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라, 원전과의 이별

김기범 기자

‘폐로 토론마당’을 가다 - 고리1호기 폐로 진행 과정

[커버스토리]준비하라, 원전과의 이별

한수원, 계획서 2020년 제출
핵연료 반출·철거 등 거쳐
2032년 부지 복원 마무리 예정

비용 불어 작업시점 ‘1조원’ 이상
방사성폐기물이 가장 큰 변수
토양오염 땐 무기한 제염작업

경험 부족한 국내 기업들은
해외 업체와 손잡고 참여 가능성

2017년 6월19일 0시. 국내 첫 상업용 원자력발전소 ‘고리1호기’가 영구정지됐다. 확대일로였던 대한민국 원전이 40년 만에 첫 전환점을 맞은 날이다. 긴 논란 끝에 고리1호기를 세울 때까지 한국의 원자력업계와 학계의 많은 사람들이 ‘금기어’ 취급하듯 밀어둔 단어가 있다. ‘폐로와 해체’다. 폐로는 원자로를 영구정지해 닫아버리는 것이고, 해체는 원전시설 전체를 절단·철거해 자연 상태로 복원하는 과정을 통칭한다.

원자력산업에서 폐로와 해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불편한 진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시장을 여는 장밋빛 전망이 뒤엉켜 있는 단어다.

원전이 안전하다는 신화는 허물어지고 있다. 원전은 결코 값싼 에너지도 아니다. 노후 원전을 세우고 해체하고 보전하는 긴 시간과 높은 비용을 직시할 때가 도래한 셈이다. 경주에 방폐장 하나 정할 때도 큰 홍역을 치른 한국에선 사용후 핵연료를 처리할 시설과 로드맵이 여전히 안갯속이다. 고리1호기의 시작과 끝은 “값싸고 친환경적인 전기”라고만 치켜세워온 원전 신화도 전반전이 끝났음을 가리키고 있다. 원전 폐로 시대. 누구도 비켜갈 수 없다. 외면하고 미룬다고 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 게 원전의 뒤끝이기 때문이다. 유추해보면, 원전 마피아들이 애써 폐로를 멀리하고 입에 담지 않은 이유도 그 지난함과 함께 탈핵 단체들의 공세에 맞닥뜨릴 것을 염두에 뒀음직하다.

‘원전 해체’에 우리는 충분히 대비하고 있을까. 고리1호기가 영구정지된 후 속도를 붙이고 있지만, 해체 과정에는 여전히 첨단기술과 예산, 주민수용성, 사용후 핵연료 처리시설 등까지 퍼즐처럼 풀어가야 할 장애요소들이 첩첩이 쌓여 있다.

지난 14~16일 서울 한양대에서 국내외 원전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이 원전 해체·제염을 교육하고 토론하는 큰 마당이 열렸다. 경향신문은 국내 언론으로는 유일하게 사흘 과정에 모두 참석해 강사·교육생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원전업계와 학계의 엇갈린 시선도 지켜봤다. 예전처럼 해체·폐로라는 말이 금기시됐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였다.

“원전 해체는 국가적인 미래 먹거리 산업이 될 것입니다. 2030년까지 고리1호기를 해체해서 경험을 쌓고, 해외시장 진출까지 노리기 위한 시간 싸움에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원전 해체시장이 440조원이라고들 하는데 여기서 우리가 실제 차지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요. 우리 원전 해체하기도 바쁠 텐데 해외시장 진출을 어떻게 합니까?”

“우리 원전업계는 이미 원전 해체에 필요한 실력이 충분합니다. 해체 기술이 없다, 원전 해체 충당금이 모자란다, 해체 과정이 위험하다는 건 잘 모르는 사람들의 호들갑일 뿐입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지만, 현장에선 뭉쳐지는 인식 한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원전 해체 준비가 아직 미흡하고, 장애 요소들이 많지만 공익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더 이상 해체와 폐로가 원자력업계나 학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공유했다. ‘이미 다가온 미래’, 노후 원전은 과학기술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으로 답을 구할 ‘긴급 의제’라는 자각이었다.

‘해체’ 처음 해보는 한국…비용·기간, 그 무엇도 예단할 수 없다

■ 원자력 발전소 폐로 과정

원전 폐로와 해체 시대는 외면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원전 폐로와 해체를 위한 최종 해체계획서가 승인되면 사용후 핵연료 반출, 증기발생기 절단 및 해체, 원자로 제거 작업 등이 이뤄진다.  한양대 원전해체연구센터 제공

원전 폐로와 해체 시대는 외면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원전 폐로와 해체를 위한 최종 해체계획서가 승인되면 사용후 핵연료 반출, 증기발생기 절단 및 해체, 원자로 제거 작업 등이 이뤄진다. 한양대 원전해체연구센터 제공

한국 최초의 상업용 원전이자 가장 처음 영구정지된 원전인 고리 1호기 앞에는 제염과 해체, 부지 복원이라는 프로세스가 기다리고 있다. 일반 건물이라면 건설 기간보다 짧은 시간에 철거되는 게 보통이지만 원자로와 사용후 핵연료, 방사화된 물질이 잔뜩 들어 있는 원전의 해체에는 수십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된다. 1977년 가동을 시작해 2007년 수명연장으로 설계수명 30년과 추가된 수명 10년 동안의 운영기간을 마무리하고 영구정지된 고리 1호기가 겪게 될 해체과정을 통해 국내의 해체 준비 현황을 살펴봤다.

■ 해체의 시작은 해체 허가와 내부 조사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현재 고리 1호기는 가동정지 후 내부 출입을 통제한 채 내부의 방사성물질 조사 및 최종 해체계획서를 작성 중이다. 최종 해체계획서의 승인 등 법적절차가 끝나는 대로 실제 해체가 시작될 예정이다. 해체계획서에는 해체를 위해 필요한 기술, 기기, 비용, 조직, 안전관리방안 등 전반적인 사항이 모두 담겨야 한다. 이 때문에 계획서를 작성하고 허가받는 것부터 계획보다 상당히 지연될 수 있다. 한수원은 여러 차례의 해체 경험이 있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사와 계약을 맺고, 해체계획서 작성 과정에 도움을 받고 있다. 한수원은 인허가 절차를 밟고 나서 바로 제염 및 해체에 들어가는 즉시해체를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준비 과정에서는 원전 내 어디에 얼마큼의 방사성물질이 존재하는지 평가하는 작업도 실시된다. 특히 고리 1호기의 경우 처음으로 해체되는 원전일 뿐 아니라 완전한 도면이 국내에 없어 내부 조사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한수원은 지난 2월 한국전력기술에 특성평가와 해체공정 설계 등을 중점으로 해체종합설계용역을 맡긴 상태다. 최종 해체계획서는 2020년 6월까지 마무리한 뒤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후 2022년 6월쯤 원안위가 최종 해체계획서를 검토 후 승인하면 사용후 핵연료 반출, 비방사선 구역 철거 작업에 착수한다. 이후 본격적인 방사선 구역 철거에서 나올 폐기물을 보관할 폐기물처리시설을 건설하게 된다. 2026년부터 시작되는 제염과 절단, 철거 작업이 2030년 마무리되면 2031~2032년 부지 복원 작업이 예정돼 있다.

■ 첫 번째 위험요소는 늘어나는 해체비용

원전 해체 관련 논의에서 항상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위험요소는 원전 해체비용의 증가다. 해체비용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한수원과 탈핵단체들의 의견은 크게 엇갈린다. 한수원은 지난해 말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원전해체충당금 7515억원은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이며, 앞으로 금액이 더 증가해도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해체비용이 머지않아 1조원대를 넘어설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2015년 정부가 발표한 원전 1기당 해체비용은 6437억원이었으나 2017년 평가에서는 16.7%가량 증가해 7515억원이었다. 이 같은 비율대로 해체비용이 증가할 경우 2019년 평가에서는 원전 1기당 해체비용이 8770억원까지 늘어나게 된다. 본격적인 고리 1호기 해체작업이 시작되는 2025년에는 1조원대가 넘을 것이라는 것이 원전업계와 학계의 중론이다. 원전 1기당 해체비용이 증가할수록 원전업계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원전이 저렴한 에너지라는 주장이 거짓이었다는 비판이 거세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커버스토리]준비하라, 원전과의 이별

■ 가장 큰 걸림돌은 방사성폐기물 처리

국내의 원전 해체비용이 높아지는 것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비용이 높기 때문이다. 해외 원전 해체 사례의 경우 방사성폐기물 처리비용은 전체 비용의 26%가량인데 비해 국내에서는 그 비용이 40%에 달한다. 해외의 방사성폐기물을 담은 200ℓ 드럼 한 통당 처리비용은 1000만원 안팎이지만 국내의 처리비용은 1500만원대에 달하는 것이다.

한수원이 고리 1호기에서 발생할 방사성폐기물의 양을 1년에 1만4500드럼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1만4500드럼이라는 숫자는 저장용량이 80만드럼인 경주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의 용량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해체될 원전들에서 나올 폐기물 양이 경주 방폐장 용량을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게다가 예기치 못했던 폐기물이 대량으로 쏟아져나오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비용은 물론 처리시간도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할 수 있다. 특히 가장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는 것이 토양과 지하수 오염이다. 토양이나 지하수 오염이 확인될 경우 부지 복원에 장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도 당초 2017년 해체 완료를 선언하려던 원전에서 지하수 오염이 확인되면서 제염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사례가 있다.

중저준위 폐기물이 걸림돌 수준의 장애요소라면 고준위 폐기물로 분류되는 사용후 핵연료는 다시 빠져나오기 힘든 ‘수렁’ 수준의 장애요소다.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을 어디에 만들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고 있는 상태다.

특히 가동중지된 원전에서 사용후 핵연료를 반출한 뒤 최종 해체계획서를 내는 게 일반적이지만 한수원은 기간 단축을 위해 계획서부터 내고 사용후 핵연료를 반출하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규제기관인 원안위가 사용후 핵연료 반출이 이뤄지기 전에 최종 해체계획서를 승인할지에 대해서는 원전업계 내부에도 의문을 품은 이들이 많은 상태다.

■ 그린필드냐, 브라운필드냐

고리 1호기 해체가 완료된 뒤 남는 원전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지 여부도 경우에 따라 해체작업에서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녹지, 공원 등으로 활용하는 경우를 의미하는 그린필드와 원자력산업용지 등 다시 산업적으로 활용하는 브라운필드 중 어느 쪽을 목표로 삼느냐에 따라 환경단체나 주민들의 반발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리 1호기 부지를 브라운필드로 활용하려는 한수원의 방침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경우 반대 여론이 급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 경험 부족한 국내 기업은 경쟁력 한계

한수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은 2018년 현재 원전 해체에 필요한 기술 96가지 중 69가지를 확보했다. 본격적인 방사선 구역 해체가 시작되는 2026년 전까지 나머지 기술들을 모두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술 자체를 확보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기술만 있다고 해체작업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확보한 기술을 기업들에 이전하고, 해당 기업들이 해체에 참여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하지만 아직 정부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고, 기업들은 불안감에 선뜻 참여를 하지 못하는 상태다. 게다가 기술이 있다 해도 경험이 부족한 한국 기업들은 결국 외국의 해체 경험이 풍부한 기업들과 컨소시엄 등 형식으로 고리 1호기 해체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해외 기술 수준은 - 상업용 원전 폐로, 부지 복원까지 마친 나라는 미국·독일뿐

원전을 폐로, 해체하고, 부지를 자연복원시키는 절차를 모두 마친 나라는 드물다. 이른바 ‘원전의 라이프사이클’ 전체를 경험한 나라는 미국, 독일, 일본, 스위스뿐이다. 이 가운데 일본과 스위스는 상업용이 아닌 소형 원자로 1기만을 해체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상업용 원전 해체 경험이 있는 나라는 미국과 독일 두 나라로 좁혀진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아직 해체를 완료한 경험은 없다.

일찍부터 많은 원전을 운영했던 미국은 이미 16기의 원전을 해체한 경험이 있다. 이 가운데 2007년 해체가 완료된 빅록포인트 원전과 코네티컷양키 원전은 자연녹지로 복원됐다. 1974년 해체가 완료된 엘크리버, 1996년 포트세인트 등은 다시 발전소로 사용되고 있다. 자연녹지나 공원 등 그린필드로 복원된 원전은 모두 8개이다. 독일은 1995년과 1998년에 각각 니더라이흐바흐와 그로스벨자임 원전을 해체했으며 2010년에도 바크 칼 원전을 해체했다. 이들 원전은 모두 녹지로 복원됐다. 독일은 2016년에도 원전 1기의 해체를 완료할 예정이었으나 지하수 오염이 확인되면서 부지 복원작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영국은 정부에서 원전해체기관인 원전해체청을 만들고, 세계시장 진출을 노리고는 있지만 영국 원전은 노형이 모두 흑연감속로라는 한계를 안고 있어 아직 원전 해체를 완료한 경험이 없다. 흑연의 방사선 세기가 줄어드는 40년가량 기다렸다가 지연해체를 해야 하는 탓이다. 물을 감속재로 사용하는 국내의 가압식 경수로와 달리 영국의 흑연감속로는 흑연을 감속재로 사용하는데 흑연은 중성자를 받으면서 방사화되며 이로 인해 바로 해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감속재는 원자로 내에서 핵분열 연쇄반응을 일으키기 위해 중성자의 속도를 늦추는 데 사용하는 물질이다.

국내 원전업계에서는 영국의 원전해체업계가 한국 시장 진출을 노리는 이유가 바로 자국에서는 바로 해체 작업에 들어갈 원전이 없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많은 원전을 가동중지하고, 해체하기로 한 상태이지만 사회의 모든 원자력산업 관련 인적·물적 자원을 후쿠시마 원전 안정화와 해체에 쏟아붓고 있는 상태다. 즉, 한국보다 기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앞선 상대긴 하지만 해외시장에 진출할 여력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원전업계 일각에서는 한국의 원전업계가 일본 시장 진출도 노릴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 또 미국이나 독일, 일본 시장에 진출하지는 못해도 아시아권의 연구용 원자로나 원자력시설 등의 해체에서는 한국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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