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굴곡진 그래프는 포기·불안·인내가 담긴 우리의 ‘수학 생애사’

김서영 기자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①15세, 수학을 말하다]이 굴곡진 그래프는 포기·불안·인내가 담긴 우리의 ‘수학 생애사’
중3 양혜원양(15·위 사진 왼쪽)은 하교 후 학원에서 저녁 수업을 들으며 선행학습과 보충학습을 한다. 학원을 6곳 다니는 김민준군(15·아래)도 귀가 후 새벽 1시 넘어까지 자습을 하며 시험에 대비한다.

중3 양혜원양(15·위 사진 왼쪽)은 하교 후 학원에서 저녁 수업을 들으며 선행학습과 보충학습을 한다. 학원을 6곳 다니는 김민준군(15·아래)도 귀가 후 새벽 1시 넘어까지 자습을 하며 시험에 대비한다.

“저에게 수학이란 ‘영원한 걸림돌’이에요. 이걸 치우려면 제가 계속 열심히 노력해야 하잖아요.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끝까지 잡고 가야 하는 것 같아요. 수학은 학생들을 미치게 하는 과목, 제일 힘들게 하는 과목이에요.”

중학교 3학년 위서현양(15)의 말은 수학이 달갑지는 않지만 포기할 수도 없는 중학생들의 심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향신문과 EBS는 지난 4~6월 전국 중학교 2~3학년 학생 37명을 만나 수학 과목에 대한 진솔한 생각을 들었다. 중학교는 본격적으로 성적 차이가 벌어지는 시기이고, 여러 과목 중에서도 특히 수학은 가정 배경에 따른 격차를 잘 보여주는 과목으로 꼽힌다. 한창 수학과 분투 중인 학생들의 성적대는 다양했지만 저마다 불안을 안고 있다.

좀 더 생생하게 이야기를 끌어내고자 태블릿PC와 펜을 쥐여주고 수학에 대한 흥미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를 거치며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래프를 그려보게 했다. 삐뚤빼뚤 이어나간 수학 흥미 그래프는 단순한 선이 아니라 포기, 불안, 극복, 인내가 녹아든 수학 학습 생애사이다. 학생 개개인이 살아온 인생만큼이나 제각각이다.

이를 종합하면 <2021년 중학생 수학 보고서>가 된다. ‘수포자(수학포기자)냐, 아니냐’는 식의 앙상한 이분법을 넘어서는 학생들의 생생한 고민과 목소리가 담겨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①15세, 수학을 말하다]이 굴곡진 그래프는 포기·불안·인내가 담긴 우리의 ‘수학 생애사’

①떨쳐낼 수 없는 불안

■ 분수, 미지수…언제 수학과 멀어지나

“초등 3학년 때 분수가 처음 나와서 좀 어려웠어요. 그래도 초등학교 때는 그냥 숫자만 써 있는 식이 많아 그걸로 풀기만 하면 됐는데 중학교 오니까 문제 속에 문자도 있고 그래서 어려워졌죠.” 중2 천지영양(14)의 수학 흥미 그래프는 초등 3학년과 중학교 1학년에서 움푹 아래로 꺾이는 ‘W’자 모양이다. 천양은 수학에 대한 관심이 이 두 시기에 다소 시들했다고 돌아봤다. 천양은 “어릴 때 수학을 좀 좋아했는데 중학교 1학년 됐을 때 갑자기 어려워져서 수학 흥미도가 조금 낮았던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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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3학년 학생 37명이 그린 그래프에서 하락점을 추려보면, 초등학교에선 3학년(13회)과 6학년(13회)이 가장 많았다. 그다음은 5학년(10회)이었다. 중학교는 1학년(14회) 때의 하락이 2학년(10회)보다 빈번했다. 초등학교 3학년쯤 ‘1차 고비’가 오고,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면서 ‘2차 고비’가 온다는 뜻이다.

학생들의 경험치는 수학 교육과정상 이 두 시기를 ‘난도 점프’가 일어나는 구간으로 꼽는 것과 맞아떨어진다. 학생들은 초등 3학년에 처음으로 자연수가 아닌 분수를 접한다. 그동안 3, 50, 200 같은 수만 알던 초등 저학년에게 분수라는 모양부터가 낯설다. 초등 4학년에는 곧바로 분수 계산에 돌입한다. 도형도 단순한 길이 재기에서 평면도형, 각기둥과 원기둥으로 점점 까다로워진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면 음수라는 새로운 수 체계가 등장하고, 미지수 x, y를 비롯해 방정식, 함수가 이어져 수학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든다. 본격적인 수학 공부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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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이석준군(15)은 첫번째 고비에서부터 수학과 멀어져버렸다. 낯선 개념이 줄줄이 등장하는 것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군의 그래프는 초등 2학년에서 가장 높았다가 3학년부터 떨어져 줄곧 마이너스 구간에 머문다. 최근 치른 시험에선 100점 만점에 9점을 받았다. 이군은 “더하기 곱하기를 할 때는 쉬웠는데 점점 기호가 나오고 어려워지면서 안 하게 됐다. 수학은 공식이 나와 힘들다. 수포자는 나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 “수포자요? 내가 될 수도 있죠”

계속해서 등장하는 낯선 개념에 불안이 이어진다. ‘혹시 나도 수포자가 될 수 있단 생각에 불안감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아니다”라고 대답한 학생은 드물었다. 그렇다면 이런 불안감은 수학 흥미 그래프에 어떻게 반영되었을까.

[대한민국 헌법 제31조①15세, 수학을 말하다]이 굴곡진 그래프는 포기·불안·인내가 담긴 우리의 ‘수학 생애사’

김영빈군(15)의 수학 흥미도는 중학교에 들어온 이후 0에 딱 붙어 있다. 아직 마이너스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확실하게 플러스도 아닌 상태가 간당간당하게 이어진다. 김군은 수업시간에 친구들을 보며 불안감을 느낀다. 김군은 “수학은 선생님 설명을 들으면 쉬운데 공식에 여러 개를 넣고 풀어야 하니까 문제풀이 과정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며 “수업 중에는 ‘나 혼자 이해를 계속 못하는 걸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김군의 목표는 90점 정도지만 현재 수학 점수는 60점대다.

불안은 현재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양혜원양(15)은 초등 3학년 때 전학을 와 잠깐 주춤한 이후로 쭉 상승해 줄곧 상위권에 머무는 수학 흥미 그래프를 그렸다. 양양은 이른바 ‘올백’ 경험도 있고, 최근 시험에선 5과목에서 2문제만 틀린 성적 우수자다. 안정적인 그래프와 높은 성적만 보면 수학에 대한 걱정이 없을 것 같지만 그래프에 담지 못하는 불안이 양양에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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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수학 100점 맞는 애들도 고등학교 가면 낮은 점수 맞고 그런 경우도 많다고 들었어요, 학원 선생님들한테서. 수학은 탑쌓기예요. 아래가 불안정하면 위가 결코 견고해질 수 없어요. 학원을 늦게 다니기 시작했는데, 친구들은 이 문제집을 풀었는데 저는 안 풀었다, 그러면 불안하죠. 거기서 제가 많이 늦었단 걸 알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 불안은 어떻게 해소되는가?

②수학의 배신

■ 선행학습 딜레마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곳은 사교육이다. 사교육을 통해 선행학습을 한다. 수학 흥미가 떨어졌다 복구된 경우는 대부분 사교육과 선행학습의 덕을 봤다. 선행학습은 하루치, 일주일치 공부를 예습하는 것과는 다르다. 교육과정상 한 학기 진도를 앞서나가는 것은 물론 학교급을 뛰어넘는 경우도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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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훈군(14)은 수학에서 한 번의 고비를 겪고 반등했다. 이군의 그래프를 보면 초등 6학년에서 크게 꺾였다가 다시 쭉 올라오는 ‘V’자를 그린다. 확 떨어진 흥미를 8칸이나 위로 밀어올린 원동력은 선행학습이었다. 이군은 “6학년 때는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수학이나 다른 과목도 다 어려워지고, 남들도 갑자기 치고 올라와 상당히 힘들어서 수학도 잠깐 포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군은 계속 쉬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중1 때 다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군은 “선행하다 보면 학교 것이 아무래도 쉬워진 듯 보이고, 그러면서 자신감이랑 흥미도도 올라가게 됐다”고 했다.

선행학습을 시작한다는 것은 무수히 돌아가는 ‘비교의 수레바퀴’에 올라타는 것과 같다. ‘선행을 많이 나간’ 혹은 ‘선행을 더 여러 번 돌린’ 다른 학생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든 저렇든 결국 불안은 잦아들지 않는다. 이군은 중1 과정은 초등 3학년 때, 중2 과정은 초등 5학년 때 이미 떼고 현재는 고1 수준을 선행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군은 “불안감은 항상, 자주, 많이 든다”고 했다.

수학 과외를 하고 있는 박선우양(15) 역시 마찬가지다. 박양은 “한 학기 정도 선행하는 게 제일 좋다. 1년을 넘어가다보면 정작 시험을 치러야 할 때 기억에 잘 안 남기 때문”이라면서도 “제가 중학교 것을 공부하고 있을 때 다른 친구들은 (고등학교) 모의고사도 풀고 하니까 ‘이렇게 가다보면 고등학교 가서 수학을 정말 놓아버리게 되는 점수가 나오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 “그래도 열심히 하면…” 과연?

인터뷰한 학생들은 수학에서 흥미가 떨어진 것을 자기 탓, 개인의 의지 탓으로 돌리는 경향을 보였다. “중1 때 어려워지기는 했지만 너무 놀았다” “초등학교 때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포자도 의지만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 “집안형편보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흔했다.

정말 그럴까? 수학 과목을 중심으로 교육격차를 분석한 많은 연구 결과는 학생들의 이러한 믿음을 배신한다.

지난해 발표된 ‘OECD 형평성 지표로 본 교육격차 추이’에 따르면, 2010년 초등 4학년인 학생이 고3이 될 때까지 수학 성취도를 놓고 봤을 때 가정배경의 영향력, 가정배경에 따른 성취격차, 역경을 극복한 학생들의 비율(학업적 탄력성) 3가지 지표가 중학교 시기에 가장 심각했다. 부모의 최종 학력이나 가족구조, 소득 등 가정배경의 영향력은 중1과 중2 때 가장 높았다. 소득에 따른 성취격차가 가장 큰 시기는 초등 6학년에서 중1로 넘어가는 시기였고, 이 차이는 고1까지 지속됐다. 소득이 하위 25%임에도 수학 성취도가 상위 25%에 해당하는 학생(역경을 극복한 학생)의 비율 또한 중학교 3년간이 가장 낮았고, 중학교에서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떨어졌다.

역경을 극복한 학생들의 비율 사진 크게보기

역경을 극복한 학생들의 비율

연구를 진행한 김수혜 고려대 사회통합교육연구소 연구교수는 “과거에는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가정의 자원을 고등학교 때 투입해 격차가 일어났다면, 이미 고등학교 계층화·서열화가 진행된 최근 10년간 그 시기가 중학교로 앞당겨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초등 고학년부터 중학교가 각 가정의 유무형 자원이 가장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행태로 발휘되는 시기이고, 이 시기 각 가정의 가용 자원 크기에 따른 교육격차가 고등학교 이후뿐 아니라 대학 진학에까지 이어지며 고착화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중3 동갑내기인 김민준군(15)과 박다니엘군(15)의 꿈은 의사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래프 모양만 봐서는 둘의 상황이 비슷해 보이지만 각자 체감하는 현실은 판이하다. 둘의 차이는 ‘학원 6개’와 ‘0개’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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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준군은 친구들보다 뒤처진다는 불안감에 초등 4학년쯤부터 본격적으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현재 다니는 학원이 6개인데, 절반인 3개가 수학이다. 3개 수학학원에선 각각 고1, 고2 1학기, 고2 2학기 선행학습을 분배해 진도를 나간다. 김군은 “아무래도 수학이 가장 중요하고 고등학교를 갔을 때 격차가 많이 날 수 있는 과목이니까 3개를 다닌다”고 했다. 김군은 이미 고등학교 수학2까지 선행을 끝내 지난 겨울방학 때 고1, 고2 모의고사를 풀어본 상태다. 나머지 학원은 국어, 영어, 과학으로, 한 달 학원비만 240만원 정도다.

최근 김군의 수학 성적은 96점이었다. 목표는 늘 100점이다. 김군은 “학교에서 주는 문제랑 개념만 곧이곧대로 믿다가는 어렵거나 변형한 문제를 못 풀어서 상위권을 노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김군은 앞으로 착착 수학 공부를 이어나갈 자신이 있다. “수능 잘 본 사람들이 ‘교과서만 계속 보니까 만점 받았어요’라고 대답했을 때 거짓말이 더 많지 않나 싶어요. 이렇게 실력을 쌓아가다보면 수능에서도 백점 맞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대한민국 헌법 제31조①15세, 수학을 말하다]이 굴곡진 그래프는 포기·불안·인내가 담긴 우리의 ‘수학 생애사’

반면 박다니엘군은 최근 의사의 꿈에서 멀어졌다고 느낀다. 수학 성적은 80~90점대를 오가고 있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냈을 때 희열이 있다”고 할 정도로 수학을 좋아하지만 학원을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것의 한계를 부쩍 느낀다. 박군은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다. 박군은 “(학원을 안 가다보니) 혼자 (개념) 하나를 터득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 힘들었다. 학원에선 문제유형을 싹 정리해 매겨주니까 편할 것 같다. 그냥 어떻게 풀면 되는지 다 나오니까”라고 말했다.

박군은 고등학교 진도를 끝내놓고 한 번 더 선행을 돌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좌절감을 느낀다. “얘는 저보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데 저는 전혀 그러지 못했잖아요. (의사의 꿈도) 반포기 상태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성적이 안 나와서 전체적으로 살짝 다운됐어요.”

수포자는 의지 부족?
부모 학력·소득이 중학교 때부터 격차 키워

③ 수학의 또 다른 이름 ‘변별력’

■ 변별력이 오르면 흥미는 내려간다

수학을 배우는 이유는 결국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로 귀결됐다. “수학을 못하면 원하는 대학에 못 갈까봐” “취직하는 데 불이익을 받을까봐”가 단골 답변이었다. 이는 여러 과목 중에서도 특히 수학이 가장 강력한 ‘변별력’ 확보 수단으로 활용되는 우리 교육·입시 현실과 맞물린다.

전국 중학교는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따라간다. 학생 개개인의 ‘성취도’를 측정하는 게 시험의 목적이라면 학교별 수학 시험 난이도는 대동소이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학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내신시험에서조차 변별력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①15세, 수학을 말하다]이 굴곡진 그래프는 포기·불안·인내가 담긴 우리의 ‘수학 생애사’

위서현양의 수학 흥미 그래프는 변별력에 치여 점점 저조해지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하향하는 위양의 그래프를 보면 수학에 관심도, 재능도 없는 학생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위양은 수학학원을 2곳이나 다니고 밤늦게까지 쉴 틈 없이, 시험기간이면 새벽까지 공부하는 학생이다.

“저희 학교 내신이 너무 어려워요. 공부했던 내용과는 별개로 창의적인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내가 이 문제를 과연 맞힐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난 다음에도 못 맞히겠다’ 이런 허무함 때문에 흥미도가 떨어졌고요.” 위양의 학교는 지역에서 사교육을 가장 많이 시키기로 소문난 동네에 있다. 주변 친구들도 학원 서너개씩은 다닌다. 학교 수업과 평가도 학생들이 웬만큼 선행학습을 했다는 것을 전제로 진행된다.

80점 후반대~90점 초반대를 이어오던 위양의 수학 성적은 3학년 들어 70점대로 떨어졌다. 최근 수학 시험 뒷부분에 고등학교에서 치르는 수능 모의고사식의 ‘킬러 문항’이 여러 개 나왔다. “공부도 2학년 때랑 똑같이, 아니 오히려 열심히 했는데 그런 문제가 나오면…. 많은 유형을 (풀어)봤는데도 못 맞히는 거예요.” 위양은 수포자란 말을 들었을 때 “위기감을 느낀다”고 했다. “문턱에 막히는 거예요. 그 문턱에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하니까, 그 부분에서 흥미가 떨어지지 않나 싶어요.”

박태우군(15) 생각도 비슷하다. 박군은 “자원이 한정돼 있다보니 경쟁을 해야 돼서 수학이라는 과목이 어떻게 보면 경쟁의 수단으로 이용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수학 못하면 끝”이란 압박

“‘수학을 못하면 대학을 못 간다’라는 얘기가 나와요. 영어는 절대평가로 바뀌어서 어느 정도 괜찮아졌지만 수학은 (수능에서) 29번, 30번같이 변별력을 확 낼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있잖아요. 입시를 좌지우지하는 느낌이죠.” 고준호군(15)은 “수학을 배우는 이유도 내신을 잘 받아 대학에 가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고군이 말했듯 대입 변별력은 수학에서 나온다. 최상위권과 상위권을 가를 때도 통상 수학이 큰 역할을 한다. 사교육비 조사에서 매년 수학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육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20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를 보면, 사교육 참여학생 1인당 월 사교육비는 중학교 49만2000원이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모두 수학(중학교 23만4000원·고등학교 32만4000원) 사교육비 지출이 컸다. 성적이 상위권일수록, 가계소득이 높을수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지출과 참여율이 높았다.

2018학년도부터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국영수’ 중에서도 수학의 상대적 중요도가 더 높게 체감된다. 중학생도 예외가 아니다. 위서현양은 “국어학원을 가도 ‘수학은 무조건 잘해놓고 그다음을 생각하라’고 한다. ‘국어를 지금 아무리 열심히 해도 수학 못하면 끝’이라고”라고 전했다. 양혜원양도 비슷한 말을 많이 들었다. “학원 쌤들이 ‘시험 공부는 수학부터 제대로 잡아놓고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수학이 잘돼야 다른 것도 잘된다고”라고 말했다.

영어 절대평가 전환을 전후로 수학도 절대평가해야 한다는 제안이 일각서 나왔다. 하지만 대입 정시전형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교육혁신센터장은 “학생들이 끝없이 불안해하는 것은 수학 평가가 정해진 시간에 빠르게 푸는 것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라고 봤다. 최 소장은 “수학이 입시에서 경쟁하고 점수 매기는 목적으로 쓰이다보니 95점과 96점의 차이를 강조하는 쪽으로 인식되는 것”이라며 “답이 틀리면 풀이 과정을 쓴 것에 대한 보상이 없기 때문에 절차적인 융통성을 길러주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④ 멀어진 우리, 가까워질 수 있을까

■ 소행성 충돌, ‘코로나19’

지난해엔 거대한 외부 충격이 가해져 수학 흥미 그래프가 파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등교 연기와 원격수업 시행이 남긴 흔적이다. 지난해 중학교의 등교일수는 전국 평균 88.1일에 불과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①15세, 수학을 말하다]이 굴곡진 그래프는 포기·불안·인내가 담긴 우리의 ‘수학 생애사’

임성민군(14)의 그래프는 지난해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코로나19를 만나며 크게 하락했다. 2학년에 올라와 등교가 늘어나며 반등했다. 임군은 “1학년 때는 거의 다 원격으로 해서 집에서 집중이 잘 안됐다. 2학년에 직접 학교에 와서 공부하니까 어려운 것도 선생님한테 자세히 물어볼 수 있어서 좋고 그래서 더 재밌다”고 했다. 임군은 원격수업에는 10점 만점에 4점, 등교수업에는 8점을 줬다.

박다니엘군에게 작년은 ‘공백기’였다. 박군은 “이때 3분의 1을 다 잔 것 같다. 원격수업이 아니었더라면 (수학 흥미도가) 두 칸 정도는 올랐을 것이다. 지난해 1년의 공백기가 너무 길어 3학년 올라오면서 힘들어진 것”이라고 돌아봤다. 박군은 “중1 끝부분에 계획을 세워놓았더라면 2학년 내내 공부를 더 많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된다”고 말했다.

학원에 다니지 않으며 혼자 인터넷 강의를 듣는 윤동홍군(15) 또한 질문을 할 곳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튜브나 EBS에선 강의는 볼 수 있어도 질문은 못하잖아요. 그래서 선생님의 필요성을 느껴요. 질문하고 답변해줄 수 있는 그런 선생님요.” 윤군은 “대면하기 힘든 상황이더라도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물어볼 수 있는 시간을 좀 더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 풀고 또 풀고

“어떻게 풀어야 되는지를 딱 외우다시피 해서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시험을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수학은 이해뿐만 아니라 계산 실력도 좋아야 하고요.”(중2 김지우) “학교에선 응용 문제는 잘 가르쳐주지 않아서 무조건 문제지를 많이 풀어야 돼요. 블랙라벨(최고 난도 수준 문제집)까지 다 풀어봐야 돼요. 안 그러면 50점대 나와요.”(중3 문성훈)

한국 학생들에게 수학 공부란 문제풀이를 반복하는 단순노동이 된 지 오래다. 덕분에 문제풀이 속도만큼은 세계 1위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등 72개국을 대상으로 치러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한국 학생은 문제를 푸는 데 걸린 시간이 72개국 중 가장 짧았다. 과목당 제한시간이 60분인데 한국 학생들은 읽기 24분, 수학 24분, 과학 28분 만에 풀이를 끝냈다. 주어진 시간의 절반도 쓰지 않은 것이다.

문제풀이 속도에 비해 성적은 상대적으로 낮고, 흥미도는 훨씬 더 낮은 것이 한국 학생의 특징이다. 2015년 PISA 영역별 1위는 한국보다 문제를 더 천천히 푼 싱가포르가 석권했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의 분석을 보면, 한국 중2 학생의 수학 성취도는 39개국 중 3위지만 수학에 대한 흥미는 꼴찌였다. 수학에 대한 자신감도 뒤에서 4등이었다.

■ 수학과 화해할 수 있을까…“나에게 수학이란”

불안감, 선행학습, 변별력, 대입, 문제풀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되는 수학. 학생들에게 수학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김영빈군은 “수학이란 사막에서 물이랑 낙타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사막에서 물과 낙타가 없으면 빠져나갈 수 없는 것처럼 수학에서도 공식이 없으면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이다. 금채영양(15)은 “수학은 신체에 중요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태어나게 해주는 배꼽”이라고 했다. 실생활에 쓸모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아도 인생에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 배꼽과 수학이 닮았다고 했다. 문솔양(14)에게 수학은 “다단계 방법”이다. 기초를 쌓은 후 계속해서 올라가야 하는 특징을 빗댔다.

윤동홍군은 “수학이란 고뇌”라고 했다. 잘해야 하는데 쏟은 만큼 성적이 잘 오르지 않아 속상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윤군은 “성취감보다는 고뇌의 시간이 더 길기 때문에 만약 안 배워도 되면 솔직히 안 배우고 싶다”고 했다. 박선우양에게 수학은 “애증의 관계”다. 박양은 “다 맞게 풀어놓고 사칙연산에서 틀린다거나 전혀 감이 안 오는 어려운 문제를 보면 진짜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든다. 너무 좋긴 하지만 어떤 때는 되게 미워지는 그런 과목”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수학과 화해할 수 있을까. 박제이양(14)은 “애초에 우리나라 시험제도 자체가 수포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시험을 보기 위해선 일단 진도를 빨리 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 속도에 맞출 수 없는 아이들도 있는데, 학교는 그 학생들은 놔두고 진도를 나간다”고 말했다. 이충훈군은 “압박감을 주지 않으면서 내가 이해될 때까지 화내지 않고 세세하게 설명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①15세, 수학을 말하다]이 굴곡진 그래프는 포기·불안·인내가 담긴 우리의 ‘수학 생애사’
■글싣는 순서
①15세, 수학을 말하다
②20대, 사다리를 말하다
③헌법 제31조를 다시 말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3부작은 한국교육방송공사(EBS) 창사특집으로 진행한 경향신문과 EBS의 공동 기획입니다. 기사는 경향신문 홈페이지와 인터랙티브 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으며, 특집 프로그램은 21~23일 오후 9시50분~10시45분 EBS1 채널에서 방영됩니다.

■공동취재팀
경향신문 : 정제혁 정책사회부장, 이성희·김서영 기자
EBS : 오정호 방송제작기획부장, 이상익·김현수·윤미영·정보영·김나연·박송희 PD, 김유미·윤선영·황도현·조희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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