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살인’의 비극···“병원이든 학교든 위기가정 발굴 경로 넓혀야”

김향미 기자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홀로 간병하다 아버지를 굶겨 죽음에 이르게 한 22세 청년 강도영씨(가명)는 검사와 면담하면서 “아버지를 퇴원시킨 바로 다음날부터 ‘기약도 없이 아버지를 돌보며 살기는 어렵고 경제적으로도 힘드니 돌아가시도록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진술했다.

강씨 사건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후 이른바 ‘간병살인’이 일어난 데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다. 강씨 행위에 대한 법적·도덕적 판단과는 별개로, 그가 ‘간병돌봄으로 인한 위기’에 직면했으나 어떠한 공적 지원도 받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보도와 1·2심 판결문을 종합하면 강씨 아버지는 지난해 9월 뇌출혈로 쓰러져 올 4월까지 병원·요양병원에서 수술·입원 치료를 받았다. 2000만원 상당의 병원비를 강씨 삼촌이 냈고, 강씨는 “더 이상 치료비를 부담하기 어려워” 아버지를 퇴원시켰다. 강씨는 간간이 편의점 등에서 일했으나 휴대전화, 도시가스 등이 끊기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생활고에 시달렸다.

강씨 부자는 경제적 취약계층인 만큼 우선적으로 긴급복지지원제도(의료비 300만원, 최대 2회)나 재난적 의료비(의료비 본인부담금의 50%, 연 최대 3000만원)를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강씨가 소득이 계속 적거나 없다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선정돼 생계급여나 의료·주거급여를 받았을 수 있다. 강씨 아버지가 식사나 대소변을 모두 장치에 의존하는 상태였으므로 중증 장애인에 보장되는 장애인연금(월 30만원)이나, 노인성 질환에 따른 노인장기요양보험 서비스를 받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럼에도 강씨가 이런 제도를 이용하지 못한 이유는 ‘신청하지 않아서’다. 2심 판결문을 보면 삼촌이 생계지원이나 장애지원 등을 받으라며 관련 절차를 알려줬지만 강씨는 주민센터 등을 방문한 적이 없다. 생활고에 세 모녀가 함께 생을 마감한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힘쓰겠다”고 해왔지만, 여전히 신청주의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지자체는 단전·단수 등 위기신호를 관계기관을 통해 전달받아 위기가정을 발굴하고 있지만, 강씨 아버지 이름은 숨진 뒤에나 관리망에 올랐다. 강씨 부자의 위기를 먼저 알았을 병원도 재난적 의료비 등 민관 복지체계와 연계해주진 않았다.

전문가들은 더욱 촘촘한 발굴체계 및 의료비 지원책 등을 제언했다. 이명묵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대표는 “주민센터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이 과로하는 상황에서 지역을 돌며 위기가정을 찾기란 쉽지 않고, 의료법상 의료사회복지사를 둬야 하는 종합병원 이상 상급의료기관조차도 원무과 직원이 관련 자격증을 따게 하는 등 편법을 쓰는 곳이 있다”며 “병원이든, 학교든, 군부대든 의료사회복지사를 두고 여러 경로로 위기가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건호 병원비백만원연대 집행위원장은 “병원비를 충당할 수 없는 경우 우선 국가가 지급하고, 추후 환자나 가족의 소득에 따라 청구하는 방식의 ‘위기가정 병원비 국가우선책임제’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면서 “찾아가면 간병과 주거 등 돌봄 디자인을 해주는 지역돌봄담당관(케어매니저) 도입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도 “ ‘좋은 치료 가이드’를 받기 위해선 먼저 투병했던 사람, 사회복지·의료 전문가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며 “환우회 정보부터 의료·복지체계를 상담·연계해줄 ‘환자 투병 통합지원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년 돌봄자로 산 9년간의 경험을 쓴 <아빠의 아빠가 됐다>의 저자 조기현 작가는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도 그렇지만 막상 기초생활보장제를 신청했을 때 기준이 까다로워 힘들었다”며 “있는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케어매니저’가 우선 필요하다. 돌봄의 사회화·제도화가 강화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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