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학생 “학교는 계급문화”… 가해학생 “부모와 안 친해”

박영환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30일 학교폭력 가해·피해 학생들과 직접 만났다. 이 대통령을 만난 학생들과 학부모는 학교와 정부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했고, 이 대통령은 “있는 그대로 말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대화는 이 대통령이 가해학생들이 있는 방, 피해학생들이 있는 방, 가해·피해 학부모들이 있는 방을 차례로 돌며 이뤄졌다. 오후 2시 시작된 대화는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정도 길어져 오후 4시30분에 마무리됐다.

이 대통령은 경기 안양시에 있는 안양과천 위센터에 도착해 김인교 센터장으로부터 상황 설명을 듣고 곧바로 가해학생들과 만났다.

이 대통령은 센터 5층 미술치료실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몇 학년인지 등을 물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학생들은 단문으로 답했고 대화는 40분간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30일 경기 안양시의 안양과천 위센터에서 학교폭력 또래상담 학생들과 대화하다 심각한 표정으로 한 학부모의 피해 사례를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이 30일 경기 안양시의 안양과천 위센터에서 학교폭력 또래상담 학생들과 대화하다 심각한 표정으로 한 학부모의 피해 사례를 듣고 있다. | 연합뉴스

● 가해학생 “부모와의 시간 적어 사고 많이 쳤어요”
● 피해학생 “2차 보복 두려워 말 못하는 게 더 문제”
● 이 대통령 “아이들만 시달린 것… 모두가 가슴 아프다”

고교 2학년인 한 여학생은 “어려서부터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서 반항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처음에는 상담받는 게 민망했는데 선생님들이 많이 노력해줬다. 선생님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면서 “선생님 주선으로 애들하고도 조별활동을 하면서 친구애를 느꼈다”고 했다.

다른 고교 2학년 여학생은 부모가 맞벌이를 하면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가출까지 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 학생은 “엄마랑 속내를 터놓고 울면서 이야기하다 보니까 지금은 많이 나아졌고, 점수도 30~40점 올랐다”며 웃었다.

고교 2학년 남학생은 무뚝뚝했다. 그는 “사고 많이 쳤지요. 친구들도 많이 때리고 선생님께 욕도 하고”라고 말했다. 그는 부모가 이혼하면서 새엄마에게 적응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고 말했다. 다른 고교 1학년 학생은 아직도 부모에 대한 적개심을 보였다. “부모님하고 안 친한데요.” 이 대통령이 가족을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이 대통령은 “세상 살다보면 부모만큼 너를 아껴줄 사람이 없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부모가 너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후배들을 때리고 돈을 빼앗아 징계를 받았다는 한 중학교 3학년 학생은 “당시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지나고 나니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선배들에게 같은 대우를 받다 보니까 왠지 나도 해보고 싶어서 했다”고 학교폭력 가해자가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고통을 극복하고 잘하면 더 튼튼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서 “너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 착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라며 잠시 말을 멈췄다.

이 대통령은 피해학생들이 있는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피해학생들은 20분에 걸쳐 학교폭력에 대한 나름의 해법까지 조목조목 제시했다.

한 고교 3학년 학생은 학교 현실에 대해 조리 있게 소개했다. “지금 학교 문화가 계급사회 문화다. 일진이 있고 평범한 아이가 있고 소위 ‘찐따’가 있어서 3단계다. 잘나가는 아이들에게 반항하면 철저히 착취를 당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도움을 요청한 게 알려지면 완전히 소외당한다. 지금 학교에서는 개인으로 평가받는 게 아니라 그룹으로 평가받는다.”

이 학생은 “가해자들의 성격이 난폭해서 2차 보복이 두렵다”면서 “학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숨어서 말 못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게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끼어들었다. 그는 “부모에게 말을 못하는 이유는 내가 이렇게 약한 아이이고 피해자라는 것이 미안해서 말을 못한다”고 전했다.

한 고교 1학년 여학생은 ‘왕따’를 당하는 상황을 소개했다. “한 명이 왕따를 당하면 도와줄 수가 없다. 도와주면 같이 왕따를 당하기 때문에 누가 어려워도 도와줄 수가 없다. 일단 상담을 한 번 받으면 바로 ‘찌질이’라고 낙인찍히기 때문에 상담받을 수도 없다.” 그는 “가해학생들은 반성문을 쓰고 벌점을 받으면 끝이다. 이걸로는 안된다. 경찰이 개입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이 모두 일진들과 유사하다”면서 “그래서 아이들이 그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대책은 다 나온 것 같다”며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모두 상황을 잘 극복하고 변화하면 사회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5층 집단상담실에서 가해학생 부모 두 명, 피해학생 부모 두 명, 또래상담 학생과 둘러앉았다.

중학교 1학년 자녀가 지난해에 따돌림을 당해서 전학하고 약물치료와 병원치료를 받고 있다는 한 학부모는 “정부의 대책이 너무 미흡했다. 엄마 입장에서 정부와 학교가 뭘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말을 시작했다. 그는 학교폭력을 숨기려는 교육현장의 문제를 지적했다. “학교에서 왜 숨길까. 내 생각인데 학교가 나쁜 이미지, 학교장 페널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것을 다 오픈하고 해결하려는 학교에 도움을 줘야 한다”며 “학교는 밀폐된 공간이고 말을 안 해주면 학부모는 모른다. 대처도 못하고 누구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담임선생님이 모니터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중학교 1학년 딸이 지난해 11월에 집단폭행을 당했다는 한 학부모도 가세했다. 그는 “학교에 먼저 이야기하지 말고 경찰에 신고하라고 조언을 해줘서 맞고 온 날 바로 사진을 찍어서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성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 문제는 절대 해결이 안된다. (가해학생들이) 내가 왜 잘못한 것이고, 왜 벌을 받아야 하는지 인식을 못하고 있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중학교 2학년 가해자 아들을 둔 한 학부모는 위센터에 오면서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가 됐다며 반성문을 썼다. “아이가 럭비라는 운동을 하기 위해 전학갔다. 아들이 (전학간 학교의) 그 아이들한테 ‘여기 싸우러 온 게 아니니 너희가 짱을 해라, 난 운동을 할 테니’라고 말했다고 하더라”라고 아들이 달라진 것을 소개했다.

중학교 3학년인 한 또래상담 여학생은 인성교육의 문제를 지적했다. “피해학생이 다시 가해학생이 되는 것은 인성교육이 없기 때문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도덕 수업이 없어진다. 동영상 틀어주는 것보다는 책상 다 치우고 소통하는 시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 대통령은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 마무리 발언을 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이 공부에 고통받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오는데 간과한 것”이라면서 “애들만 시달린 것이다. 모두가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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