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허위공시 기업, 주가에 허위공시 영향 없다는 점 입증 못하면 투자자에게 배상해야” 첫 판단

박용필 기자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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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공시를 한 기업이 허위공시가 주가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손실을 본 주식 투자자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원심은 불법행위와 손해 사이에 ‘인관관계가 있음’을 투자자가 증명해야 한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기업에 입증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대한전선 주식 투자자 121명이 대한전선과 이 회사의 전직 임원, 안진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1일 밝혔다.

대한전선은 2011년 3086억원의 순손실을 냈다고 공시했다. 그러나 실제 순솔실액은 5747억원에 달했다. 27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통해 실적을 허위로 공시한 것이다. 투자자들은 이 공시를 믿고 대한전선의 주식을 매입했다.

이후 대한전선은 2013년 11월부터 재무 상황을 정상적으로 공시했다. 대한전선의 분식회계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정상 공시 직후인 그해 11월 20일 대한전선 주식 종가는 2485원까지 떨어졌다.

다음해인 2014년 12월 대한전선의 분식회계 사실이 공표되고, 대한전선은 주식매매거래 정지조치를 당했다. 1년 뒤 매매거래가 재개되자 대한전선의 주가는 479원으로 폭락했다.

투자자들은 대한전선의 허위공시로 주식을 정상가격보다 높게 사들였고, 이후 주가가 폭락해 손해를 봤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2·3심 모두 주식의 정상가격(허위공시가 없었을 경우의 정상적인 주식가격)과 허위공시로 인해 주가가 부풀려진 상태에서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입한 가격 간의 차액을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어느 시점의 주가가 ‘정상가격’인가 하는 것이었다.

1심은 대한전선이 주식매매거래 정지조치를 당한 이후의 주가인 479원을 정상가격으로 판단했다.

반면 2심은 대한전선이 정상공시를 한 직후의 주가인 2485원을 정상가격으로 판단했다. 이미 정상공시가 이뤄진 뒤의 주가이고, 앞선 허위공시가 여전히 주가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정상공시가 이뤄졌다고 해도 앞선 허위공시가 주가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으면 허위공시의 영향이 남은 것으로 ‘추정’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투자자 보호의 측면에서 손해액 추정조항을 둔 자본시장법의 입법취지에 비춰, 주가 하락이 사업보고서 등의 거짓 기재 때문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정도의 증명만으로는 ‘손해액의 추정’이 깨진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허위공시 기업의 경우) 정상공시 직후 형성된 주가를 정상주가라고 보려면, 반드시 피고(기업)측에서 그것이 허위공시로 부양된 부분이 제거된 것이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판시한 첫 판결”이라며 “하급심에서 같은 유형의 손해배상 사건을 심리할 때 지침이 되는 판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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