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식수원 20년 지역갈등, 단체장 바뀌자 원점으로

김현수·김정훈·권기정 기자

다시 물거품 된 ‘물 나눔과 상생발전’

지난 4월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조정실, 환경부, 경북도, 대구시, 구미시, 한국수자원공사 등 6개 기관 대표자들이 ‘대구시 구미 해평취수장 공동이용 협정서’를 체결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위 사진). ‘대구취수원 구미 이전 범시민반대추진위원회’가 2021년 7월14일 경북 구미컨벤션센터 앞에서 대구 취수원 공동이용에 반대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 4월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조정실, 환경부, 경북도, 대구시, 구미시, 한국수자원공사 등 6개 기관 대표자들이 ‘대구시 구미 해평취수장 공동이용 협정서’를 체결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위 사진). ‘대구취수원 구미 이전 범시민반대추진위원회’가 2021년 7월14일 경북 구미컨벤션센터 앞에서 대구 취수원 공동이용에 반대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1년 페놀 사태 이후 불거진 물 전쟁
대구, 구미에 취수원 이전 지속적 촉구
정부 용역 거쳐 작년 ‘다변화 방안’ 확정
선거 끝나자 구미·대구·경북 “재검토”

페놀, 다이옥신에 이어 녹조로 인한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까지. 영남지역 주민들의 식수원인 낙동강이 신음하고 있다. 부산시와 대구시는 20여년째 식수원을 바꾸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나 물자원 고갈을 우려하는 경남과 경북 지역의 반대에 부딪혀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가 지난해 6월 낙동강 수계 5개 광역지자체의 물 문제 해소를 위해 ‘낙동강통합물관리방안’을 의결하고, 대구·경북·구미가 올해 4월 ‘맑은 물 나눔과 상생발전에 관한 협약식’을 체결했으나 지방선거 이후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형국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좀 괘씸한 생각이 든다”는 발언까지 하는 등 단체장들 사이의 갈등은 격화되는 양상이다.

■낙동강 페놀 사태와 다이옥신 검출

대구 취수원을 낙동강 상류로 옮기고자 하는 대구시민의 열망은 1991년 발생한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에서 비롯됐다.그해 3월14일 경북 구미의 두산전자 공장에서 페놀 원액 저장탱크가 파열돼 30t이 낙동강으로 유출돼 대구의 취수장으로 흘러들어 수돗물을 오염시켰다. 페놀은 계속 낙동강을 타고 흘러 밀양과 함안, 칠서 수원지 등에서도 잇따라 검출됐다. 부산, 마산을 포함한 영남권 모든 지역이 페놀 파동에 휩쓸리게 됐다.

이 물을 마신 주민들은 극심한 두통과 구토 증세를 보였다. 피부질환까지 앓았다. ‘유출 사고’가 아닌 ‘유출 사건’이었다. 검찰조사에서 5개월에 걸쳐 페놀 폐수 325t을 무단 방류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구환경청 직원 7명과 두산전자 직원 6명 등 13명이 구속되고 환경처 장관까지 경질됐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도 사태에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13년 뒤인 2004년 국정감사에서 발암물질로 알려진 1,4-다이옥신(1급 발암물질)이 낙동강에서 검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복심 의원(열린우리당)은 국립환경연구원이 낙동강 수계에 인접한 기업체들의 배출수 시료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A기업의 배출수에서는 다이옥신 농도가 22만4592ppb를 기록했다. 이에 환경부는 다이옥신 배출 지침을 만들고 낙동강 본류(왜관철교지점) 기준 다이옥신 농도를 50ppb 이하로 확정했다. 하지만 대구시민에게 낙동강 다이옥신 검출 사건은 악몽 같았던 1991년 페놀 사태를 떠올리게 했다. 대구시는 처음으로 국토교통부에 “구미시 하류에 위치한 취수원을 상류 쪽으로 이전해 달라”고 건의했다.

■계속되는 수질 오염 사고…취수원 이전 지연

2년 뒤인 2006년 6월 구미하수처리장 방류수에서 독성물질인 ‘퍼클로레이트’가 검출됐다. 미국 환경청의 권고기준보다 50배나 높은 1224.3ppb가 검출됐다. 왜관대교, 성주대교, 매곡취수장 등 낙동강 수계에서도 이 물질이 확인됐다.

2008년에는 경북 김천 코오롱 유화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페놀 찌꺼기가 공장 바닥에 유출됐다. 진화 과정에서 사용한 소방수에 페놀이 섞여 인근 하수구를 통해 유해물질이 낙동강으로 흘러들었다. 2009년에는 다이옥신 권고치(50ppb)를 초과한 56ppb가 검출됐다. 이후 2012년 불산, 2018년에는 과불화화합물 등의 수질오염 사고가 잇따랐다. 1991~2018년 대규모 낙동강 수질오염 사고로 기록된 것만 9차례였다. 그사이 대구시는 2006년에 이어 2009년, 2012년 구미산단 상류로 취수원 이전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정부는 2015년 대구의 취수원을 해평취수장으로 이전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2025 수동정비기본계획’을 고시했다. 이후 대구와 구미 간 민관협의회가 구성돼 9차례에 걸쳐 취수원 이전 문제를 논의했지만, 수량 부족·수질 악화·재산권 침해 확대 등을 우려하는 지역주민의 반대로 진전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10월 ‘국무총리 주재 관련 지자체장 회동’을 통해 낙동강 물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용역을 추진하기로 합의, 대구의 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했다. 용역 결과는 특정 지역에서 전량을 취수해 해당 지자체에 부담을 가중하는 기존 대안과 달랐다. 유역 상생의 원칙에 따라 모든 지자체가 고루 편익을 누려 지역 간 갈등을 극복하는 ‘취수원 다변화 방안’을 제시했다.

취수원 다변화 방안은 지난해 6월24일 낙동강유역물관리위원회 의결을 거쳐 정부 계획으로 최종 확정됐다. 당시 장세용 구미시장도 그해 8월 취수원 공동활용 조건부 수용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 계획 확정 이후 대구시민이 사용할 물의 일부를 구미에서 끌어온다는 내용을 담은 ‘맑은 물 나눔과 상생발전에 관한 협정서’ 업무협약이 지난 4월 정부세종청사에서 체결됐다. 이날 행사에는 국무조정실·환경부·한국수자원공사·대구시·경북도·구미시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대구지역의 하루 취수량인 약 58만t 중 30만t을 구미시 상류에 위치한 해평취수장에서 공동 활용하는 방안에 합의하고 서명했다. 나머지 28만t은 대구 문산·매곡 취수장에서 취수한다는 내용 등이 협정문에 담겼다. 협정문에는 상생지원금 100억원 지원, 구미국가5산단 입주 업종 확대, 2차 공공기관 이전에 구미 우선 유치, 해평습지 일대 생태축 복원사업 우선 추진 등 구미시에 주는 보상책도 있다.

당시 김부겸 국무총리는 “(협약은) 기관 간에 합의가 된 것”이라며 “중간에 기관장이 바뀌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도 이 자체는 절대로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취수원 공동이용을 놓고 대구시와 구미시 간 10년 넘게 이어온 갈등이 봉합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진 이유다. 하지만 지역 국회의원·지방의원과 일부 주민들은 수자원 고갈, 수질 악화, 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반대 성명서를 내고 집회를 하는 등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은 상태였다.

■“협정서 잉크도 안 말랐는데”

민선 8기가 출범하면서 물 문제는 다시 미궁으로 빠졌다. 단체장이 대거 바뀌면서 대구 취수원 이전은 ‘원점 재검토’ 대상이 됐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취임 후 “(환경부 등이 맺은) 협정은 시민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임기 말 지자체 단체장들끼리 체결한 협정이어서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다시 ‘물 전쟁’ 발발을 알리는 일성이었다.

김 시장은 지난 1일 구미시청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도 “취수원 관련 협약은 구미의 발전과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게 별로 없다”며 “대구시에서 일시금 100억원, 낙동강수계관리기금에서 매년 100억원 지원이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상수원으로 지정되면 규제만 많아진다고 했다. 이철우 경북지사도 애초 협약 당시 구미시민의 동의 절차가 빠져 있는 점을 지적하며 정부의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경북도와 구미시의 반발 움직임에 홍준표 시장도 살짝 방향타를 꺾었다. 홍 시장은 “식수로는 댐물이 적합하다”며 구미시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안동댐과 임하댐 등의 물을 끌어와 대구의 식수로 활용한다는 ‘맑은 물 하이웨이’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홍 시장은 취수원 다변화 합의에 더해 댐물 활용을 추가로 추진하는 투트랙 전략을 제시했다.

홍 시장은 특히 김장호 구미시장의 재검토 발언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홍 시장은 지난 8일 “(김 시장이) 좀 괘씸한 생각이 든다. 구미국가산업단지가 (낙동강) 하류의 물을 오염시켜 놓고 상류의 상수원(해평취수장)을 달라고 하니 못 주겠다는 말은 언어도단”이라고 직격했다. 또 “대구의 물 문제는 구미산단 때문에 생겼다. 구미산단이 처음부터 무방류 시스템을 도입했다면 낙동강 물은 깨끗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환경부가 취수원 다변화 협약을 바탕으로 추진하는 낙동강 유역 공급체계 사업은 지난달 말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해 곧 타당성 조사에 돌입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협약 내용 변경을 요청한 지자체는 없다”며 “절차에 따라 예정대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낙동강 식수원 20년 지역갈등, 단체장 바뀌자 원점으로

■경남 물을 부산으로?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황강 복류수·창녕 여과수, 부산 공급’
기재부, 사업 예비타당성조사 통과에
경남도 “주민 동의 없는 결정, 불가”

부산·경남도 식수원을 둘러싼 갈등이 최근 심화되고 있다. 경남 합천군 합천댐 황강 복류수와 창녕군 낙동강 강변여과수를 부산에 공급하는 ‘낙동강 먹는 물 공급 사업’이 최근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사실이 알려지자 경남 합천·창녕·거창 주민들은 “주민 동의 없는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합천군 적중면 황강변에 있는 횡보마을 주민들은 정부의 황강물 부산 공급 정책에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 마을은 복류수 취수시설 설치 예정지다. 홍모씨(65)는 “30년 전에도 주민 반대로 무산된 사업인데 또 밀어붙이기식 사업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모씨(71)는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묶이면 재산권이 침해된다”며 “앞으로 시끄러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낙동강 창녕함안보가 있는 창녕군 길곡면 증산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도 “하루 45만t의 강변여과수를 부산에 주면 지하수 고갈로 농사도 지을 수 없는데 왜 자꾸 강행하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앞서 기재부는 지난 6월30일 ‘낙동강 유역 안전한 먹는 물 공급체계 구축사업’이 타당성을 확보한 것으로 심의, 의결했다. 낙동강 유역 취수원의 다변화를 통해 부산, 대구, 울산, 경북, 경남 등 낙동강 유역 700만 주민의 먹는 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이다. 정부와 한국수자원공사가 2028년 준공을 목표로 총사업비 2조4959억원을 투입한다. 환경부는 올해 하반기에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에 착수하고 2024년 기본 및 실시설계, 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쳐 2025년 착공한다.

이 사업에는 합천 황강 복류수(45만t)와 창녕 낙동강변여과수(45만t) 등 하루 평균 90만t을 개발해 부산과 경남 중동부에 공급하기 위한 취수시설과 관로 102.2㎞를 건설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1994년 ‘합천댐 광역상수도사업 계획’이 유사한 형태로 추진됐으나 주민 반발 등으로 백지화와 추진을 반복했다.

경남도도 주민들의 동의가 없으면 불가하다는 태도다. 경남도는 지난해 6월 해당 사업에 대해 조건부 동의를 했다. 당시 경남도는 “경남은 191만명(도민 3분의 2)이 낙동강 본류를 식수로 사용하기 때문에 도민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새로 취임한 박완수 경남지사는 지난달 6일 관련 부서 업무보고를 받고 “주민 동의를 얻은 뒤 추진해야 한다”며 “최대한 주민의 도움이 될 수 있는 성과보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부산시와 환경부 관계자는 “영남권 주민의 식수 안전을 확보하고, 낙동강 상·하류 간 먹는 물 갈등 구조를 없애는 데 필요한 사업”이라며 “경남도민의 소중한 물을 부산에 주는 만큼 상생방안을 마련해 해결방안을 찾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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