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성 빛내기’ 플랫 입주자 프로젝트

2008년 호주제 폐지 이후 ‘엄마 성 쓰기’는 어디까지 왔을까

임아영 젠더데스크    유선희 기자

2008년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부성우선주의는 여전히 공고하다. 민법은 원칙적으로 “자녀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규정한다. 다만 당시 개정안에 “부모가 혼인신고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는 ‘선택지’를 만들었다. 이에 따라 혼인신고할 때 ‘자녀의 성·본은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했는가’라는 조항에 ‘예’라고 표기하고 별도 협의서를 제출한 경우 자녀에게 모의 성·본을 물려줄 수 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날 때가 아니라 혼인신고 때 아이의 성을 결정해야 하는 점, 모의 성을 따를 때만 혼인신고서에 별도로 체크해야 하는 점, 부의 성을 따를 땐 받지 않는 협의서를 모의 성을 따를 때만 받는 점 등이 문제로 제기돼왔다. ‘기본값’이 부성으로 돼 있다 보니 혼인신고 때 엄마 성을 따르겠다며 협의서를 제출하는 경우는 1000건 가운데 2~3건에 불과하다. 송효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21년 ‘젠더리뷰’에 “자녀의 성 결정에 관한 조항은 민법에 남아 있는 가장 명시적인 성차별 조항”이라고 밝혔다.

헌법재판소가 2005년 2월 3일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자 헌재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여성·시민단체 회원들이 결정을 환영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헌법재판소가 2005년 2월 3일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자 헌재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여성·시민단체 회원들이 결정을 환영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윤석열 정부 들어 ‘정부 방침 후퇴’

정부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8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정부에 “민법에서 부계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밝히며 부성주의를 폐지할 것을 권고했고 2020년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부모의 협의를 통해 자녀의 성·본을 결정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것을 법무부에 권고했다. 여성가족부는 2021년 4월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년)을 발표하며 자녀의 성 결정을 ‘부모 협의 원칙’으로 전환해 자녀의 출생신고 시 부모가 협의해 아버지나 어머니 성을 따를 수 있도록 민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바뀌고 1년 만인 2022년 11월 법무부는 민법의 ‘부성 우선주의’ 원칙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냈다. 이는 2021년 3월 이설아·장동현씨 부부가 “부의 성을 디폴트로 삼고, 모의 성을 따르는 것을 ‘예외’로 두는 구시대적인 가족 제도에 종점이 찍힐 때가 왔다”며 ‘부성 우선주의 원칙이 헌법상 혼인·가족생활 기본권과 인격권,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에 대해 정부가 의견을 낸 것이다.

현재 헌재 전원재판부는 부성 우선주의가 위헌인지 심리 중이다. 헌재 관계자는 “이 사안은 중요 사건이라 기간이 꽤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 부성 우선주의를 폐기하는 민법 개정안이 여러 건 발의되기도 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않했다.

이설아·장동현씨 부부가 2021년 3월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아이가 아버지 성을 우선 따르도록 한 민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설아·장동현씨 부부가 2021년 3월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아이가 아버지 성을 우선 따르도록 한 민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법원 문을 두드리며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

정부와 국회의 무관심에 법원에 직접 성·본 변경 허가를 청구하며 문을 두드리는 부부들도 있다. A씨 부부는 혼인신고 당시 자녀 계획이 없었으나 결혼 8년차에 아이를 낳기로 하면서 엄마 성을 따르기로 결정했고 2021년 서울가정법원에 ‘자의 성과 본’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구했다. 그해 11월 서울가정법원이 이를 허가하면서 혼인신고 후에도 부부의 합의에 따라 자녀에게 물려줄 성을 결정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A씨 부부를 대리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는 당시 이 결정에 대해 “어머니의 성과 본을 자녀에게 물려줌으로써 자녀가 입는 불이익보다 이익이 더 크고, 궁극적으로 자녀의 복리에 부합할 수 있다는 점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6월 베트남 여성 B씨가 자신이 창설한 성·본을 후손 대대로 이어지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아들의 성·본을 자신의 성·본으로 바꾸게 해달라는 청구가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의정부지방법원 재판부는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 국적을 취득해 자신의 성씨와 본관을 만들었던 B씨의 청구를 받아들이며 성·본 변경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성·본 변경으로 인해 외국 이주민의 혈통임을 드러내고 또 사회의 주류 질서에 반하는 것처럼 비쳐 편견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 우려가) 가족 구성원의 개인적 존엄과 양성평등이라는 헌법상 이익을 무시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원의림 변호사(법률사무소 의림)는 “이 결정은 성이 부모의 정체성을 물려주는데 유의미한 지표라는 점을 짚었고 부계 뿐 아니라 모계 정체성을 성을 통해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인정한 판례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법원의 이러한 흐름처럼 사회적 공감대도 높은 편이다. 여가부가 2021년 7월 발표한 ‘다양한 가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72%가 ‘자녀 출생신고 시 부모가 협의해 자녀의 성과 본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 변호사는 “법원이 이혼이나 재혼 가정이 아니라도 성·본 변경을 허가하는 흐름이 나타난 것은 가정 내 성평등 이슈나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며 “앞으로 관련 청구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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