 책이다. 딱정벌레에 관한 교양서, 안내서로는 이만한 성과물을 찾기 힘들다는 평가다. 회사원인 저자 한영식씨(31)는 1992년 강원대 생물학과에 진학한 뒤 곤충 쪽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국내에 딱정벌레에 관한 변변한 도감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책을 쓰게 된 결정적인 동기였다”고 말했다. 그 뒤 10년 넘게 현장을 누비면서 딱정벌레만을 관찰했다.

한씨는 “곤충학자들은 좁은 영역을 깊이 알겠지만 넓은 부분을 다루는 데는 아마추어들에게 강점이 있다”며 “이 책이 딱정벌레가 어떤 존재라는 걸 일반인에게 알리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친 김에 ‘반딧불이’에 관한 책을 낼 생각이다.

‘물고기 열하일기’(다인아트)를 쓴 김대민군(19)의 사례는 독서에 대한 부모의 관심이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말해준다. 그는 고교시절 이 책을 펴내면서 지난해 고려대에 과학특기자로 들어갔다.

“5살 때 경기도 수원에 살았는데 저수지에 놀러갔다가 떼죽음당한 물고기를 본 뒤 물의 생태계와 물에서 사는 생명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아버지의 도움이 컸습니다. 아버지는 최기철 교수의 ‘한국민물고기도감’ 등 전문서적을 많이 사주셨고 야외에도 데려가 주셨어요.”

그는 “민물고기에 관한 책들을 탐독하면서 많이 알게 되니까, 많이 보이고, 이 생물체를 더욱 사랑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학창시절 12년 동안 이렇게 관찰한 기록을 정리한 것이 책으로 탄생하게 됐다.

고교 생물교사 이태원씨(33)가 손암 정약전의 저서 ‘현산어보’를 재해석한 생물학 저서 ‘현산어보를 찾아서’(청어람미디어)는 재작년말 출간되자마자 큰 화제를 뿌렸다. 열정적인 취재와 전문지식, 글솜씨가 어우러진 이 책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 저자가 방학을 이용해 먼 섬을 수도 없이 들락거린 끝에 일궈낸 이 성과물은 아마추어 필자들의 신화로 두고 두고 회자될 것이다.

소프트웨어 컨설턴트인 강태훈씨(42)는 최근에 출간한 ‘클릭을 발명한 괴짜들’(궁리) 겉표지 날개에 이런 말을 적었다. ‘관심 분야는 핵무기를 포함한 무기 발달사, 통속 과학 수준의 핵물리학, 남미 고대 문명, 음모론 등이다.’ 공대를 졸업한 뒤 자동차 회사 연구원, CAD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으로 일한 그는 이처럼 다양한 자신의 관심 분야를 언젠가는 책으로 출간한다는 계획이다.

이번에 낸 ‘클릭을…’은 인터넷에 관한 이야기로 7년 넘게 자료를 모으고, 외국책을 사서 탐독한 성과물이다. 인터넷이 삶의 주요 수단이 된 뒤로 그와 관련한 책들이 쉴새 없이 쏟아지고 있지만, 각도만 달리하면 얼마든지 글쓰기의 틈새를 찾아낼 수 있음을 그는 보여주고 있다.

강씨는 “요즘은 북핵문제와 동북아 비핵지대론으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핵무기 쪽에 관심을 갖고 공부 중이며, 앞으로 집필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개그맨이면서 방송 사회자인 정재환씨는 ‘우리말글 지킴이’라는 본업 같은 부업을 갖고 있다. 명함에는 아예 ‘한글문화연대 부대표’라고 찍혀 있다. 그는 최근 ‘대한민국은 받아쓰기중’(김영사)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생활현장 속의 생생한 사례들로 엮은 우리말 교양서다. 활동 초기에 방송에서 말을 잘못 사용한 것이 우리말과 글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수없이 많은 아마추어들이 자기만의 전문 영역을 개발해 책이라는 생산물로 쏟아내고 있다. 여기서 베스트셀러가 탄생하기도 하고 스타 작가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같은 출판시장 다변화의 뿌리는 결국 책이다. 책이 아마추어들을 단련시키고 이들이 다시 ‘틈새 지식’을 생산하는 선순환 구조를 갖는 것이다.

〈조장래기자 jo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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