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기간 ‘비명횡사 친명횡재’ 논란, 전형적인 진영 갈라치기 아닌가
막판에 비명 후보들 많이 구제…박용진은 잘못을 자기 자신에게 찾길
의원들 합의한 공천룰 따르고 총선 뒤에 보완책 마련하는 게 바람직
42.5%를 새 얼굴로 바꾼 현역 교체율이 혁신 공천의 바로미터라 생각
언론, 민주화 공로 우려먹는 의원들 옹호…비명계 입장만 들으면 안 돼
이재명 대표 2선 후퇴? 총선 전쟁 속에서 지휘 장수 바꾸는 게 정상인가
지난 22일 후보자 등록이 마감되면서 4·10 총선이 본격화됐다. 공천 잡음은 선거 때마다 있지만, 올해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내홍은 깊은 상흔을 남겼다. 임종석의 컷오프(경선 배제), 하위 10% 감산 잣대가 적용된 박용진의 경선 탈락 때 갈등의 진폭이 컸고, 그 후에도 곳곳에서 ‘비명횡사 친명횡재’ 불만이 터져나왔다. 254개 지역구에 공천된 비명계는 4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이재명의 민주당’ 색깔은 한층 더 짙어졌다.
이 공천 실무 작업을 한 임혁백 민주당 총선 공천관리위원장(72·고려대 명예교수)을 지난 21일 서울 영등포구 민주당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오직 시스템에 의해 공천했다”면서도 “(혁신 공천에 대한 반발이 일면서) 막판에 전해철에게 경선 기회를 주고 이인영은 단수공천하는 등 비명 후보들을 많이 구제해줬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를 연구한 원로 정치학자 입장에서도 공천 과정이 공정했다고 자신하느냐는 질문에는 “민주당 의원들이 스스로 선택한 공천 시스템”이라며 “불만이 있어도 일단 수용한 후 선거가 끝난 다음 보완책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한 태도”라고 답했다. 임 위원장은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하위 10%, 20%에 대한 감점을 좀 완화하는 게 낫지 않겠나 본다”고 했다.
- 공천 결과에 대해 스스로 몇점을 주시겠습니까.
“스스로 점수를 매기는 것은 오만한 겁니다. 국민들이 4월10일 총선에서 점수를 주시겠죠. 다만 현역 의원 교체율이 혁신 공천의 바로미터라고 생각합니다. 40% 이상 교체됐다면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민주당은 42.5%를 새 얼굴로 바꿨습니다.”
- 공관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은 누구로부터 받았나요.
“첫 외손주가 태어나 미국의 딸 집에 머물던 작년 12월28일에 이재명 대표가 전화를 했습니다. 고민 후 수락했고, 이튿날 바로 한국 언론에 임명 보도가 나왔죠.”
- 지난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대표를 지원하는 정책그룹 ‘세상을 바꾸는 정책(세바정 2022)’ 자문단에 이름을 올렸지요. 이 대표와 이전부터 친분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자문단엔 수천명이 들어가 있었고, 나는 이전까지 이 대표와 대화를 나누거나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 어떤 마음으로 공관위원장직을 수락했나요.
“두 가지 이유가 있죠. 우선 나는 김대중 정부 5년간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에서 정치행정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했습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김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 정당 개혁을 하라며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을 당대표로 임명했죠. 나는 한 대표에게 대통령의 당 총재 겸임 구조부터 바꾸고 대선후보 결정 방식을 미국의 오픈 프라이머리 같은 개방형 경선제(국민참여경선제)로 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 결과 노무현 후보가 이인제 후보 등을 물리치는 돌풍을 일으키며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죠. 그러나 총선에선 국민참여경선이 지금껏 유명무실했고 밀실공천, 계파공천이 판쳤습니다. 그래서 이번 총선에서야말로 국민참여경선을 제대로 주도해보는 게 학자로서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 판단했습니다.”
- 또 다른 이유는 뭔가요.
“민주당의 승리에 기여해 검찰독재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급격히 퇴행시킨 윤석열 정부를 막겠다는 학자로서의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민주주의 제도를 공격하고, 아마존 열대우림을 파괴하며 극우정치를 한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정권과 매우 흡사합니다. 검찰과 사법부의 법 기술자들이 룰라 대통령을 부패 혐의로 투옥시킴으로써 탄생할 수 있었던 보우소나루 정권은 브라질의 민주주의와 경제를 완전히 무너뜨렸죠. 다행히 작년 10월 대선에서 룰라가 다시 집권하면서 정치가 정상화되고 경제도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 공천 기간 내내 ‘비명횡사 친명횡재’ 논란이 일었어요. ‘이재명의 사당화’를 위한 공천이었다는 말도 무성했고요.
“전형적인 진영 간 갈라치기죠. 예를 들어 부산은 민주당 후보 6명 중 5명을 단수공천했는데, 모두 비명입니다. 또 친명 중에서도 5선 안민석 의원을 비롯해 탈락한 분들이 적지 않아요. 오직 시스템 공천을 한 결과입니다. 전략공관위에선 정무적 판단을 우선해 시스템 공천을 하지 않지만, 공관위에선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 하지만 공천 잡음이 계속되면서 국민의 눈높이에서 시스템 공천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어요. 애초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공관위원장을 맡기 전에 만들어진 제도지만, 당이 현역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평가해 공천에 활용하는 시스템은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동의해 도입된 겁니다. 그러니 그 규칙을 의원들 스스로 어겨선 안 되죠. 평가 점수는 총 1000점인데, 정성평가가 120점, 다면평가가 100점이고, 나머지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780점은 입법 수행실적, 기여활동, 지역활동 등 객관적 데이터로 측정하는 정량평가입니다. 이를 통해 하위 20%에 해당한 의원들에게 감산(하위 10%는 득표의 30% 감산, 하위 10~20%는 20% 감산) 통보를 한 것이니, 근거 없는 감산이 전혀 아닙니다.”
우연이라 하기엔 과도하다. 현역 의원 평가 하위 20%에 든 31명 중 28명이 친문재인(친문)·비명계였다. 박광온·전해철·김한정·송갑석·박용진·윤영찬 등 비명계 의원은 감산 규정 때문에 경선에서 사실상 전멸했다. 임종석·홍영표는 컷오프됐고, 김종민·박영순·설훈에 이어 홍영표는 이낙연 공동대표의 새로운미래, 김영주는 국민의힘으로 합류하는 등 탈당도 이어졌다. 상당수가 “비명계 공천 학살”이라고 반발했다.
- 정성평가를 한 12명 평가위원들의 인위적 개입과 찍어내기가 가능하다는 점도 그렇지만, 의원들 간 다면평가 역시 주류가 비주류를 배제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맹점이 있는 것 아닌가요. 특히 다면평가는 작년 9월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직후 실시했고, 친명계에선 공개적으로 “가결표 던지는 의원을 색출하겠다”는 발언까지 나왔는데요.
“평가위원들이 어떻게 구성됐는지는 모르기 때문에 말씀드릴 수 없어요. 하지만 다면평가는 의원들만 하는 게 아닙니다. 당직자는 물론이고, 보좌관들도 자기가 모시는 국회의원을 평가했습니다.”
공천 파동의 정점은 민주당의 강북을 경선이었다. 3선에 도전한 현역 의원 박용진은 하위 10%에 해당해 페널티 30%(정봉주와 경선), 55%(조수진과 전략경선)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했다. 각각 막말, 성범죄자 변호로 정봉주와 조수진의 공천이 잇따라 취소됐음에도 당은 차점자인 박용진을 승계 공천하지 않았다. 결국 해당 선거구엔 친명 한민수 대변인이 벼락 공천됐다. 반면 순천은 차점자가 공천을 승계했다.
- 박용진 의원이 하위 10% 평가를 받은 것과 사실상 세 차례 고배를 마신 것은 2022년 8월 당대표 경선에 출마해 이재명 대표를 공개 비판한 데 따른 보복이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맹자의 ‘반구저기(反求諸己·잘못을 자신에게서 찾는다)’를 새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박용진 의원은 솔리터리맨(Solitary Man·외톨이)이에요. 그러니 의정활동 점수가 굉장히 낮죠. 당론을 채택하는 데 있어서 동료 의원과 협력적 행동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의원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 독불장군이어서 정량평가 점수까지 나쁘다?
“언론이 비명계 입장만 일방적으로 들으면 안 돼요. 우리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천을 했습니다. 참신하고 역량 있고 생각이 젊은 후보로 혁신 공천을 했죠. 언론이 옹호하는 집단은 민주화 공로만 가지고 평생을 우려먹으려는 국회의원들 아닙니까? 우리나라에서 정치의식이 가장 높은 지역이 광주예요. 그곳 지역구 8곳 중 7곳이 새 얼굴로 교체됐습니다. 광주시민들은 임혁백 공관위가 너무 잘했다며 고맙다고 인사합디다. 국민의 눈높이는 그것인데 기득권 정치인들에게 눈높이를 맞춘다면 언론이 제 역할을 하는 건가요?”
- 평가점수가 나쁘면 그 근거를 제시해주면 되지 않을까요. 홍익표 원내대표는 ‘현역 평가 하위 20% 자료 열람’ 등을 요청해 임 위원장이 이를 약속했는데 하루 만에 말을 바꿨다고 주장했습니다.
“공개를 못하게 돼 있어요. 홍익표 원내대표가 박용진 의원에게 평가보고서를 좀 보여주라고 부탁해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고 처음에 수락한 겁니다. 박 의원뿐만 아니라 이의신청을 한 나머지 두 사람의 평가보고서도 받아놨고요. 하지만 송기도 평가위원장(전북대 명예교수)으로부터 바로 전화가 왔어요. 비밀 규정이니 반드시 따라야 한다더라고요.”
- 박 의원의 재심 신청은 왜 공관위 회의 없이 위원장이 단독으로 기각했나요.
“공관위 2차 전체회의에서 하위 20% 통보와 이의신청 처리에 관한 모든 권한을 공관위원장에게 위임했고, 당규는 이의신청 처리에 있어서 절차상 명백한 하자가 없으면 기각하게 되어 있어서 제가 이의신청한 분들 모두 기각했습니다.”
- 2월6일 “윤석열 검찰정권의 탄생 원인을 제공한 분들 역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며칠 후 이재명 대표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등의 발언을 했는데, 사전에 이 대표와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한 적이 있나요.
“전혀요. 검찰정권이 들어선 후 민생이 어려워지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정권을 내준 문재인 정부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분들은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라는 차원에서 한 이야기입니다. 누구를 특정해서 한 말은 아니고요.”
- 실제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은 컷오프됐는데, 경기 하남갑에 전략공천한 추미애 전 법무장관에게는 책임이 없는 겁니까. 임 위원장은 얼마 전 추 전 장관을 두고 “윤석열 검찰총장의 검찰 쿠데타를 저지해 나라를 구한 잔다르크”라고 말씀하셨더군요.
“추 전 장관이 뭘 잘못했습니까?”
- 추 전 장관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공개 압박할수록 윤 총장의 인기가 올라갔습니다만.
“언론의 함정이죠.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은 정의로워야 합니다. 공자가 정치는 바르게 하는 거라고 하지 않습니까? 추 전 장관도 소신에 따라 바른말을 한 것인데 그게 왜 나쁘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 민주당 대선주자로서 패배한 이재명 대표는 어떤가요. 책임이 없습니까.
“패자로서 책임을 진다고 몇달 동안 칩거하지 않았습니까.”
- 이 대표의 2선 후퇴 요구도 꾸준히 제기됩니다.
“이제 총선이라는 본격적인 전쟁 속으로 들어갔는데, 전쟁을 지휘하는 장수를 바꾸는 게 정상인가요?”
화제를 바꿨다. 공천 과정에서 임 위원장은 “성범죄, 음주운전, 직장갑질, 학교폭력, 온·오프라인에서의 증오 발언 등 5대 혐오범죄에 대해 엄격히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뇌물·부패 혐의에 대해선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사법 리스크를 안은 이재명 대표를 의식한 공천 룰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 임 위원장은 공천 심사에서 도덕성을 강조했지요.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발언뿐 아니라 당내 반대파를 향해 ‘수박’ ‘쓰레기’ ‘똥파리’ 등 혐오발언을 한 양문석 후보는 공천을 받았습니다.
“검증위원회에서 검증자료가 넘어왔을 때 같은 안산갑 선거구의 전해철이나 양문석 모두 군더더기 없이 적격으로 표시돼 있었습니다. 이후 면접(총 100점 중 10점 만점)을 보는데 후보당 면접시간이 30초밖에 안 됐어요. 그 자리에서 어느 공관위원이 양 후보에게 ‘수박 같은 막말을 하면 되느냐’고 하자, ‘동물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 식물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답하더군요(웃음).”
- 도덕성검증소위는 양문석 후보에게 도덕성 점수를 0점 주기로 뜻을 모았다고 해요. 그런데 공관위 전체회의에서 임 위원장이 도덕성 점수에 대한 논의 없이 양 후보의 경선 참여를 밀어붙였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공관위원이 모두 15명인데, 한두 분이 0점을 줬을 수는 있으나 대다수는 0점을 주지 않았다고 확신합니다. 양문석 후보에게 경선 기회를 주지 말자는 의견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양문석 경선 허용과 상관없이 비명횡사니 뭐니 하며 혁신 공천에 대한 반발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막판에 비명 후보들을 많이 구제해 주었습니다. 전해철에게 경선 기회를 주고 이인영은 단수공천했어요. 통합을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
- 뇌물·부패 혐의에 대해선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했는데, 왜 노웅래·기동민은 컷오프하고, 이재명 대표와 이수진(비례)은 공천을 줬습니까.
“스스로 금품 수수 사실을 인정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다르게 판단한 것이죠.”
- 공관위원장을 떠나, 민주주의를 연구한 정치학자로서도 민주당의 이번 공천 과정이 공정·투명했다고 자신합니까.
“선거가 끝나면 의례히 평가제도도 손질합니다. 이번 평가방식은 작년에 김은경 혁신위에서 건의해 중앙위와 당무위를 거쳐 최고위에서 채택한 겁니다. 앞서 말했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스스로 선택한 규칙이죠. 그런데 그 규칙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거부해서야 되겠습니까? 문제가 있다면 일단 수용한 후 선거가 끝난 다음에 보완책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한 태도죠.”
- 어떻게 보완하면 좋을까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하위 10%, 20%에 대한 감점을 좀 완화하는 게 낫지 않겠나 봅니다.”
- 안에서 확인한 민주당은 정당 민주주의 관점에서 볼 때 어느 수준이라고 판단합니까.
“아직까지 계파정치, 파벌정치를 벗어나지 못해 오히려 민주주의 과잉 현상이 일어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들이 뽑은 당 대표를 감옥에 보내자고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국회의원이 약 40명이나 되지 않았습니까? 정당엔 기율이란 게 있는데, 아노미 상태가 되어 국회의원들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러니 180석을 가지고 개혁을 하지 못했다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임 위원장은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세계적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를 사사한 진보적 민주주의 이론가다.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을 지낸 것 외에 2003년 노무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활약했지만, 현실 정치와는 거리를 둔 채 주로 연구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평생을 학자로만 살아온 그가 격한 공천 잡음을 겪으면서 느낀 고뇌와 갈등은 없었을까. 인터뷰 말미,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공천 과정에 정치적 역학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몰랐습니다. 가까웠던 의원들로부터 공격도 받고 공천 탈락자들이 당사 앞에서 시위도 했습니다.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죠. 하지만 공관위를 책임지기로 한 이상 외부의 압력이나 영향으로부터 공관위원들을 보호하고 격리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객관적인 공천을 담보할 수 있게 공관위원들에게 경고도 수시로 했고요. 그렇게 제가 노력했다는 것은 언론이 인정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