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 유속 근거로 ‘실족’ 방점 찍은 검찰

이혜리 기자

‘서해 피살’ 재판 쟁점

바닷물 유속 근거로 ‘실족’ 방점 찍은 검찰

검찰, 서훈 영장심사 때
현장검증 촬영 영상 재생
“유속 빨라 배에서 멀어져”

서훈 측 SI에 ‘월북’ 등장
“검, 이씨 이동 경로 밝혀야”
구속 뒤 첫 검찰 조사받아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과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 이대준씨가 바다에 빠진 경위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인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실족’이 원인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서 전 실장 등이 ‘월북’으로 속단했다고 주장했고, 서 전 실장 측은 관련 첩보 등을 근거로 월북이라고 판단했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이 문제는 향후 재판에서도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5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서 전 실장 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은 이씨가 바다에 빠진 원인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실족’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서 전 실장은 이씨 피살 다음날인 2020년 9월23일 오전 1시쯤 열린 청와대 관계장관회의에서 이씨 사망을 월북으로 속단하고 관련 부처에 자료를 삭제·작성하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등)를 받는다.

바닷물 유속 근거로 ‘실족’ 방점 찍은 검찰

검찰은 지난 9월 연평도 해역에서 이씨가 탄 어업지도선과 비슷한 선박을 타고 현장검증하며 촬영한 영상을 법정에서 재생했다. 영상은 바닷물에 손을 넣어 유속이 얼마나 빠른지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검찰은 깜깜한 밤 배에서 바다로 이탈하게 된 이씨가 이같이 빠른 물살 속에서 순식간에 배에서 바깥 방향으로 휩쓸려 갔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 ‘월북’이라는 단어가 한국에서 누군가를 낙인찍을 수 있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모종의 의도를 갖고 월북이라고 속단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씨가 배에서 이탈한 뒤 수십㎞ 떨어진 북한 해역까지 어떻게 가게 됐는지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10월 감사원 감사결과에 따르면 이씨는 최초 실종지점에서 27㎞(1차), 38㎞(2차) 떨어진 곳에서 북한군에 의해 발견됐다. 검찰 입장은 이씨가 배에서 실족한 뒤 빠르게 배에서 멀어진 것을 보면 이씨 의지에 따라 북한까지 간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보인다.

서 전 실장 측은 특수취급첩보(SI)에서 ‘월북’이라는 단어를 확인했고 기상상황과 배의 구조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월북으로 추정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10월31일 국회 정보위원회 여야 간사인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과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본부 보고를 확인한 결과 SI에 월북 표현이 2회 등장한다는 점은 확인됐다. 북한군 당국자가 ‘월북이래?’라고 질문하고 답변에서 ‘월북이래’라고 나오는 대목이다.

서 전 실장 측은 검찰이 이씨가 북한 해역까지 어떻게 가게 됐는지 명확히 밝혀야 하고, 당시 안보라인 관계자들이 합리적 근거에 의해 월북을 추정한 이상 범죄의 ‘고의’가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 주장대로 이씨 실종 지점의 유속이 상당히 빨랐다면 추운 밤바다에서 어떻게 다음날까지 버틸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서울중앙지법 김정민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서 전 실장을 직접 심문하며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과 근거를 상세히 확인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김 부장판사는 월북 가능성이 가장 낮은 것 같다면서, 정부가 불과 이틀 만에 월북이라고 발표했는데 조금 더 천천히 조사한 뒤 발표할 수도 있지 않았느냐고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서 전 실장 측은 ‘발생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린다’는 게 당시 정부 입장이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바다에 빠진 경위를 검찰이 명확히 밝히지 못하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더라도 사건의 실체를 둘러싼 논란은 해소되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서 전 실장을 구속 후 처음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을 직접 불러 조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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