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스크 쓴 어른께 잘 써달라고 부탁했어요, 하지만…안 해주셨어요”

김소영

많은 제한에도 ‘배운 대로’ 코로나 대처하는 어린이들…어른이 배워야

‘동료 시민’ 어린이

나는 ‘도자기 찻잔론’의 창시자다. 이 거창한 이름을 스스로 붙였다면 부끄러워서 이렇게 쓰지 못할 것이다. 존경하는 어린이문학 연구자 C 선생님이 붙여주신 이름이라서 한 번쯤은 자랑 삼아 발표하고 싶었다. 사실 이 이론이랄까 주장의 내용은 싱겁다. 독서교실에서 어린이에게 차를 대접할 때 플라스틱 컵을 내놓지 않고 제대로 된 찻잔을 꺼내는 것. 언젠가 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으신 C 선생님이 멋있는 이름으로 격려해주셨다.

내가 어린이에게 받침이 있는 찻잔이나 사기로 된 머그잔에 차를 내준다고 하면 걱정부터 하는 분도 있다. 어린이는 조심성이 없는데 혹시 깨뜨리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태 독서교실에서 그릇을 깬 어린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독서교실에서는 집에서보다 훨씬 의젓하게 행동하는 데다 그릇을 곱게 다루기 때문이다. 차를 쏟는 경우도 정말 드물다. 머그잔은 받침과 함께 내는데, 잔을 들고 자리를 옮길 때면 모든 어린이가 그 받침도 꼭 챙긴다. 격식을 갖추는 걸 사양하는 어린이는 여태 만나보지 못했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언젠가 예쁜 찻잔을 좋아하는 은규에게 어렵게 구한 빈티지 찻잔을 보여준 적이 있다. 이 찻잔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했더니 은규는 눈이 커다래져서 “여기에다 진짜 마시기도 해요?” 하고 물었다. 그날은 나도 마음을 크게 먹어야 했지만, 그 잔에 레몬차를 냈다. 그동안 은규가 보여준 차 예절에 대한 보답이었다. 은규는 무슨 보물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날은 차를 마시는 동안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꽤 긴장했던 모양이다.

어린이들은 조심성이 없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면 조심성이 없다기보다는 서툴러서 실수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어떤 일에 서투르다 보면 조심하더라도 사고를 낼 수 있다. 초보 운전자들이 조심성이 없어서 사고를 내는 게 아닌 것처럼. 어린이는 실선을 따라 신중하게 가위질을 하면서 겹쳐 있던 종이까지 자르고, 그렇게 긴장하고 걷는데도 식판의 국을 흘리고, 비 오는 날 물웅덩이를 살피느라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힌다. 어른들에게는 ‘조금만 조심하면’ 될 일이 어린이에게는 경험과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라는 것이 날마다 어린이가 하는 일이다.

어린이는 자기 행동에 책임져야 함을 알고 그렇게 하려 노력한다
교육받고 놀 권리 제한 받으면서도 방역 주체로 의무 다하는데…
지성주의 반대하는 물결로 가득찬 광장 사진 보니 참담하고 아득
실망하는 대신 나부터 어린이의 ‘동료 시민’으로 할 일을 하기로

어린이는 충실한 작업자다. 배우고 익히고 적용하고 발전시킨다. 현성이는 총 15권짜리 만화책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2020년 여름 현재 제7권까지 나왔는데, 한 권이 완성될 때마다 나에게도 가져와 보여준다. 솔직히 말하면 제 1·2권은 그림도 이야기도 너무 실험적이어서 작가 의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창작 중 흥에 겨워 쓴 글자를 알아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기대에 차서 나의 감상을 기다리는 현성이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서 얼버무렸다.

“정말…. 선생님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전개다. 그런데 이 글자는 뭘까?”

한참을 들여다본 현성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쓸 때는 알았는데 지금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 다음에는 글씨를 잘 써야 되겠다.”

출간이 이어질수록 정말 글씨가 더 반듯해졌다. 그림에 안정감이 생기고, 내용을 알아보기도 한결 쉬워졌다. 그러자 현성이의 질문이 늘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몇 권이 제일 재미있어요?”

“이번에 나온 게 제일 재미있네!”

현성이는 싱글벙글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다.

“왜냐하면 제가 실력이 점점 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다음에 나올 거는 더 재미있을 거예요!”

‘앞으로 점점 더 잘하게 된다’는 확신은 어린이가 자신을 성장시키는 큰 동력이다. 그런 확신의 근거는 무엇일까? 현재 자기 모습이다. 재작년보다 작년, 작년보다 지금 더 그림을 잘 그리고, 축구를 잘하고, 아는 게 많다. 앞으로도 지금보다 더 잘하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열심히 공을 차고 공부도 한다. 그러고 보면 서투르다는 것도 어른들 생각이지, 어린이 입장에서 보면 지금이 가장 ‘잘하는’ 때다. 아홉 살 어린이에게는 아홉 살이 인생에서 가장 성숙한 때다.

설령 어린이에게 미숙한 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어린이의 인격이 미숙하다는 뜻은 아니다. 당연히 어린이에게도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어린이들과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은 적이 있다. 열한 살 어린이들에게 조금 어려울 것 같지만, 삶의 가치나 도덕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싶은 욕심에 수업을 준비했다. 읽기 전에 ‘대문호’의 뜻도 알려주고 “엄청, 정말 엄청 유명한 작가”라며 분위기를 띄웠는데, 다은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럼 저도 들어봤을 텐데. 저는 처음 듣는데요?” 해서 나는 말문이 막혔다. 대문호가 다 무슨 소용인가…. 어쨌든 수업은 그럭저럭 되었다. 그런데 마무리하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발표할 때, 성민의 답이 인상적이었다.

“저는 제 행복이 가장 중요해요.”

성민이는 친구를 잘 돕는 다정한 어린이이고, 아이들 사이의 다툼도 잘 중재해서 ‘성민이가 있으면 싸움이 안 난다’고들 할 정도다. 그래서 ‘가족의 행복’이나 ‘세계 평화’ 같은 게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챙기는 것이 다행스러워서 물어보았다.

“맞아. 그거 정말 중요해. 그런데 성민아, 그러면 다른 사람들 행복은 어떻게 해?”

“옆에 있는 사람이 불행하면 저도 안 행복하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도 행복해지게 도와줘야죠.”

그 말을 할 때 성민이의 평온한 표정을 잊기 어려울 것 같다. 성민이는 ‘이타심’이라는 말을 모르지만, 바로 그것을 삶의 중요한 가치로 추구했던 것이다.

서준이가 스케이트 대회에 나간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내심 걱정했다고 하셨다. 그 대회에 참가하는 아이들은 보통 예비 선수들이라, 취미 삼아 배우는 서준이와는 실력 차이가 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서준이는 자기도 안다면서 “그래도 괜찮아. 그 아이들은 얼마나 잘하는지, 지금 내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어”라고 했단다. 나는 그 작은 심장에 얼마나 큰 용기가 들어 있는 걸까 싶었다. 어린이도 어른처럼, 삶을 진지하게 여긴다.

요즘 예나는 마스크 쓰는 일에 민감하다. 분명히 학교에서 ‘코를 내놓고 쓰는 건 안 쓰는 거랑 똑같다’고 배웠는데 그렇게 하고 다니는 어른들을 보면 불안하다고 한다. 한 번은 편의점에 갔더니 계산대에 계신 분이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있었단다.

“그래서 제 차례가 됐을 때 제가 용기를 내서 마스크 좀 잘 써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랬더니 지금 더워서 잠깐 내린 거라면서 제대로 안 써주시더라고요.”

예나는 편의점에서 나오자마자 손소독제로 여러 번 손을 닦고 곧장 집으로 가서 손을 씻었단다. 그사이 얼마나 걱정이 되었을까? 해줄 말이 없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나라면 껄끄러워서 그런 말을 하기도 어려웠을 텐데 배운 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어른에게 요구한 예나의 판단력과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아니어도 어린이는 ‘배운 대로’ 한다. 적어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쁜 말을 쓰면 안 되고, 쓰레기를 줄여야 하고,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차별이 나쁘다는 것, 서로 달라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스스로 생각해야 하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안다.

어린이는 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것, 모두를 위한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마스크를 꼼꼼하게 쓰고, 30초를 세면서 손을 씻고, 자주 열을 잰다. 학교생활에 제약이 많아도 지침을 따른다. 아는 것을 바탕으로 행동하고 전문가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지성주의다. 나는 이 시대의 어린이야말로 지성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나이나 학력과 상관없이 누구나 지성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어린이에게서 배운다.

어린이를 ‘동료 시민’으로 부르기를 주저하는 분도 있다. 어린이를 보호하고 교육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시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어른과 똑같이 가진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2020년을 보내면서 그런 분들의 생각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어린이는 교육받을 권리, 놀 권리에 심각한 제한을 받으면서도 방역 주체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자꾸 가정하게 된다. 만일 이 사태에 ‘몇 살 이상 성인’ ‘심각한 기저 질환이 있는 사람’ ‘특정 지역 주민’ 등에게 어린이들에게 하듯이 제한을 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만큼의 협조를 얻을 수 있었을까?

여름 한복판에서, 지성주의에 반대하는 물결로 채워진 광장의 사진을 참담하고 아득한 심정으로 보았다. 스스로 생각하는 대신 소속 집단에 판단을 맡기고, 전문 지식을 적대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사람들을 어린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더 두려운 건 어린이들에게 저 장면이 하나의 본보기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며칠 동안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어린이와 함께할 가을을 준비하면서 생각했다. ‘어린이도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다. 어린이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어린이의 동료 시민인 어른으로서 내가 할 일은 우리가 옳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이제 소용없다. 다 끝났다’고 하는 순간 악의를 가진 이들에게 동조하는 셈이 된다. 나는 혼돈에 빠져 두려움을 확산시키는 대신 이 상황이 안정 국면을 찾을 수 있도록 시민으로서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외출을 자제하고, 개인 위생을 잘 챙기고, 규칙을 지키고, 기다리는 것. 어린이들이 하는 대로다. 우리가 가르친 대로다.

다시 생각해보니 어린이를 도자기 찻잔 정도로 대접해서 될 일이 아니다. 모두가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날이 되면 어린이들이 깜짝 놀랄 만큼 재미있는 행사를 열어야겠다. 웃음소리가 1초도 끊이지 않게 완벽하게 준비해야지. 맛있는 것을 먹고 신나게 놀고 집에 돌아가면 아주 곯아떨어지게 하겠다. 격식을 갖춰서 초대장을 보내야지. 무슨 과자를 내놓을까? 어떤 음악을 틀까? 그런 계획을 세우면서 오늘을 또 견딘다.



[김소영의 어린이 가까이]“턱스크 쓴 어른께 잘 써달라고 부탁했어요, 하지만…안 해주셨어요”

▶김소영

독서교실에서 어린이와 함께 읽고 쓰고 배우고 가르친다. 비양육자로서, 돌봄과 교육의 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린이’에 관심이 많다. 어린이에게 좋은 세상이 어른에게도 좋은 세상이라고 믿는다. <어린이책 읽는 법> <말하기 독서법>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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