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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 “서해 피격, 자위권 발동했어야”···군작전 가이드라인 제시까지?

이혜리 기자

검찰 “다양한 억제대책을 시행할 의무”

고도의 군사·안보적 판단의 소산 두고

사후에 법적 관점서 평가 적절성 지적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관계자들이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문재원 기자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관계자들이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문재원 기자

검찰이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구속영장청구서에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 이대준씨 피살을 ‘북한의 도발’로 규정하고 국방부가 경계태세 강화를 비롯한 ‘자위권 발동’ 조치를 취해야 했다는 논리를 편 것으로 파악됐다. 서 전 실장의 보안 유지 지시 때문에 국방부 등 관련기관이 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고도의 군사·안보적 조치인 ‘자위권 발동’에 대해서까지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서 전 실장 측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말라고 지시한 적 없다며 반박하고 있다.

12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지난달 29일 서 전 실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이씨 피살을 “적이 군사력을 이용해 대한민국 국민에게 위해를 가한 군사적 도발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상황”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당시 국방부가 취했어야 할 조치를 열거했다.

검찰은 국방부가 적의 침투·도발 및 적의 정황에 관한 첩보를 수집하고 정보를 판단하는 등 경보체계를 가동하고,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억제대책을 시행할 의무가 있었다고 했다.

검찰은 “나아가 국방부(합동참모본부)는 자위권을 발동하고 주도권을 유지한 가운데 해군함대사령관이 관할 해역의 해양경찰을 작전 통제하고 군·경 합동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군사대비태세를 강화했어야 한다”고 했다. 대북 경고성명을 발표하고, 국가정보원·군·해경 등의 유관기관에 진행상황을 신속히 전파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통합방위법,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북한 내 아국민 물자 돌발사태 위기관리 매뉴얼, 서북해역 우발사태 위기관리 매뉴얼을 근거 법령으로 들었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이 이씨 피살 다음날인 2020년 9월23일 오전 1시 청와대에서 열린 1차 안보관계 장관회의에서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보안 유지’ 지시를 했고, 이 지시가 하달돼 국방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했다. 서 전 실장이 안보실장의 직권을 남용해 합참 작전부장으로 하여금 보안 유지라는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고 우발사태 대응조치에 관한 작전부장의 권리 행사를 방해했다며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다.

자위권 발동은 급박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고도의 군사·안보적 판단의 소산인데 사후에 법적 관점에서만 이를 따지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남북관계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무엇을 도발로 규정할지부터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북한 도발에 대한 강력한 대응은 주로 보수정권이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 등 역대 보수정권은 북한 도발에 선제 타격·원점 타격 등 즉각적인 자위권 발동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주장해왔다. 검찰이 근거 법령으로 제시한 통합방위법은 적의 침투·도발·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총력전’ 개념을 바탕으로 통합방위 대책을 기재한 법이다.

검찰 주장대로 서 전 실장이 보안 유지 지시를 했다고 하더라도 직권남용죄 성립 여부는 또 다른 문제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가 아닌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성립한다. 검찰은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 등 하급자들이 서 전 실장의 보안 유지 지시 때문에 이씨 피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고 했다. 반면 서 전 실장 측은 보안 유지 지시는 말 그대로 보안을 유지하라는 것이지, 아무런 조치도 취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합참 작전부장에게 우발사태 대응조치에 관한 ‘권리’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도 쟁점이다.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권리는 법률에 명기된 권리에 한하지 않고 법령상 보호되어야 할 이익이면 족하다는 게 법원 입장이기는 하지만, 이번 사건과 비슷한 사례가 많지 않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조국 당시 민정수석의 감찰 무마 사건이 닮은 꼴인데, 이 사건 재판에선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원들에게 감찰에 관한 권리가 있는지가 논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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