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예비시험, 비싼 학비 대안” “사시 부활로 로스쿨 취지 훼손”

류인하 기자

‘로스쿨 개선’ 법조계 논쟁

사법시험 시대에서 로스쿨 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법조계가 요즘 시끄럽다. 정치권과 대한변호사협회 등을 중심으로 ‘변호사 예비시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예비시험에 합격하면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아도 변호사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주자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로스쿨 학비가 너무 비싸 가난한 사람은 법조인이 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로스쿨 재학생이나 관계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예비시험 도입은 사법시험을 부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고시 낭인’을 없애기 위해 도입한 로스쿨 체제의 기반을 흔들 것이라는 이유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법조계에서는 당분간 격론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모의법정에서 지난 3월28일 서울고등법원의 실제 재판이 열리고 있다. 시작한 지 5년째로 접어든 로스쿨 제도를 두고 “돈이 너무 많이 든다”며 변호사 예비시험 제도 도입 등 개선 요구가 나오고 있다. |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서울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모의법정에서 지난 3월28일 서울고등법원의 실제 재판이 열리고 있다. 시작한 지 5년째로 접어든 로스쿨 제도를 두고 “돈이 너무 많이 든다”며 변호사 예비시험 제도 도입 등 개선 요구가 나오고 있다. |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 “서민층 법조인 진출에 도움” 정치권·변협 등 도입 목소리
“예비시험 땐 고시 낭인 양산” 로스쿨 재학생·관계자 ‘반발’

■ “로스쿨은 개천의 용 막는다”

변호사 예비시험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모든 것이 로스쿨의 비싼 학비에서 출발한다. 돈이 없어 로스쿨에 못가고, 그래서 법조인이 될 수 없고, 이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문제를 낳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로스쿨의 연간 등록금은 국립대가 평균 약 1000만원, 사립대는 약 2000만원이다. 사립대 로스쿨의 경우 3년 과정을 이수하려면 학비만 6000만원 이상에 생활비 등을 포함하면 1억원 안팎의 돈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는 사법시험이 완전히 없어지는 2018년부터는 로스쿨이 법조인이 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되는 것이다. 사법시험은 본인이 공부만 잘하면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도 합격할 수 있다. 그러면 로스쿨을 마치는데 필요한 1억여원을 쓰지 않아도 된다.

위철환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법조인이 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1억원 안팎의 돈을 부담하게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돈없는 사람들이 법조인이 되는 길을 막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 “예비시험도 돈 많이 들어”

하지만 로스쿨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예비시험의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선 예비시험은 사법시험의 부활이나 마찬가지여서 ‘고시 낭인’의 부작용을 다시 초래할 것이라고 말한다. 예비시험은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아도 변호사 시험을 치를 자격을 주는 것이지만 조건이 있다. 예비시험을 통해 로스쿨 졸업생만큼의 법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따라서 합격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5%에 못미치는 사법시험 합격률과 마찬가지로 변호사 예비시험을 통과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그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처럼 극심한 경쟁을 뚫으려면 수험생들은 고시전문 학원 등 사교육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고시 낭인’처럼 ‘예비시험 낭인’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또 기존 법과대학생 등은 로스쿨에서 3년을 더 공부하는 대신 예비시험을 선택하게 되고, 로스쿨은 학생들이 이탈하면서 공동화될 수 있다는 게 예비시험 반대 측의 주장이다.

■ “어쨌든 로스쿨 제도는 개선해야”

로스쿨 도입의 취지는 여러가지였다. ‘고시 낭인’을 없애고, 다양한 분야의 학식을 가진 법조인을 양성해 법률 서비스를 다양화한다는 등이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명문대를 일컫는 이른바 ‘스카이(SKY)’ 대학 위주의 법조인 구성을 바꾸는 것도 도입 이유의 하나였다.

하지만 현실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국내 10대 대형로펌에 입사한 로스쿨 1기생 대부분이 ‘스카이’ 대학의 로스쿨 출신이다. 최근 영입광고를 낸 법무법인 광장의 경우 영입한 6명의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은 모두 서울대·연세대 로스쿨을 나오거나, 서울대나 고려대 학부를 졸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 로스쿨 교수인 브라이언 타마나하 교수는 최근 출간한 <로스쿨은 끝났다>에서 로스쿨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조달하기 위해 학생의 90%가 대출을 받고 있지만 졸업생 3명 중 1명은 취업에 실패하고, 취업하더라도 비정규직이거나 시간제인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또 15대 명문 로스쿨 졸업생 중 30~70%가 250대 대형 로펌에 취업하지만 하위권 로스쿨 졸업생의 대형로펌 취업률은 5%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가난한 학생들도 로스쿨에 다닐 수 있도록 장학금을 확충하고, 대학별 ‘취업 빈익빈 부익부’ 문제 등을 개선할 방안을 내놓지 못하면 예비시험 도입주장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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