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에겐 ‘힙’···그때 그 시절 ‘세기말’을 소환하다

이유진 기자
레트로 붐이 지속되고 있다. Z세대는 세기말 문화를 담은 패션, 가요, 영상물 등을 고루하고 촌스런 과거의 것이 아닌 참신한 뉴 콘텐츠로 바라보고 있다. 이 시대 ‘마지막 아날로그’를 경험한 밀레니얼 세대들이 아련해진 세기말 추억을 꺼내보았다. 사진|경향신문 포토뱅크

레트로 붐이 지속되고 있다. Z세대는 세기말 문화를 담은 패션, 가요, 영상물 등을 고루하고 촌스런 과거의 것이 아닌 참신한 뉴 콘텐츠로 바라보고 있다. 이 시대 ‘마지막 아날로그’를 경험한 밀레니얼 세대들이 아련해진 세기말 추억을 꺼내보았다. 사진|경향신문 포토뱅크

세계인을 사로잡은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인기 요인으로 극중 아날로그 게임을 꼽는 이들이 있다. 아날로그 시대 마지막을 장식한 세기말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아련하다. 디지털의 등장은 천지개벽 수준으로 일상을 바꿔놨고 그 시절 추억은 안녕을 고하기도 전에 급격히 유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1990년대 패션 트렌드의 인기에 이어 세기말 추억 돌아보기 바람이 불고 있다. 여러 차례 ‘부활 예고’로 변죽을 울린 싸이월드는 지난 8월 오픈 11시간 만에 400만명 이상이 접속했다. 탄력받은 싸이월드는 원슈타인, 정승환 등 아티스트들과 함께 그 시절 BGM 명곡의 재해석 프로젝트에 나섰다. 세기말을 배경으로 한 웹툰 <세기말 풋사과 보습학원>은 기성세대는 물론 MZ세대에서도 높은 열독률을 기록하고 있다. 순끼 작가는 “당시 학창 시절을 보냈던 사람으로 그때의 감성이 좋았고 더 잊히기 전에 남기고 공유하고 싶어 작품의 배경을 세기말로 정했다”고 밝혔다. 레트로 패션을 ‘힙’한 트렌드로 소비하는 요즘 세대에게 세기말의 추억은 참신한 문화 콘텐츠로 각광받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세기말은 어떤 의미였을까. 작심하고 타임캡슐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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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글씨의 시대’ 펜팔에서 라디오 사연까지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는 문학 소녀입니다. 저와 펜팔 친구하실 분을 찾아요.” 잡지 후반부에 자리 잡은 펜팔 코너는 1990년대 타지(혹은 외국) 친구와 사귈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e메일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화상통화로 전 세계인과 실시간 소통할 수 있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번거로움이지만 스탬프 찍힌 우표, 꽃향기 은은한 편지지, 꾹꾹 눌러쓴 손글씨의 추억은 설렘으로 남아 있다. 최근 세기말 추억을 담은 에세이집 <기억나니? 세기말 키드 1999>를 출간한 이다 작가는 두근두근 ‘아찔했던’ 펜팔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잡지 뒤에는 반드시 펜팔 코너가 있었다. 펜팔 코너에는 이름과 나이, 성별, 취미, 특기 등이 적혀 있었고 주소가 함께 나와 있었다. 친구를 원하는지, 애인을 원하는지, 오빠를 원하는지(?)까지 적혀 있다. 취미는 한결같이 독서나 음악 감상이라고 썼다. (지금 생각하면 뭘 믿고 남한테 주소를 알려주는지 소름이 쫙 끼칠 일이다.) 6학년 때 당시 보던 잡지 ‘어린이 두란노’의 펜팔 코너에 내 소개를 보냈다. 소개가 실리자 편지가 많이 왔다. 그때는 엄청 설레는 일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극히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반팔(반 pal)이라는 것을 했다. 예를 들자면, 유성여고 2학년 3반과 대동남고 2학년 5반이 단체로 편지를 주고받는 것을 반팔이라고 한다. 반팔 주선자가 각각 1명씩 있었고 이들은 특정 일자에 학원이나 교회에서 만나 편지 뭉치를 교환했다. 보통 본명을 밝히지 않고 닉네임을 썼다. (내가 고른 편지 중 하나는 ‘턱시도 가면’이 ‘세일러문’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주선자는 편지 간수를 잘해야 했다. 잘못해서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걸렸다가는 수십 명의 목숨이 위태로웠다. 펜팔을 하고 손으로 편지를 쓰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가끔 편지지를 산다. 하지만 정작 손으로 편지를 쓰려고 하면 갑자기 귀찮다. 아날로그 키드가 디지털 어른이 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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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아날로그 미디어인 라디오도 이제는 100원 유료 문자 서비스로 애청자의 사연을 받는다. 1990년대까지는 대부분 엽서 사연이었다. 연말이 되면 방송사들이 열던 ‘예쁜 엽서전’은 ‘금손’ 독자들의 솜씨 뽐내기장이었으나 이제는 사라진 풍경이 됐다. 요가 에세이 <단정한 실패>의 작가 정우성은 당시 최첨단 디바이스인 팩스로 라디오 사연을 보낸 추억을 떠올린다.

“1995년 여름, 새벽 1시 즈음이었다. 내 방엔 아버지의 팩스머신이 놓여 있었다. 나는 워크맨으로 가수 최연제가 진행하는 <밤으로의 초대>를 매일 밤 들으면서 외고 입시를 준비하던 중학교 3학년이었다. 최연제는 배우 선우용녀의 딸이자 미스 아일랜드 출신의 가수. 낮고 침착한 목소리, 이지적인 광대, 거리낄 것 하나 없다는 듯 시원한 웃음과 태도가 그의 매력이었다. 그날 새벽 나는 홀린 듯 컴퓨터용 수성 사인펜을 들었다. 학원에서 받은 갱지에 ‘내일이 시험이고, 오늘밤은 유난히 힘든데 누나 목소리를 들으면서 공부하고 있으니 응원해주세요’라고 큼직큼직하게 써서 팩스머신에 넣었다. ‘위잉’하며 들어갔던 종이가 다시 나오고, 저 글씨가 어떻게 MBC 라디오국까지 가는지는 모르는 채 독해집을 펼친 순간 누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서울시 은평구에서 정우성씨가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지금 공부 중이시라고요. 누나 목소리 들으면서 힘을 내신다고(웃음). 너무 감사하고, 힘내세요. 좋은 결과 있을 거예요.’ 2시가 가까워오던 새벽, 그 목소리의 질감과 전율이 아직도 생생하다. 스마트폰과 앱 대신 워크맨과 팩스머신으로 사연을 주고받던 밤. 2001년 정규 4집까지 활동했던 연제 누나는 지금 미국에서 한의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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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기말, 문화 ‘씨앗’이 싹텄던 시기

글로벌 OTT, 유튜브, 틱톡…. 원하는 영상은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요즘이다. 1995년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처음 등장했지만 세기말까지 보급률이 낮았다. 전화선을 이용한 회선으로 고화질 사진 한 장을 다운로드하기 위해 수분을 기다렸다. 그러니 최신 영화는 극장이나 비디오 대여점만에서만 접할 수 있었다. 영화 <잡아야 산다> <소녀괴담> <월하> <러시안 룰렛> 등을 연출한 오인천 감독은 비디오 대여점 주인의 인공지능(AI)을 뛰어넘는 ‘큐레이션’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다고 말한다.

“비디오 대여점 주인 아저씨는 내 생애 첫 번째 영화 멘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은 늘 내가 즐겨 보던 장르나 좋아하는 배우들을 파악하고 신작 영화를 추천해줬다. 넷플릭스 추천 알고리즘도 이만큼은 못 따라오는 것 같다. 도무지 발길을 끊을 수 없는 개미지옥과 같은 추천이었다. 당시 나는 미성년자였지만 대여 목록에 ‘청불영화’ 테이프를 끼워놓아도 슬쩍 눈감아주는 고마운 분이었다.”

세기말 국내 가요계는 K팝 1세대 아이돌(H.O.T. 등)이 등장하며 새바람을 일으켰다. 아이돌그룹은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 신승훈, 김건모 등 다양한 장르에서 실물 앨범 1000만장 판매량 돌파도 심심찮던 시대였다. 동시에 본격적인 팬덤 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렇다보니 미처 정제되지 않은 과격한 팬 문화가 시대 전반을 아울렀다. 은구슬 대중문화평론가는 세기말 추억 여행을 위해 자신의 흑역사 ‘팬질’을 공개했다.

“1999년 중학생 시절 나는 가수 신승훈의 열혈팬이었다. 당시 애경백화점에서 열린 라디오 ‘공방’(공개방송)을 뛰곤 했는데 방송은 물론 오빠의 ‘퇴근길’을 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하주차장에서 승훈 오빠가 차에 타는 모습을 누구보다 먼저 발견한 나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전력질주해 차 문을 열고 돌진했다. 결론은 보조석에 앉아 있던 매니저에게 1초 만에 끌려나왔다. 요즘 ‘사생팬’보다 더한 짓을 했으니 항의할 것도 없었다. 나조차 어이가 없던 나머지 길바닥에 주저앉아 친구들과 깔깔 웃고 말았다. 또한 인터넷 예약 시스템이 없던 시절이라 콘서트에 가려면 은행으로 먼저 달려가야 했다. 입금 순서대로 표를 나눠줬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지만 인기 가수 공연 티켓 예매일이면 입금 순서를 기다리는 팬들로 인해 은행 앞이 북새통을 이뤘다. 나는 부지런을 떨어 오빠의 콘서트 1열 4번에 앉은 적도 있다. 1열의 특권을 누리고자 오빠에게 줄 선물을 건네기 위해 앙코르곡 즈음 무대 앞으로 달려갔다가 그만 얼굴 앞에서 터진 폭죽으로 인해 질식할 뻔한 기억도 있다. 오빠마저 놀라 ‘괜찮아요?’라고 말을 건네긴 했지만…. 지금 떠올려도 ‘이불킥’ 할 만큼 야만스러운 세기말 ‘팬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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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세기말 정서는 연예인 굿즈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룹 방탄소년단은 ‘DNA’를 불렀지만, H.O.T.와 젝스키스, 핑클은 DNA를 팔았다. 아티스트의 머리카락과 입안 상피세포에서 채취했다는 DNA를 담은 키링(열쇠고리) 말이다. 아이돌들이 팬들 사이를 지날 때면 머리카락을 자주 뜯기는 터라 자구책으로 마련한 굿즈였다. 당시 팬심이라는 명분은 연예인 인권보다 앞서기도 했다. 1997년 모델로 데뷔해 ‘세기말 오빠’로 인기를 모은 연기자 김승현 역시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과격한 팬들에 당황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모델로 한창 활동하던 당시 팬들의 애정은 참 남달랐다. 1998년 나는 모델을 했던 의류 브랜드에서 주최한 지역 팬사인회에 갔는데 사인을 받던 한 여고생이 별안간 내 뺨에 뽀뽀를 한 것이다. 그 학생은 즉시 경호원들에게 끌려가 혼이 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또 안쓰러워 ‘괜찮다. 그냥 보내달라’고 한 적이 있다. 그 시절 하이틴 잡지에는 스타들이 팬레터 받을 주소를 노출하는 것이 예삿일이었다. 그렇다보니 집까지 찾아오는 팬들도 여럿 있었다. 심지어 옥상을 통해 우리집 창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온 팬도 있었다. 너무 놀라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분 입장을 고려해 적당한 선에서 훈방 조치한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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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기말 연결고리 ‘삐삐’ ‘아이러브스쿨’

‘삐삐’는 1990년대 초반에서 세기말까지 약 10년간 전화와 휴대전화 사이에서 수많은 추억을 방울방울 남기고 사라졌다. ‘8282’(빨리빨리), ‘7942’(친구 사이), ‘012486’(영원히 사랑해) 등 숫자 암호만을 남긴 채 말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한 장면처럼 음성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공중전화기에 줄을 길게 서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던 여유로운 소통의 시대였다. 얼리어답터를 자처하는 이들은 1997년 출시된 기지국 기반 모바일폰 ‘시티폰’을 썼다. 그러나 수시로 먹통이 되고 공중전화부스 근처에서만 통화가 되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인해 금세 PCS폰에 자리를 빼앗겼다. 장은진 경성대 글로컬문화학부 교수는 세기말 연결고리로 동창찾기 사이트 ‘아이러브스쿨’을 꼽았다.

“2000년 어느 날, e메일을 열었더니 당시 유행하던 ‘아이러브스쿨’에서 날아온 쪽지 하나. 중학교 이후 연락이 끊겼던, 정말 한번쯤 보고 싶었던 초등 시절 짝꿍이었던 남학생이 보낸 것이었다. ‘너도 애타게 나를 찾았구나!’ 그렇게 홍대에서 재회한 우리는 추억을 나누기도 전에 5G급 속도로 세월의 흐름을 직시하고 그 후 지금까지 편하게 연락하는 친구 사이가 됐다. 당시 ‘아이러브스쿨’을 통해 만나 결혼하는 커플도 여럿이었다. 피천득의 ‘인연’처럼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까? 일단 내 인연은 그곳에 없었지만 그래도 아련한 추억을 현실로 닿게 해준 고마운 곳이다. 비록 역사 속으로 사라진 비운의 벤처 사이트가 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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