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V 백신’ 필수접종에 포함돼야

김재훈 | 연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대한산부인과학회 부인종양위원회 위원장

2000년대 중반 자궁경부암 예방백신의 등장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암 완치가 의료계의 주된 화두로 등장했을 때의 일이다. 해외에서 자궁경부암의 주요 원인 바이러스인 인유두종바이러스(HPV) 예방백신 개발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의술 인술]‘HPV 백신’ 필수접종에 포함돼야

학계와 언론은 ‘굿바이, 자궁경부암!’을 외치며 암 예방백신의 등장에 환호했다. 암 치료에 앞서 암 발생을 예방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전 세계가 고무된 분위기였다. 진료실을 방문하는 환자들도 “조금만 더 빨리 이런 백신이 나왔으면 좋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자궁경부암 환자의 99.7%에서 발견되는 HPV는 자궁경부암을 비롯해 생식기사마귀 같은 성 매개 질환의 원인이지만 정작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안타깝지만 이런 이유로 일반인들에게는 ‘HPV 백신’이 ‘자궁경부암 백신’으로 잘못 알려져 있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이 백신이 자궁경부암 백신이 아닌 HPV 백신으로 불려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 이들 백신에는 항체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가짜 바이러스가 타입별로 각각 들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현재 접종 가능한 백신은 두 종류지만 예방할 수 있는 질환 수가 다르다. 예를 들면 ‘HPV 4가’ 백신은 자궁경부암 및 외음부암, 질암, 항문암, 생식기사마귀까지 예방할 수 있고 ‘HPV 2가’ 백신은 자궁경부암을 예방할 수 있다. 셋째, 접종하는 스케줄도 두 제품이 다르다. 따라서 접종한 환자들의 혼란을 막고 정확하게 접종을 완료하기 위해 국가백신프로그램(NIP)으로 진행하는 모든 나라에서는 자궁경부암 백신이 아닌 HPV 백신으로 구분해서 부른다.

HPV 질환은 한 번 발생하면 치료가 쉽지 않아 예방과 관리가 중요하다. 남성들은 흔히 본인과는 상관없는 바이러스라는 생각에 HPV 예방과 치료에 소홀하기 쉽지만 남성도 HPV에 감염될 수 있다. 국내 연구결과를 보면 성생활을 하는 성인 남성 18~28세 중 약 10% 이상이 HPV에 감염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남성이 HPV에 감염된 경우 성관계 상대방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킬 수 있고, 생식기사마귀에 걸릴 위험도 높아진다.

생식기사마귀는 정부가 발병률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법정 지정 감염병이자 HPV로 발생하는 대표적인 성 매개 질환이다. 개방적인 성문화로 남녀 모두 환자 수가 급격히 늘고 있어 예방과 관리가 시급한 감염병이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는 국가필수예방접종사업에 HPV 백신을 등록해 무료로 백신을 접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미국, 호주, 캐나다, 오스트리아 등은 HPV 4가 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사업에 포함시켜 남녀 학생 모두를 위한 HPV 예방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특히 이른 시기에 HPV를 국가필수예방접종으로 등록한 호주와 덴마크의 경우 프로그램 도입 전에 비해 자궁경부 질환과 생식기사마귀 발병률이 눈에 띄게 감소하는 효과를 봤다.

국가필수예방접종은 국민의 건강과 감염병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예방접종을 환자의 비용부담 없이 국가에서 지원하는 사업이다. 의학 연구의 발전에 힘입어 HPV 감염을 막아 손쉽게 암 생성을 억제하고 성 매개 질환의 고통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다. 최근 HPV 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으로 적극 고려하자는 논의와 행보에 관심과 기대가 모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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