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항소심 ‘집유 석방’ 왜
1심에선 “대통령 강요 모두 거절 못하는 건 아니다” 판단해 실형
항소심선 “명시적 청탁 없었고 뇌물 책임을 엄격히 물을 수 없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63)이 1심과 같이 항소심에서 70억원의 ‘제3자 뇌물공여’ 혐의를 유죄로 판단받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은 재판부가 “강요의 피해자”라는 신 회장 측 주장을 양형에 적극 반영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0)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의 논리와 유사하다. 이 부회장 역시 36억여원의 뇌물공여 혐의가 유죄로 나왔지만 “요구에 따른 뇌물”이란 이유로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지난 2월 풀려났다.
재벌기업이 특혜를 노리고 뇌물을 건넨 책임을 항소심 재판부가 가볍게 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신 회장의 뇌물 혐의에 대한 서울고법 형사8부(재판장 강승준 부장판사)의 판단은 신 회장에게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던 1심과 정확히 같았다. 1심과 항소심 모두 신 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2016년 3월 독대 자리에서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재취득 현안을 청탁하고, 그 대가로 ‘비선실세’였던 최순실씨(62) 측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 출연한 제3자 뇌물공여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신 회장이 독대 당시 박 전 대통령에게 면세점 특허 재취득을 ‘명시적’으로 청탁하진 않았지만, 이 사안이 롯데그룹의 최대 현안임을 알고 있는 박 전 대통령에게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을 하며 뇌물을 건넸다고 본 것이다. K스포츠재단 지원이 면세점 특허 재취득을 돕는 것과 대가관계에 있다는 점을 신 회장과 박 전 대통령 모두 인식했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제3자 뇌물공여 혐의가 유죄라는 판단은 1심과 항소심이 같았지만, 신 회장이 항소심에서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은 양형 이유에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요구로 뇌물을 공여하게 된 점을 신 회장에게 유리한 양형사유로 적극 반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은 박 전 대통령이 먼저 적극적으로 신 회장에게 금전 지원을 요구한 것”이라며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의 요구에 불응할 경우 기업활동 전반에 걸쳐 불이익을 받을 두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신 회장은 뇌물수수자의 강요행위로 의사결정이 다소 제한된 상황에서 지원금을 교부했다. 피해자인 신 회장에게 뇌물공여 책임을 엄격히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이를 양형에 적극 반영했다.
이는 1심 재판부가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하기 쉽지 않았더라도 기업인들이 유사한 상황에서 모두 신 회장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공정성을 훼손하는 뇌물 범죄가 정치·경제권력의 최상위층에 있는 대통령과 재벌기업 회장 사이에 벌어지는 경우 더더욱 엄히 처벌해야 한다”고 상대적으로 높은 형량을 준 것과 대비된다.
항소심 재판부는 또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뇌물을 공여한 사람과 달리 볼 필요가 있다”며 “실제로 강요죄의 피해자 입장에 있는 사람이 뇌물공여죄로 기소돼 처벌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고 밝혔다. 신 회장이 공익적으로 사용될 것이라 생각하며 돈을 건넸다는 점도 유리한 사유로 참작됐다.
기업인이 어쩔 수 없이 뇌물을 공여했다는 논리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의 논리와 유사하다. 지난 2월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36억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며 “정치권력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뇌물을 제공한 것”이라고 판단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