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뚫리고, 보고도 안한 경북축산기술硏

최슬기 기자

발병후 6일간 사실 감춰

40여일 봉쇄 방역 허사

“면목 없습니다. 고개를 못 들겠습니다.”

12일 오후 경북 영주시 안정면 경북도 축산기술연구소. 칡소·한우 등을 살처분·매몰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직원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우량 한우품종 등을 개발·보급하는 경북지역 축산기술의 메카인 이곳의 구제역 방역망이 뚫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제역 발생을 농림수산식품부 등 관련 부처에 보고조차 하지 않아 “축산 기술이 아니라 은폐 기술을 연구하느냐”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1933년 설립된 경북도 축산기술연구소는 우량 한우·돼지 품종 개발, 가축 인공수정용 정액 생산 등을 맡아왔다. 연구소에선 칡소·한우·돼지·흑염소·산양 등 우제류 1172마리와 재래닭·말·아리카나·관상 조류 5491마리 등을 관리하고 있다.

이 연구소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것은 지난 2일. 칡소 한 마리가 침을 흘리는 등 구제역 의심 증세를 보이자 다음날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검사를 의뢰했다. 지난 5일 구제역 양성 판정이 나왔다. 그러나 연구소 측은 검사를 의뢰하면서 기관을 밝히지 않은 채 정창진 연구소장 개인 이름만 적었다. 이 때문에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서는 경북도 축산기술연구소의 구제역 발생 사실을 6일이 지나도록 몰랐다. 경북도도 농림수산식품부 등 관련 부처에 보고하지 않았다.

연구소 측은 5일부터 연구소 내 가축 살처분·매몰작업에 나섰다. 1100여마리를 매몰해야 하지만 지난 11일까지 절반 수준인 670여마리만 매몰했다. 연구소는 매몰작업이 지지부진하다는 비난이 제기되자 이날까지 매몰 대상 1100여마리를 매몰했다.

지역 축산농가들은 “연구소와 경북도 측이 구제역 발생 사실을 숨기려 한 것이 아니냐”면서 “연구소 측의 매몰작업까지 늦어져 농가의 불안이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창진 소장은 “담당 직원도 별생각 없이 의심신고서를 작성하며 기관이 아닌, 내 이름을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연구소 측은 구제역이 종식되더라도 연구소 기능이 정상화되기까지는 4~5년 정도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최슬기 기자 skcho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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