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날벼락이다냐… 정부 초동대처 잘못해 난리여 난리”

박용근 기자

구제역으로 발길 끊긴 정읍 산외한우마을

“이것이 먼 날벼락이다냐. 어찌 살아가야 할랑가 모르겄어.” 지난 11일 오전 전북 정읍시 산외면 평사리 한우마을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전북 지역은 아직까지 구제역이 옮아오지 않았지만 예방을 위한 백신 접종이 시작된 탓이다.

눈만 껌뻑거리는 자식 같은 소들을 바라보는 축산 농민들한테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소에게 백신이 접종되면 일정기간 도축을 할 수 없어 설을 앞둔 이맘때 으레 밀려드는 주문 물량을 댈 수 없기 때문이다. 여느 때 같으면 외지에서 온 대형 버스들로 북새통을 이뤘을 산외면 소재지 상가에도 찬바람만 몰아쳤다.

썰렁한 전북 정읍시 산외한우마을 상가. 예전 같으면 관광버스들로 북새통을 이뤘을 것이다. | 박용근 기자

썰렁한 전북 정읍시 산외한우마을 상가. 예전 같으면 관광버스들로 북새통을 이뤘을 것이다. | 박용근 기자

◇ 손님 뚝 끊긴 한우마을 = 산외면 소재지 한 정육점에서 만난 주인 이형인씨(51)는 역정부터 냈다.

“축산농가도 죽고, 한우상가도 다 죽게 돼 부렀어. 구제역으로 난리가 났어도 한우를 먹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홍보만 허면 머혀. 소비자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 안혀. 면 소재지 식당가가 폭격을 맞은 기분이랑게.”

종업원 김모씨는 정부의 구제역 대처 방식을 질타했다.

“한우가 문제없다고 하면서 왜 멀쩡한 소까지 살처분해 버리는지 저로서는 이해가 안 간당게요. 그렇게 해서 구제역이 잡혔습니까. 시방도 엄청난 물량의 한우가 땅속에 묻히고 있으니 누가 한우를 먹겠다고 하겄어요.”

산외면 한우마을은 명품 한우로 성공 신화를 창조한 곳이다. 한우마을을 찾는 소비자는 평일 3000명, 주말에는 1만여명에 이른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손님이 뚝 끊긴 것이다. 지금은 평일에는 평소의 4분의 1, 주말은 3분의 1로 확 줄었다.

한우마을에서 가장 큰 식당을 5년째 운영 중인 은순기씨(37)는 “구제역 때문에 손님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적자를 면치 못한다”면서 “그간 벌어놓은 돈으로 가게문을 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은씨는 “우리보다 축산농가가 더 불쌍하다”면서 “아마 이번 여파로 소를 키우는 농가들은 다시 일어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혀를 찼다.

◇ “우리는 버틸 겁니다” = 한우마을 상가번영회의 시름은 깊었다.

김상곤 번영회장(52)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면서도 “이번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걱정이 태산”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산외 한우마을은 8년 전에 생겼다. 당시 면소재지에는 정육점 두 곳이 있었다. 여기서 경쟁이 일어났다. 서로 싼 소고기를 내놓은 것이다.

“산외면에 가면 엄청 싸게 한우를 살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손님이 줄을 서면서 정육점과 식당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재 이곳에는 500m에 불과한 면소재지에 정육점 44곳, 식당 32곳이 성업 중이다. 고기는 정육점에서 사고 식당에서 반찬거리와 야채를 제공하는 식이다.

“옛날에는 시내를 빠져나가는 데만 1시간이 걸릴 정도로 손님이 몰렸당게요. 하루 도축되는 한우만 100여마리에 달했응게. 전국적으로 이만한 성공도 없었을껴.”

길거리에서 만난 김정수씨(55)는 “지금 농민들 사이에는 외국산 쇠고기가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사실인지 모르겠다”면서 “구제역이 잠잠해지더라도 싼 수입 쇠고기만 찾게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 도축 못하는 게 더 걱정 = 번영회 걱정은 백신 접종 이후 더 커졌다. 백신을 맞은 소는 상당기간 도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제역 파동 이후 한우마을을 지탱시키고 있는 것은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오는 택배물량이다. 소를 도축하지 못하면 주문을 소화하지 못할 상황이다. 김 회장의 한숨이 하늘을 찌른다.

“정부가 구제역이 최초로 발생했던 안동서 초동 대처를 잘해 부렀으면 이런 난리는 나지 않았을 껴.”

그는 “아직도 우리 한우마을은 청정 지역”이라면서 “가격을 더 낮춰 판매하는 등 번영회 차원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으니 우리 산외마을 한우를 이용해달라”고 당부했다.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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