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도, 보수도 ‘보편적 교육복지 확대’

남지원 기자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9일 앞둔 2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계자들이 투표용지를 검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9일 앞둔 2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계자들이 투표용지를 검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가 처음으로 같이 치러지며 민선 교육감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2010년대 초반 가장 첨예한 논쟁을 불러왔던 정책이슈는 ‘무상급식’으로 대표되는 보편적 교육복지 확대였다. 당시 보수 후보들은 저소득층에게만 선별적으로 무상급식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보편적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민선 교육감 12년을 거치며 보편적 교육복지 확대는 교육감 후보들의 ‘공통공약’ 중 하나가 됐다. 무상급식과 무상교복·무상교과서·고등학교 무상교육에 이어 이번 선거에서는 무상 유아교육, 무상 아침급식, 무상 체육복, 무상 수학여행 등 새로운 ‘무상’ 공약들이 등장했다. 보수진영 후보들의 전유물이었던 교사 권리보호 문제도 진보진영 후보들이 받으며 진영을 막론한 공통공약으로 부상했다.

■‘무상 아침급식’ ‘무상 유아교육’…공통공약 된 ‘교육복지’

조희연(왼쪽부터)·조전혁·박선영·조영달 서울시교육감 후보들이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S에서 서울시교육감선거 후보자 토론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조희연(왼쪽부터)·조전혁·박선영·조영달 서울시교육감 후보들이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S에서 서울시교육감선거 후보자 토론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교육복지 이슈는 이제 진보교육감 후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보수진영으로 분류되는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후보는 ‘초등학생 아침급식 전면 실시’ 공약을 내세웠다. 초등학생 아침급식은 원래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김은혜 국민의힘 후보의 공약이었지만, 임 후보가 나서서 전국 교육감 후보들에게 참여를 요청하는 등 판을 키우며 경기도교육감 선거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보수성향인 최계운 인천시교육감 후보도 아침급식 무상제공을 공약했다. 반면 진보 성향의 성기선 경기도교육감 후보는 “학생들이 하루를 건강하게 시작하기 위한 먹거리가 제공돼야 한다는 점은 동의한다”면서도 “영양사 등 필요한 인력이 부족해 교육청과 학교가 갈등을 빚을 수 있고, 급식관리를 할 교사들의 출근시간을 당겨야 하는데 대책이 있느냐”고 비판하며 공개토론회를 제안했다. 보수성향 후보가 무상급식 확대를 주장하고, 진보성향 후보가 제동을 거는 모양새다.

전국 후보들이 공통적으로 ‘지역 농산물을 사용한 친환경 급식’을 내세운 것도 이번 선거의 특징 중 하나다. 학부모 표심과 지역 농·어민들의 표심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 박혜자 광주시교육감 후보 등 진보진영 후보들이 ‘채식급식 선택권 보장’을 공약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초등 돌봄교실을 오후 7~8시까지 확대하거나 돌봄 대상을 초등학교 6학년까지 확대하고, 아침시간 돌봄교실을 신설하는 등 학교의 돌봄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공약도 전국 후보들이 보수·진보진영을 가리지 않고 내놨다.

올해부터 전면 무상교육이 시작된 고등학교에 이어 유아교육을 무상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교육감 선거를 계기로 힘을 얻고 있다. 노옥희 울산시교육감 후보는 만 3~5세 사립유치원생들에게 유아학비를 지원해 사립유치원까지 무상교육을 실현하겠다고 공약했다. 유아교육법에는 초등 취학 직전 3년의 유아교육을 무상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실제 유아교육비와 사립유치원 누리과정 지원금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지난해 기준 전국 사립유치원의 월평균 학부모 부담금은 19만2000원이다. 노 후보는 “공·사립 구분없는 공평한 유아교육으로 교육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무상교과서, 무상교복 등 교육복지 공약의 명맥도 진영을 막론하고 이어졌다. 최계운 인천시교육감 후보와 박종훈 경남도교육감 후보, 김병우 충북도교육감 후보 등은 학생들에게 체육복을 무상으로 지급하겠다고 했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후보, 김지철 충남도교육감 후보 등은 ‘무상 수학여행’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석문 제주도교육감 후보는 고등학생들에게 버스카드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버스비를 전액 지원하겠다고 했다.

교육감 후보들의 ‘무상 공약’ 목록이 늘어나면서 꼭 필요한 교육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만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청에는 내국세 총액의 20.79%가 자동으로 편성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배부되는데 현재 국회 심의 중인 2차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되면 올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8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될 교육감들이 하반기에 이 예산을 집행하게 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유아교육 공공성 확대 등 꼭 필요한 곳도 있지만 일부 공약은 다른 곳에 써야 할 돈을 끌어다 쓰는 것이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며 “학력부진 해결이나 교원 확충 등 꼭 필요한 곳에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데, 후보들이 표를 얻기 쉬운 부분에 돈을 쓰느라 정작 필요한 사업에는 돈이 모자라는 ‘풍요 속 빈곤’이 나타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진보·보수 막론하고 “교권보호·교원 업무경감”

엄창옥(왼쪽)·강은희 대구시교육감 후보가 23일 TBC대구방송에서 열린 대구시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시교육감 후보자 토론회 시작 전 각오를 다지고 있다. 연합뉴스

엄창옥(왼쪽)·강은희 대구시교육감 후보가 23일 TBC대구방송에서 열린 대구시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시교육감 후보자 토론회 시작 전 각오를 다지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은 주로 보수진영에서 제기했던 교사 권리보호 문제도 진영을 막론하고 다수 후보들이 공약에 포함시켰다. 진보 성향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교육활동보호조례’를 제정해 교권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김석준 부산시교육감 후보는 교권침해보험의 보장범위를 확대하고, 희망 교사에게 녹음 전화기를 지원하는 등의 정책을 내놨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후보는 ‘교권침해 법률상담의료 원스톱 지원 서비스’를 실시한다고 했고, 하윤수 부산시교육감 후보는 대한변호사협회와 MOU를 맺고 ‘1학교 1변호사제’를 도입하겠다고 하는 등 교사들에 대한 법률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공약도 상당수 나왔다. 조전혁 서울시교육감 후보 등 일부 보수진영 후보들은 학생인권조례를 교권침해의 주범으로 꼽으며 이를 폐지하는 것을 ‘교권보호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학교 방역업무가 가중되며 부각된 교사 행정업무 경감 문제도 많은 후보들이 공약으로 채택했다. 김병우 충북도교육감 후보 등은 방과후 강사·기간제교사 채용 등을 교원 업무에서 제외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최계운 인천시교육감 후보 등은 교원 업무에서 돌봄행정 업무를 제외하겠다고 했다. 방과후교실과 돌봄교실 관리, 교·강사 채용 등의 업무는 교사들의 업무를 가중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꼽혔던 것들이다. 교육감 선거 후보들의 정책공약은 24일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의 정책공약마당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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