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유출 수사 정보 매우 구체적…검 “소극적” 반박과 달라

이혜리 기자

사법농단 재판 뜯어보니 석연찮은 의혹

이원석, 한동훈

이원석, 한동훈

이 내정자가 감사관에 먼저 전화해 영장 내용 자세하게 전달
한동훈, 당시 수사 지휘…법조계 “이 내정자 관여 알았을 것”

이원석 검찰총장 내정자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 내정자가 2016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일 때 ‘정운호 게이트’ 수사 정보를 법원행정처로 유출한 것에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비위 법관의 직무배제·징계 등 조치를 위해 필요한 부분만 한정해 알려줬고, 수사도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의혹이 처음 불거진 2019년 서울중앙지법의 ‘사법농단’ 재판을 복기해보면 사안이 그리 간단치 않다.

신광렬 전 판사 등 사법농단 사건 피고인들은 법정에서 이 내정자가 2016년 5월4, 5, 11일 등 수차례 김현보 전 행정처 윤리감사관에게 먼저 전화해 ‘1000만원 수수’, ‘레인지로버 차량 인수’, ‘취득세·여행료 대납’과 같이 피의자 영장에 기재된 혐의사실, 참고인 진술 등을 상세히 알려줬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신 전 판사 등이 법관 비리 은폐·축소를 위해 수사 정보를 행정처로 유출했다(공무상 비밀누설)며 기소했다. 이에 대해 피고인들은 수사책임자인 이 내정자가 스스로 유출한 정보가 어떻게 비밀이냐고 따진 것이다.

검찰은 이 내정자가 김 전 감사관의 전화에 소극적·수동적으로 답했다고 반박했다. 이 내정자와 피고인들 행태는 다르다는 것이다. 반면 피고인 변호인들은 신 전 판사 등이 행정처에 알려준 것보다 이 내정자가 더 자세히 알려줬다고 반박했다. ‘행정처에서 이 내정자를 통해 알게 된 것은 법관 비위사항뿐만이 아니다. 검사나 검찰 수사관의 비위 내용도 많이 있다’고 했다. ‘한정된 정보만 전달했다’는 이 내정자 해명과 다르다.

김 전 감사관은 이 내정자와 40회 이상 통화한 내용을 35건의 문건으로 정리했는데, 재판에선 그중에서도 “이원석→ 감사관 2016·8·9. 19:20경 전화로 영장청구 예정사실 통지”라는 문구가 논란이 됐다. 김수천 판사에게 금품을 준 브로커에 대한 계좌추적 영장 청구 사실을 이 내정자가 미리 알려준 것이다. 통화 다음날인 2016년 8월10일 김 전 감사관은 김 판사를 불러 대면 조사했는데, 그 직후 김 판사는 브로커에게 허위진술을 부탁했다.

피고인들은 김 판사의 증거인멸 시도가 이 내정자의 ‘영장청구 예정사실 통지’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반면 검찰은 같은 날 피고인들이 영장기록에서 빼내 행정처에 보고한 ‘153쪽짜리 수사보고서’가 증거인멸 시도의 토대였다고 주장했다. 이 수사보고서의 출처는 끝내 규명되지 못했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내정자와 김 전 감사관 통화 내용에는 수사보고서의 중요 내용이 대부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사법농단 사건을 수사하며 이 내정자는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내정자가 비위 법관 조치를 위해 행정처에 수사 정보를 일부 알려준 것이어서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피고인들도 이 내정자의 수사 정보 유출이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유사한 행위를 한 자신들도 무죄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고인들의 전략은 통했다. 법원은 검찰이 스스로 행정처에 수사 정보를 알려준 정황을 보면 신 전 판사가 행정처에 알려준 수사 정보를 유출해서는 안 될 만한 비밀로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에 있는 김 전 감사관의 업무용 e메일을 압수수색해 이 내정자와의 통화 내용을 정리한 35건의 문건을 확보했다. 검찰은 재판 초반에 이 문건을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 문건은 피고인 변호인들이 증거개시를 요청한 끝에 법정에 현출됐다. 피고인들은 “검찰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숨긴 것”이라고 주장했고, 검찰은 “수사기록 목록에 다 들어 있다. 은폐하려던 것이 전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로 사법농단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사법농단 피고인들을 기소할 때 검찰이 적용한 잣대에서 보아 이 내정자의 수사 정보 유출에 위법의 소지가 있다면, 수사책임자로서 이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한 장관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한 장관도 이 내정자의 수사 정보 유출 의혹의 당사자인 셈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23일 “한 장관은 (이 내정자가 관여된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이 내정자와 신 전 판사 등에게 댄 잣대가 같았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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