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 먹구름, 일각에선 디플레 우려까지

박상영 기자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상품들. 연합뉴스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상품들. 연합뉴스

예상보다 물가 오름세가 길어지고 경기 둔화가 빠르게 가시화되면서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상승)을 점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돈줄을 조이려는 중앙은행의 움직임이 빨라지면 자칫 물가와 수요 모두 장기간 하락하며 큰 후유증을 남기는 경기침체인 디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10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전체 회원국들의 올해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전보다 4.3% 올랐다. 1월에 1.5%였던 물가 상승률은 3월 2%대, 4~5월 3%대를 거쳐 6월 4.0%, 7월 4.2% 등으로 가파른 가속 추세를 보이고 있다. 물가 급등은 2008년 9월 이후 약 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의 상승률을 보인 에너지 가격(18.0%) 급등 영향이 크다. 전문가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추가 증산 요구 거부 등 공급 측 요인 뿐 아니라 저탄소로 전환을 위한 정책 비용에 기후변화 현상까지 복합적으로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실제 전력의 약 16%를 풍력에 의존하는 유럽은 무더위와 건조한 기후 탓에 예년보다 바람이 불지 않아 공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천연가스 발전소 가동률을 높였다. 수요가 몰리면서 공급 차질 현상이 발생한데다 탄소배출권 비용 부담까지 겹치면서 전기요금은 가파르게 올랐다. 전력의 약 68%를 화력 발전에 의존하는 중국도 호주와의 분쟁에 탄소중립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최근 전력난에 직면하자 전기요금을 최대 20% 인상하기로 허용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탄소중립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과정에서 에너지 산업 투자가 위축되면서 가격이 급등했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의 여파는 식량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요 수출국 작황 부진으로 곡물가격이 1년 전보다 27.3% 상승하면서 9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30.0 포인트로 2011년 9월(130.4 포인트)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브라질에서 100년래 최악의 가뭄과 서리가 내리면서 설탕 가격도 53.5% 올랐다. 여기에 바이오디젤에 쓰이는 팜유 선물 가격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경기에 대한 기대감이 꺾인 점도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델타변이 확산 영향도 있지만 경기활성화를 위해 그동안 추진됐던 낮은 금리와 자금 조달 프로그램이 종료되면서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경기 활성화를 위한 지속됐던 정부의 확장적인 재정정책 기조도 점차 둔화할 것이라는 예상도 반영됐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부채한도 협상과 중국 헝다 그룹 유동성 문제가 불거졌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예측기관들이 성장률 전망치를 계속 상향 조정했던 동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4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과 부채 위험 증가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7월 전망치보다 소폭 낮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돈줄을 조이려는 중앙은행의 움직임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자칫 디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막대한 부채로 인해 금리가 올라갈 경우, 경기도 꺾이고 자산시장 가격도 하락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경기가 개선되지 않으면 내년에는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우 이코노미스트는 “금리 상승으로 주식·부동산 가격이 급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부는 연착륙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중론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 센터장은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서 금리인상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2011년부터 제기됐지만 실제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는 시점은 2015년이었다”며 “반면 유럽중앙은행(ECB)은 섣불리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오히려 역효과만 발생했다. 경기가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한은은 오는 12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현 0.75%로 동결할 것으로 보이지만, 금융리스크가 갈수록 커지는 터라 연내 마지막 금통위가 열리는 11월에는 금리 추가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시장은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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