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배 영장기각 망신당한 검찰…기로에 선 대장동 수사

허진무 기자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김만배씨가 15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김만배씨가 15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의 구속영장을 법원이 지난 14일 기각하면서 검찰의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수사에 급제동이 걸렸다. 핵심 피의자의 구속영장을 어설프게 청구해 수사가 암초를 만난 것은 물론 ‘부실 수사’ ‘봐주기 수사’ 논란을 자초했다.

김씨는 ‘50억원 클럽’ ‘350억원 로비 실탄’ ‘유동규 700억원 약정설’ ‘천화동인 1호 실소유주 논란’ ‘그분 발언’ 등 정·관계 로비 의혹의 당사자로 꼽힌다. 김씨의 동업자인 정영학 회계사가 검찰에 제출한 녹음파일,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팀장을 지낸 정민용 변호사가 검찰에 제출한 자술서가 의혹의 핵심으로 일제히 가리키는 인물이다. 김씨 신병을 확보한 뒤 정관계 로비 의혹의 실체에 접근하려던 검찰의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김씨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을 두고 검찰 안팎에선 ‘정영학의 녹음파일에만 의존한 수사가 야기한 참사’라는 말이 나온다. 검찰은 김씨의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 정 회계사가 제출한 녹음파일 말고는 아무런 물증을 제시하지 못했다. 검찰은 녹음파일을 법정에서 재생하려다 재판장에게 제지당했다. 그나마 녹음파일의 증거능력도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대법원 판례상 녹음파일이 증거능력을 가지려면 원본이거나 원본 내용 그대로 복사된 사본이어야 하고, 녹음된 대화가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뤄져야 한다. 검찰이 조사 과정에서 김씨 측에 녹음파일을 들려주지 않아 피의자의 방어권 침해로 해석될 여지도 있었다.

검찰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영장을 청구했는지 보여주는 정황은 또 있다. 검찰은 김씨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게 ‘현금 1억원’과 ‘수표 4억원’을 건넸다고 영장청구서에 적었지만 심사 당일에는 ‘현금 5억원’으로 주장을 바꿨다. 기본적인 수표 추적 결과도 없이 영장을 청구했다가 심사 당일에야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고 부랴부랴 범죄사실을 수정한 것이다. 더구나 현금으로 오간 뇌물은 돈을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 중 한 명이 자백하지 않는 한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다. 앞서 구속된 유 전 본부장의 5억원 뇌물수수 혐의도 입증하기 쉽지 않게 됐다.

검찰은 수사 능력은 물론 의지까지 의심받고 있다. 검찰이 김씨 영장 기각 다음 날인 15일 성남시청을 압수수색하자 검찰 내부에선 “망신스럽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검찰은 검사 18명으로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을 구성한 지난달 29일 화천대유, 천화동인 1~7호, 성남도시개발공사를 압수수색하면서 대장동 사업의 인·허가를 담당한 성남시청은 제외했다. 대장동 의혹이 처음 불거진 지난달 초부터 한 달 넘는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증거가 인멸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한 부장검사는 “성남시청도 처음부터 압수수색해 전체적인 관계를 살펴봐야 했다”며 “핵심 피의자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가장 기초적인 수사조차 건너뛰었다”고 지적했다.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김만배씨가 지난 14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김만배씨가 지난 14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검찰은 증거를 보강해 김씨의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김씨 신병을 확보하지 않고는 정·관계 로비 의혹을 규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날 유 전 본부장이 2014~2015년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이 휴대전화에 김씨 등 대장동 개발 세력이나 성남시 윗선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단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검찰은 김씨의 자금 흐름이 드러난 것부터 추적할 것으로 보인다. 김씨 구속영장이 또다시 기각되면 수사 동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상대적으로 입증이 수월한 혐의부터 증거를 단단히 다지려 할 공산이 크다. 김씨는 화천대유에서 473억원을 대여해 정·관계 로비에 썼다는 의혹을 받는다. 박영수 전 특별검사의 인척인 대장동 아파트 분양업체 대표 이모씨에게 109억원이 흘러갔다. 대검 중수부 출신 변호사는 “수상한 금전 거래를 찾더라도 불법을 증명하려면 관계자 진술이 있어야 한다”며 “김씨 주변을 압박해 실마리를 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팀은 이날 “영장 기각 사유를 면밀히 검토해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며 “공정하고 엄정하게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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