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 아닌, 반달가슴곰 이야기

김정호 수의사(청주동물원)
사육 곰 농장에 사는 반달가슴곰은 대부분 좁은 뜬장에 누워 여생을 보낸다. 탈출이라도 하면 곧 사살되는 운명에 처한다.  청주동물원 제공

사육 곰 농장에 사는 반달가슴곰은 대부분 좁은 뜬장에 누워 여생을 보낸다. 탈출이라도 하면 곧 사살되는 운명에 처한다. 청주동물원 제공

아침 동물원을 돌며 마주친 곰들은 분주하다. 농장에서 태어나 야생을 경험한 적 없는 곰들이 낙엽을 모아 땅에 자리를 만들고 있다. 다른 곰은 가슴 위 반달무늬가 가려질 정도로 낙엽을 가득 안고 가 나무에 걸린 해먹에 넣고 푹신하게 만든다. 살아갈 방법을 혼자 배운 곰들이 기특하다.

2018년 12월 웅담 채취용으로 길러졌던 농장 곰들을 데려오는 그날은 무척 추웠다. 이송 당일, 죽어서야 나올 수 있는 케이지를 살아서 나온 국내 최초의 곰들이라 세간의 관심이 뜨거웠다. 한 평 남짓한 케이지에서 따로 생활하던 반이, 달이, 들이는 동물원에 오면서 한 공간에서 지낸다. 생태적으로는 단독 생활을 하는 동물이 같이 살다 보니 작은 다툼이 목격된다. 그러나 대부분 다른 곰이 다가오는 것이 싫다면 입속의 혀를 차 “똑똑”거리는 소리로 주의하라고 경고한다. 그러면 더 이상 접근을 멈추고 불필요한 다툼을 피한다.

2021년 불법 증식된 새끼 곰들을 환경부와 몰수하러 여주에 있는 농장에 갔다. 뜬장(공중 설치 사육장)에서 떨어지는 곰들의 분변과 빗물이 섞인 농장 바닥을 비닐 장화로 휘저으면서 들어갔다. 겁에 질려 철창에 매달린 어린 곰들의 엉덩이에 파이프를 불어 마취주사기를 꽂았다. 철창 안쪽에 잠들어 있는 새끼 곰의 다리를 잡아당기자 뜬장 바닥 분변에 미끄러져 나왔다. 새끼 한 마리의 몸집은 다른 한 마리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제한된 먹이를 한 마리가 차지하다 보니 다른 한 마리가 잘 먹지 못해 생긴 차이로 보였다. 오물 바닥을 헤치며 새끼 곰들을 데리고 나올 때 양쪽 철창에 매달린 수십 마리 곰들의 아우성을 들었다. 새끼 곰들을 동물원에 데려다 놓은 그날 저녁 두고 온 곰들의 소리가 귀에 남아 못 이기는 술을 꽤나 마셨다. 다음날 밝은 곳에서 만난 어린 곰들은 분변에 털이 엉겨 지저분해 보였고 사람이 드나드는 출입문에서 가장 먼 벽에 서서 겁먹은 표정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이름을 ‘킹’과 ‘콩’으로 지었고 작은 곰이 콩이다. 그렇게 몇달이 지났고 킹이와 콩이는 CCTV 화면 속에서 천진하게 술래잡기를 하고 있다.

구조 곰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서로 술래잡기를 하거나 나무를 타며 여유로운 일상을 보낸다. 청주동물원 제공

구조 곰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서로 술래잡기를 하거나 나무를 타며 여유로운 일상을 보낸다. 청주동물원 제공

부모님이 사시는 충남 당진에 사육 곰 농장이 있다. 국내 사육 곰 284마리 중 90여마리가 사는 국내 최대 곰 농장이다. 당진을 오가면서 곰 농장이 궁금했고 찾아가 농장주와 곰에 대해 가끔 이야기를 나눴다. 1980년대 정부의 장려로 시작한 곰 사육에 관한 일화며 낡은 케이지에 있는 곰들의 탈출에 대한 걱정도 알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잊을 만하면 곰들이 탈출했고, 나온 곰들은 모두 사살되었다. 당진 농장의 곰들도 사고 예방을 위해 하루빨리 보수된 케이지로 옮겨야 했다. 작년 봄 동물원의 수의사, 시민단체, 학생들이 모여 마취 후 곰을 이동시켰다. 이동용 들것에 누워 있는 곰들의 몸에는 오래전 생긴 탈모를 동반한 피부병과 동거 개체 간 싸움으로 생긴 상흔도 있었다.

농장에 가는 횟수가 늘면서 곰들이 개체로 구분됐다. 좁은 케이지에 다가서면 밥을 주는 줄 알고 달려드는 곰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곰은 흘깃 쳐다보다 별일 아닌 걸 확인하고 나면 종전처럼 무기력하게 누워 있었다. 채취한 곰들의 털로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측정했다. 열악한 환경이라 수치가 높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낮은 곰들이 많았다. 미동 없이 누워 있는 곰들의 결과다. 자극 없는 무기력한 삶은 스트레스도 없었다.

2018년 농장곰 반달와 달이를, 2021년 여주 한 농장에서 킹이와 콩이를 구조했다. 많은 이들의 도움과 후원의 손길이 있었다. 청주동물원 제공

2018년 농장곰 반달와 달이를, 2021년 여주 한 농장에서 킹이와 콩이를 구조했다. 많은 이들의 도움과 후원의 손길이 있었다. 청주동물원 제공

새해 연휴 부모님을 뵙고 오는 길에 다시 농장에 들렀다. 몇몇 곰들의 배변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그중 상태가 가장 안 좋은 곰을 관할 환경청과 협의해 동물원으로 데려와 검진해보기로 했다. 1월 날씨 예보를 보고 이송 날짜를 정했다. 농장에 도착하니 금강환경청과 당진시 관계자들도 와 있었다. 마취를 위해 해당 곰이 있는 케이지로 갔다. 곰은 마취용 블로건 파이프를 보자 흥분하기 시작했다. 주사를 맞아야 하는 엉덩이는 뼈로 앙상했다. 마취주사기를 불고 난 후 숨어서 지켜본 곰은 몇분 안 되어 엎드렸다. 막대기로 찔러봐도 미동이 없다. 마른 몸을 고려한 적은 주사량이었는데 그마저도 과용량이 된 것이다. 1월의 날씨라 마취된 곰의 저체온이 우려됐다. 들것에 곰을 옮겨 싣고 마을 입구에 대기 중인 대형트럭으로 빠르게 향했다. 겨울철 물통이 금방 얼어버려 물을 마시지 못했기에 탈수가 걱정됐다. 급한 대로 곰의 피하층 여기저기 바늘을 꽂고 최대한 많은 수액을 주입했다. 곰은 회복제를 맞고도 한참 후에 머리를 움직였다. 완전한 마취 회복 후 이동을 원칙으로 하지만 트럭이 달려야 적재함 온도가 상승해 곰의 체온을 유지시킬 수 있어 그쯤에서 청주로 향했다.

곰 농장에서 구조되어 온 곰들은 낯선 환경에 겁을 먹지만 이내 적응해 서로 술래잡기를 하거나 나무를 타며 여유로운 일상을 보낸다.  청주동물원 제공

곰 농장에서 구조되어 온 곰들은 낯선 환경에 겁을 먹지만 이내 적응해 서로 술래잡기를 하거나 나무를 타며 여유로운 일상을 보낸다. 청주동물원 제공

열악한 환경에서 데려온 모든 동물이 그렇듯이 새로 온 곰도 동물원을 낯설어했고 인기척에 자주 놀랐다. 그걸 아는 복지사들은 음식을 주고 나와 화면으로 곰을 관찰한다. 화면 속 곰의 불안은 여전하다. 곰은 처음 보는 곰 사료, 고구마, 당근, 밤, 방울토마토, 메추리알 등을 먹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사과만은 참을 수 없었는지 결국 망설이다 먹었다. 곰이 좀 먹고 기운을 차리게 되면 내재한 질병에 대해 여러 검사를 하려고 한다.

농장 곰 반이와 달이를 데려온 2018년, 환경부에서 소집한 동물원 관계자 회의는 시민 모금으로 구조된 곰들을 데려갈 곳을 찾는 자리였다. 여느 동물원들이 주저하는 사이 곰을 데려오겠다고 손을 들었다. 이듬해 국비 포함 2억원을 곰사 개선비용으로 받았다. 입사 이래 처음 받아본 큰돈이었다. 시멘트 바닥에 누워만 있던 동물원 곰들의 환경도 덕분에 좋아졌다.

이후 호랑이, 여우, 산양, 수달, 늑대, 삵의 방사훈련장, 최근 실내동물원에서 바람이와 하늘이를 데려올 수 있었던 보호시설들이 들어섰으며 올해는 야생동물을 치료하고 재활하는 동물병원까지 만들 수 있게 됐다. 그 시작은 웅담 채취용 사육 곰들이 동물원에 온 일이었다. 청주동물원이 곰을 구한 것 같지만 사실 곰이 청주동물원을 구했다.

얼마 전 동물원의 방향성을 응원하는 쪽지와 함께 어느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주셨다. 마음을 다친 동물들에 관한 책이었는데 인간의 정신질환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책을 읽는 동안 당진 곰 농장에 있던 작은 곰 한 마리가 생각났다. 앞다리를 입에 넣고 계속 빨고 있었는데 불안을 나름 해소하는 방법으로 보였다. 케이지 안에 있었던 그 작은 곰의 세상이 달라진다면 사람 세상도 더 살 만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김정호 수의사
야생동물의 구조와 보호를 주목적으로 하는 ‘특별한 동물원’ 청주동물원에서 20년 넘게 수의사로서 일하고 있다. 야생동물 수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수의대 졸업 당시 야생동물을 치료하며 사는 직업이 없어 대안으로 동물원에 입사했다. 동물원이 갈 곳 없는 야생동물들의 보호소이자 자연 복귀를 돕는 야생동물 치료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저서로는 <코끼리 없는 동물원>(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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