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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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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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 징용자 유골 봉환 합의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지난 25일 서울 마포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홍걸 대표상임의장은 “북한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남북교류가 지속되려면 보수세력도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민화협이 이를 위해 적극 나서달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지난 25일 서울 마포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홍걸 대표상임의장은 “북한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남북교류가 지속되려면 보수세력도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민화협이 이를 위해 적극 나서달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4·27 정상회담 만찬에 홍준표 대표 등 보수 야당 인사를 부르지 않을 것을 북한이 몹시 아쉬워했다는 이야기를 회담 직후 북한 소식에 정통한 중국 측 인사로부터 들었었어요. 그때는 긴가민가했는데, 이번에 평양을 방문하면서 사실임을 알게 됐죠. 김영대 의장(북한 민화협 의장·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이 제게 정치인, 경제인을 망라하여 중도, 보수세력까지 남북교류에 참여하도록 민화협이 적극 나서달라고 요구했거든요.”

지난 25일 만난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54)은 앞서 16~19일 방북해 만난 북측 인사들과의 대화 내용을 이같이 밝혔다. 그는 “북한은 한국이나 미국 정권이 몇년 후엔 바뀔 것이고, 설령 바뀌지 않더라도 야당의 협조가 있어야 남북교류가 활성화될 수 있음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남북의 모든 교류가 중단되는 전례를 북한이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과, 지속적인 경제개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김홍걸 의장은 남한 정부를 향한 북측의 불만을 전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평화체제 구축에 강한 의지와 실력을 갖췄는지에 대해 북한이 아직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남북한 민화협은 이번 평양 회담에서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 봉환사업에 합의하고, 공동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추진키로 했다.

- 이번 방북은 어떻게 이뤄진 겁니까.

“정식 제안은 올 4월에 했어요. 작년에 일본의 정계·종교계·시민사회단체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일제 때 강제징용된 희생자들의 유골 봉환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해볼 만한 상황이 됐다고 판단했거든요. 올 들어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북한과도 같이할 수 있으면 민족동질성 회복에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이를 마중물로 해서 앞으로 더 어려운 일도 함께 이뤄내기로 했어요.”

- 평양 방문은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때 이희호 여사와 조문차 방북한 후 7년 만이죠. 7년 전 김정은 위원장의 인상은 어땠나요.

“당시 긴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어요. 위로의 말을 하고 그쪽에선 와줘서 고맙다고 했죠. 당시 김정은 위원장은 앳되고 약해 보였어요. 그런데 불과 넉달 후 태양절(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15일)에 김일성광장에서 연설하는 그의 모습을 TV를 통해 보곤 놀랐어요. 카리스마가 넘치고 강해 보였기 때문이에요.”

- 7년 전과 비교하면 평양의 거리라든가, 분위기는 지금 어떻게 달라졌던가요.

“고층건물이 많이 들어서고 길에 택시도 많이 다니고, 7년 전에 비해 훨씬 활기가 넘쳤어요. 대북 제재가 믿기지 않을 만큼, 경제가 어느 정도 돌아가는 모습이었어요. 중국의 북한 전문가 얘기로는 평양 시내 주요 대학 인근에 과학자들을 위한 주거복합단지를 대대적으로 건설했다고 해요. 최고 엘리트인 과학자그룹이 장사나 기업 투자로 돈을 번 신흥 중산층에 비해 벌이가 나쁜 데서 나올 수 있는 사회적 불만을 잠재우려는 목적도 있다고 해요.”

- 유엔 안보리의 ‘사상 최강의 제재’ 속에서 어떻게 그런 발전이 가능했을까요.

“북측 주장에 의하면 원래 김일성 주석 집권 초부터 북한은 자족경제, 자력갱생 시스템을 구축해 웬만한 것은 다 만들어 쓴다고 해요. 개방경제인 우리와는 시스템 자체가 달라, 제재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이 훨씬 강한 게 아닌가 싶어요.”

북측 고위층 인사 3명 만났는데
판문점선언했으면 실천해야지
유엔 제재 핑계 대며 주저하니
이도 저도 못한다는 불만 들어

- 방북 기간 동안 누구를 만났고 어떤 대화가 오갔습니까.

“북측 민화협 의장인 김영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과 양철식 민화협 부위원장, 이택건 통일전선부 부부장을 만났어요. 김 의장은 어머니(이희호 여사)의 건강과 안부를 묻고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의 소회와 일화들을 들려줬어요. 남북 수뇌부(김정일, 김대중)의 유지를 받들어 공동번영의 미래를 열자고 하면서 특히 통일 문제에 관심 없던 중도, 보수세력까지 민화협이 앞장서 남북교류에 참여시켜달라, 적극적으로 데려와달라 요구했어요.”

- 보수세력을요.

“네. 김영대 의장은 보수 정치인과 경제인까지 다 남북교류사업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달라고 했어요. 4·27 정상회담 만찬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등 보수 야당 인사를 부르지 않은 것을 북측이 몹시 아쉬워했다는 이야기를 정상회담 직후 북한 소식에 정통한 중국 측 인사로부터 직접 들었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어요. 그런데 이번 방북에서 사실임을 확인하게 된 거죠.”

- 배경이 뭘까요.

“북한은 한국이나 미국의 정권이 몇년 후에는 바뀔 것이고, 설령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야당의 협조가 있어야 남북교류가 활성화될 수 있음을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야당이나 차세대 주자들과도 두루 사귀어놓고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정상회담 만찬, 야당 인사 배제
북한이 아쉬워했다고 들었는데
이번엔 보수도 모셔오라 요청
정권교체·정치상황까지 고려한
장기적인 교류를 원하는 듯

- 정상회담 만찬에 홍준표 당시 대표를 부르지 않은 것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행여 불쾌한 질문을 할까봐 염려해서라는 항간의 추측도 있었어요.

“김정은 위원장은 당시 그런 상황을 크게 개의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나중에 청와대에서 들려온 이야기로는 (홍 대표를) 초청했지만 거절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진실이 뭔지는 몰라요.”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 지난 18일 만수대 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이기도 한 김영대 북한 민화협 의장과  남북 공동으로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 봉환을  합의한 후 악수하고 있다. 민화협 제공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 지난 18일 만수대 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이기도 한 김영대 북한 민화협 의장과 남북 공동으로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 봉환을 합의한 후 악수하고 있다. 민화협 제공

- 이번에 만난 북측 인사들은 남한 정부가 남북 교류협력 사업들을 미루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면서요.

“판문점선언을 했으면 본격적으로 실천해야지 왜 주저하느냐, 유엔 제재 핑계를 자꾸 대는데 그러면 이도 저도 못하지 않느냐는 불만을 토로했어요. 남쪽이 유엔 제재를 어겼다는 소리를 들을까 너무 몸을 사린다는 거죠. (2007년부터 남북 공동발굴조사를 벌여온) 개성 만월대 고려유적 발굴사업도 많은 인원이 북한에 장기체류하면 숙식비 총액이 꽤 크잖아요. 유엔 제재상 안된다고 한 것 같아요. 북측에서는 그런 식이면 아무것도 못한다, 남쪽이 과감하게 안 한다, 이런 불만이 있는 거죠.”

- 북한이 최근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대남 비난을 계속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일까요.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쓸데없는 훈시질’ 말라고 격한 반응을 보였고, 가장 최근에는 우리 정부의 경제정책까지 거론하며 ‘민생 파탄’을 운운했잖아요.

“판문점선언 후 가시적 성과가 안 나오니까 북한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거라 생각해요. 북측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에요. 미국이 제재는 풀지 않고 북한에만 양보하라고 하니까요. 하지만 노동신문 논평과 같은 공개비판은 남한 정부의 발목을 잡을 수 있으니, 불만이 있으면 회담 등을 통해 비공개로 의견을 내놓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 2002년 5월, 당시 야당 의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의 큰 환대를 받았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자녀의 만남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컸죠. 햇볕정책을 펼친 DJ의 아들이면 더 고위급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시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잠시 생각하더니)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남북관계의 개선 속도가 좀 느려진 상태이고, 남한 정부에 대해 북측이 불만 있는 터라 쉽지 않았을 거예요.”

야스쿠니에도 조선인 유골 안치
사찰 등 종교시설에도 2200구
DMZ에 평화공원 조성되면
남북 함께 이장 후 참배 계획

- 이번 방북 성과는 남북 민화협이 공동으로 일본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 봉환에 합의했다는 점이에요. 그런데 그동안에도 희생자들의 유골 봉환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에요. 이전 봉환사업들과 어떤 차이와 의미가 있는 건가요.

“그간에도 유골 봉환이 조금씩 이뤄졌지만 범민족적인 사업이 되지는 못했어요. 국민 대다수가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이 일본에 남아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요. 국민들께 널리 알리고 북측까지 참여시켜 명분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요. 일본을 상대할 때 남북이 따로 움직이면 일본 측에서 이를 악용할 수 있지만, 남북이 뭉치면 훨씬 효과적으로 일본 측에 대응할 수 있어요.”

- 봉환해야 할 유골은 몇구나 되나요.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는 60만~70만명인데, 현재 일본 내 사찰에 모셔진 것으로 파악된 유골은 2200구 정도예요.”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 지난 18일 평양 보통강호텔에서 리택건 통일전선부 부부장, 양철식 북한 민화협 부의장과 면담하고 있다. 민화협 제공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 지난 18일 평양 보통강호텔에서 리택건 통일전선부 부부장, 양철식 북한 민화협 부의장과 면담하고 있다. 민화협 제공

- 남북은 어떻게 공동으로 일본과 협상할 계획인가요.

“유골은 대부분 종교시설에 안치돼 있어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상관없지만, 비협조적이면 일이 쉽지 않겠죠.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전범들과 함께 모셔진 조선인 희생자들의 위패를 옮기는 문제도 추진할 계획이에요. 억울하게 희생됐는데 죽어서도 일본의 수호신이 되어 있다니, 말이 안되잖아요.”

- 북한은 일본과 수교가 안되어 있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북한은 직접 나서기 쉽지 않은 상황이죠. 일단은 남북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명분을 살리고 실질적인 협력은 북한을 대신해 조총련이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유골 봉환 후엔 어디에 모시나요.

“무연고 유골이 대부분인데, 이 경우 제주에 임시로 모셨다가 남북 간 평화협정 등이 이뤄지면 비무장지대(DMZ)에 조성되는 평화공원으로 옮겨서 남북이 공동참배하는 안을 북측과 논의 중이에요.”

올해는 민화협 창립 20주년
9월 북 인사 초청 등 행사 준비
거의 매주 실무접촉도 합의

- 이 사업 외에 남북한 민화협의 향후 계획도 있나요.

“일단 원론적으로 합의한 게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고 거의 매주 실무접촉을 갖자는 거예요. 또 올해는 남과 북의 민화협 창립 20주년이에요. 올 9월 북한 민화협 관계자들을 남한에 초청하고 10월엔 남북이 공동으로 금강산 같은 곳에서 남북한 각계각층의 상봉 행사를 추진할 계획이에요.”

- 북한이 외자를 유치해 경제를 일으키다보면 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북한이 롤모델로 삼는 국가 유형이 있을까요.

“저는 북한만의 모델을 만들지 않을까 생각해요. 실제로 북한 소식통에게 들은 바로는 북한이 여러 나라의 모델을 연구하고 있다고 해요.”

- 미사일 핵실험장 철거에 이어 26일 미군 유해 송환이 이뤄졌지만 강한 대북 제재를 강조하는 미국의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우리 정부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북한은 미국도 100% 신뢰하지 않지만 남한 정부에 대해서도 평화체제 구축에 강한 의지와 실력을 갖췄는지 신뢰하지 못하고 있어요.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정도는 믿지만요. 우리가 그 이상의 신뢰를 주려면 적극적 의지 표명과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실력을 보여줘야 해요.”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 지난 16~19일 3박4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하면서 촬영한 평양의 야경. 민화협 제공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 지난 16~19일 3박4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하면서 촬영한 평양의 야경. 민화협 제공

김대중 전 대통령의 셋째아들인 그가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에 취임한 것은 지난해 12월이다. 그는 “민화협이 이명박·박근혜 정부하에서 워낙 침체를 겪다보니 과거처럼 고위공직을 지낸 원로가 의장을 맡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젊은 제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뛰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이 민화협 내부적으로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사전 교감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뵐 기회가 있었을 때 민화협에 가려고 한다고 말씀드렸다”며 “대통령께서는 잘해보라고 덕담을 해주셨다”고 답했다.

- 아버지의 유업을 잇는다는 점에서 감회와 각오가 남달랐겠어요.

“생전에 아버지는 정부 역할만큼 민간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셨어요. 정부 간 협상이 어려울 때 민간에서 여러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민화협을 만드셨죠. 지금처럼 좋은 시기에 제가 역할을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민화협이 겪은 어려움은 어느 정도였나요.

“이명박 정부 때는 김덕룡 의장이 이끄시면서 그나마 기본적 활동을 정부가 방해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는 홍사덕 의장이 뭔가 해보려고 해도 정부에서 너무 비협조적이다보니 번번이 벽에 부딪혔죠. 와서 보니 직원들 월급은 몇개월치나 밀려 있고, 직원 수도 10명에서 6명으로 줄어 있었어요.”

- 이희호 여사와 두분 형님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어머니는 연세(96세)가 워낙 많아 기력이 약하셔서 외출을 못하고 집에 계실 때가 많아요. 파킨슨병 악화로 10여년간 거동을 못한 큰형님(홍일)은 집 밖에 전혀 못 나오시고, 둘째형님(홍업)도 외부 활동을 거의 안 하고 계세요.”

-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식들에게 어떤 아버지였나요.

“어려서부터 아버지와는 대화를 나눌 틈이 없었어요. 제가 어릴 때는 국회의원이라 바쁘셨고, 중학생 때는 감옥생활을 하셨으니까….(그는 엄하고 무뚝뚝한 아버지였느냐고 질문을 고쳐 묻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다. 사진촬영을 위해 웃어달라는 주문을 하자 그는 어색해하면서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석우기자 foto0307@kyunghyang.com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다. 사진촬영을 위해 웃어달라는 주문을 하자 그는 어색해하면서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석우기자 foto0307@kyunghyang.com

- 가장 인상적이었던 아버지의 모습은 어떤 거예요.

“6·15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오셨을 때 모습이오. 대통령 당선 때나 감옥에서 나오셨을 때보다 기뻐하시는 것처럼 보였어요. 집 식구들을 다 모아놓고 만면에 미소를 띤 채 평양에 다녀온 이야기를 오래 하셨어요. 아버지 인생에서 그때가 가장 행복해 보였어요.”

- 김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중 세 아들이 모두 비리에 연루됐어요. 김홍걸 의장은 2002년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됐었는데,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아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아버지께서 큰 충격을 받고 제게 실망하셨죠. 길게 말씀은 안 하셨지만 당시에는 ‘조심하라고 했는데 왜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서 일을 당하고, 앞길이 창창한 나이에 족쇄가 되도록 했는가’, 그 점을 안타까워하셨어요.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세상물정에 어둡고 순진한 너를 돌봐서 안 좋은 꼬임에 넘어가지 않도록 했어야 했는데 못해서 안타깝다’고 말씀하셨고요.”

그는 당시의 일을 말할 때 목소리가 다소 잦아들었다. 그는 “아버지께 크게 죄송하게 느끼는 부분은 사건 이후 아버지가 바라셨던 방향으로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점”이라며 “2016년 4월 야권 분열 속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정치를 시작했고, 이후의 2년간을 돌아보면 아버지께서 지하에서 지켜보시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제게 일을 시켜봐야겠다고 하신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 아버지의 후광 덕분에 정치도 하고 민화협 의장도 하는 것이라는 시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6월 지방선거 때 저의 전남 차출설이 나와서, 저는 고려는 해보겠다는 수준의 원론적 말만 했을 뿐 선거운동이라고 할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자꾸 언론에 보도되니까 젊은층에선 저를 두고 금수저로 거저먹으려 한다고 했죠. 저는 2015년에 문재인 대통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이 비례대표 주겠다고 한 것도 거절한 사람이에요. 대선 후에도 자리를 달라고 조르지 않았고요. 제가 잘되면 누구 아들이라 잘되는 것이고, 못되면 누구 아들인데 저것밖에 못한다고 할 거예요. 어느 쪽이든 좋은 소리를 못 듣는다고 생각해요.”

-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생각이 있고 수도권 출마를 염두에 둔 것으로 알아요. 다음 총선에 적극 나설 생각인가요.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만, 오로지 그것만 목표로 뛰는 것은 아니에요.”

- 2016년 2월 민주당의 동교동계가 국민의당으로 대폭 빠져나간 이후 2년간 박지원 의원과 공개적인 언쟁이 계속됐어요. 지금은 관계가 좀 어떤가요.

“나쁠 것도 좋을 것도 없어요. 다만 그분이 어떤 정치를 하시든 아버지의 철학을 왜곡하거나 어머니를 끌어들이지는 마시라는 거예요. 박 의원을 포함해 당시 국민의당으로 가신 분들이 호남정치 어쩌고 하면서 아버지의 정치를 계승한다고 했는데, 사실은 자기들이 공천 떨어질 것 같으니까 야권 분열 책동을 하면서 그렇게 포장한 거잖아요.” 

서울 마포의 민화협 사무실에서 이뤄진 인터뷰는 2시간여 이어졌다. 그는 말할 때 발음을 또박또박 정확하게 구사하는 습성이 있었고, 표정에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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