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국정농단 선고

“삼성 말, 최씨 처분 가능해 뇌물…영재센터 후원금도 대가성”

이혜리 기자

‘2심’ 뒤집은 대법 판결

‘삼성 승계작업-뇌물 대가관계’ 2심 최씨 판결 논리 인용
장래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현안도 ‘부정 청탁’ 인정 가능
최순실 정한 방법대로 정유라 삼성 말 3필 사용 “뇌물 맞다”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 선고가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시작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진 크게보기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 선고가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시작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9일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 부장판사)의 지난해 2월 2심 판결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집행유예로 이 부회장을 풀어주면서 ‘면죄부 판결’이라는 비판을 받은 2심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며 잘못된 판결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이날 함께 선고한 뇌물수수자 최순실씨 사건에서 2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인정하면서 삼성 뇌물 부분을 판단했다. 경영권 승계작업이 존재했고,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게 핵심이다.

■ 이재용 면죄부 2심 판결 반박

[대법, 국정농단 선고]“삼성 말, 최씨 처분 가능해 뇌물…영재센터 후원금도 대가성”

문제는 박 전 대통령과 별도 단체에 뇌물이 귀속된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된 혐의였다. 삼성이 최씨가 운영하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2800만원을 후원한 게 대표적이다. 제3자 뇌물죄는 공무원에게 ‘부정한 청탁’을 하며 제3자에게 대신 뇌물을 줘야 성립한다. 즉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하며 영재센터에 후원금을 냈어야 범죄가 성립한다. 이 부회장 2심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해 이 부회장이 지배력 확보에 이득을 얻었고, 청와대에서 승계작업 관련 보고서를 작성한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고 했다.

대법원은 부정한 청탁의 내용이 구체적일 필요가 없고 묵시적 의사표시로도 가능하다는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김문석 부장판사)의 최씨 2심 판결이 맞다고 판단했다. 김 대법원장은 “확립된 대법원의 판례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삼성이 조직적으로 승계작업을 했고, 승계작업 자체로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심이 인정한 사실관계에 따르면 최소 비용으로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들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권 강화라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삼성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승계작업을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며 “이러한 뚜렷한 목적과 성격을 가진 승계작업에 대해 대통령의 권한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특정됐고 부정한 청탁의 내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재판에서 삼성 측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개별 현안들과 관련해 이 부회장이 청탁을 하고, 이익을 받았다는 인과관계가 증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현안이 독대 이전에 종결됐다면서 부정한 청탁을 부인하는 중요 근거로 내세웠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사건의 1심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이미 발생한 현안뿐만 아니라 장래 발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현안도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만 특정되면 부정한 청탁의 내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관계, 이익의 수수 경위와 시기, 이익의 수수로 사회 일반으로부터 직무집행의 공정성을 의심받게 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심리하지 않은 게 이 부회장 2심 판결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 뇌물 감추려 말 소유자 삼성으로

이 부회장 2심이 뇌물로 인정하지 않았던 ‘말 3필’도 대법원은 뇌물이 맞다고 판단했다. 최씨 회사인 코어스포츠가 삼성과 체결한 용역계약과 말의 여권에 말 소유자가 삼성전자로 기재됐다는 것을 근거로 최씨에게 말이 넘어가지 않았다는 삼성 측 주장을 이 부회장 2심은 받아들였다. 2심은 최씨가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에게 “이 부회장이 VIP(박 전 대통령)에게 말 사준다고 했지, 언제 빌려준다고 했느냐”고 화를 냈다는 대목을 놓고도 삼성이 말 소유권을 쉽사리 넘겨주지 않자 최씨가 화를 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대법원 판단은 반대였다.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할 때 최씨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훈련비용 지원을 요구받았고, 지원을 하는 과정에서도 구체적인 방식은 최씨가 정하는 대로 이뤄졌다는 점을 대법원은 먼저 짚었다. 이 부회장으로서는 최씨가 가급적 만족할 수 있도록 원하는 대로 뇌물을 제공하되 그 사실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한 관심사였고, 이 때문에 말 여권 등에 소유자를 삼성전자로 기재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최씨가 말을 임의로 처분하거나 최씨 잘못으로 말들이 죽거나 다치더라도 그 손해를 삼성전자에 물어줘야 할 필요가 없었다”며 “말은 이 부회장이 최씨에게 제공한 뇌물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이 ‘강요의 피해자’라고 주장해왔지만 대법원은 거꾸로 봤다.

대법원은 “(이 부회장은) 단독 면담에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요구를 받은 다음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승마 지원을 진행했다”고 했다. 삼성전자와 용역계약을 체결할 즈음 액수 미상의 승마 훈련비용을 뇌물로 받기로 약속한 혐의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 2심에서만 유일하게 유죄로 인정됐는데, 대법원도 유죄가 맞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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