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재판 결과 미리보기
박근혜 전 대통령(66)이 지난해 4월 구속 기소되면서 적용된 혐의는 모두 18개로, 모두 최순실씨(62) 등 측근들과 공모한 범죄다. 공범들의 선고가 잇따라 나오면서 이르면 다음달 중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박 전 대통령의 1심 재판 결과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혐의 중 15개가 다른 재판에서 유죄로 판명된 상태다.
■ 최순실과 공모 혐의 중 11개 유죄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 부장판사)는 최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며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한 13개 혐의 가운데 11개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1심 재판도 심리하고 있어 사실상 박 전 대통령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과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판부는 최씨가 18개 대기업을 상대로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출연금 774억원을 모금한 직권남용·강요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며 박 전 대통령의 책임을 분명히 했다. 최씨의 요청을 받은 박 전 대통령이 2015년 10월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59)에게 재단 설립을 지시했고, 안 전 수석이 대기업 등에 출연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기업활동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막대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의 요구사항이라는 점이 기업들의 재단 출연에 가장 큰 동기가 됐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최씨가 삼성으로부터 승마지원 명목으로 73억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면서도 박 전 대통령이 핵심 역할을 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단독면담 과정에서 뇌물을 요구하고, 최씨는 단순히 뇌물을 수령한 것을 넘어 박 전 대통령의 의사를 실행에 옮겼다”고 설명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63)과 최태원 SK그룹 회장(58)을 상대로 K스포츠재단에 각각 70억원과 89억원을 내도록 한 혐의도 마찬가지 이유로 유죄가 됐다. 그러나 최씨가 삼성으로부터 받은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204억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에 대한 뇌물수수 혐의는 무죄가 되면서 박 전 대통령 역시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 블랙리스트 혐의 모두 유죄
박 전 대통령이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와 단체를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고, 이에 소극적인 문화체육관광부 1급 공무원들의 사직을 요구하는 등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도 유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의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조영철 부장판사)는 지난달 23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9) 등에게 실형을 선고하며 1심과 달리 박 전 대통령의 공모관계를 명시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문제 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등의 문건을 포함해 포괄적·개별적인 지원배제 관련 사항을 모두 김 전 실장 등에게 보고받고 승인했다”며 “이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직권을 남용한 행위”라고 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은 공범으로서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 전 실장이 블랙리스트 적용에 소극적이던 문체부 1급 공무원 3명을 사직조치한 혐의도 유죄로 보고 박 전 대통령의 공모 사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당시 1급 공무원들에 대한 사직 요구는 이례적이어서 김 전 실장이 대통령의 의사와 무관하게 처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 청와대 문건 유출도 박 지시
최씨에게 14건의 청와대 기밀문건을 유출한 혐의가 인정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9)은 1·2심에서 모두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박 전 대통령 사건 재판부와 같은 정 전 비서관 사건 1심 재판부는 “정 전 비서관이 박 전 대통령의 포괄적·명시적 혹은 묵시적 지시에 따라 문건을 최씨에게 보내줬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공범인 박 전 대통령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도 유죄로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정 전 비서관이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범행 책임을 사실상 박 전 대통령에게 돌렸다.
법조계에선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각종 혐의에서 유죄가 인정된다면 형량이 최소한 최씨(징역 20년)보다 많은 것은 물론 최대 무기징역까지도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