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오운완’

패럴림픽 밖 보통 장애인들의 ‘운동’ 이야기

민서영 기자    최유진 PD
시각장애인 요가강사 최어진씨, 필라테스하는 척수장애인 유지민양, 헬스하는 지체장애인 변재원씨, 휠체어농구팀 트레이너 이순홍씨가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체육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최유진 PD

시각장애인 요가강사 최어진씨, 필라테스하는 척수장애인 유지민양, 헬스하는 지체장애인 변재원씨, 휠체어농구팀 트레이너 이순홍씨가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체육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최유진 PD

세상엔 수많은 ‘운동하는 장애인’들이 있다. 미디어에서 주목해온 장애인의 운동은 ‘한계를 뛰어넘는 투혼’들이었다. 현실에는 한계를 뛰어넘지 않은 평범한 장애인들이 더 많다.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건강해지고 싶어서 운동을 한다. 지난해 장애인생활체육조사를 보면 운동하는 장애인 10명 중 8명(84.2%)은 ‘건강 및 체력관리’를 위해 운동에 참여한다고 답했다. 재활을 목적으로 운동하는 장애인은 10명 중 1명(12.1%)에 그쳤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23일 헬스하는 지체장애인 변재원씨(29), 필라테스하는 척수장애인 유지민양(16), 시각장애인 요가강사 최어진씨(26)를 만나 이들의 운동 이야기를 들었다. “하루라도 내 몸을 더 쓰기 위해” 목발로 산책을 하고, 휠체어에 앉아 덤벨을 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메달 대신 땀 흘릴 권리, 건강할 권리를 원했다.

‘이상한 장애인 OOO’이 헬스장에 간다면? | 장애 당사자들의 운동 경험기

운동의 시작···체육관을 ‘뚫어야 한다’

목발을 짚고 다니는 재원씨는 학창시절 운동을 한 기억이 없다. 다른 친구들이 체육시간에 운동장을 뛰어다닐 때 그는 늘 교실을 지켰다. 재원씨는 격한 운동 후 숨을 헉헉대는 이들이 부러웠다. ‘땀 흘릴 수 있는 특권’은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2년 전 처음으로 체육관 문을 두드렸다. 장애인 생활체육 바우처를 통해 운동을 지도해줄 사람은 구했는데 운동을 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내가 (장애인이 다닐 수 있는) 체육관을 뚫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네이버에 ‘헬스’ 이렇게 검색하고 전화해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다치시면 어떡하냐’ ‘특수체육 전공자가 없다’ 등등 이유가 되게 각양각색이었죠.”

변재원씨가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체육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최유진 PD

변재원씨가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체육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최유진 PD

비장애인도 운동하다 다칠 수 있지만, 아무도 비장애인에게 ‘다칠 수 있다’는 이유로 등록을 막지는 않는다. 재원씨는 “(그런 말을 들으니까) 장애 당사자가 어떻게 쭈뼛쭈뼛 (비장애인이 다니는 체육관에) 들어갔을지언정 차마 누굴 붙잡고 운동을 가르쳐달라고 말을 못하겠는 거다. 그 사람은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운동을 가르쳐줘야지’ 하는 생각보다 ‘내가 책임 소재가 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먼저 할테니까”라고 말했다.

재원씨는 고민 끝에 ‘학내 구성원’ 찬스로 다니고 있는 대학원 학교 체육관에 등록을 했다. 사는 집과 1시간 거리다. 현재 매일 2시간씩 헬스를 하고 있다는 그는 “학교 밖을 나오면 (운동을) 그렇게 못하지 않을까, 내가 운동을 어디서 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고 했다.

‘유산소’라는 난관

땀을 흘리고 싶어 운동을 시작한 장애인들의 가장 큰 고민은 ‘유산소 운동’이다. ‘걸어라’ ‘뛰어라’ ‘런닝머신을 타라’는 비장애인에게 가장 쉬운 주문이 장애인에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비장애인 중심의 헬스장 유산소 기구들은 신체 마비와 변형, 절단으로 팔다리가 짧거나 구부정한 장애인의 몸에 맞지 않는다.

장애인은 비만과 고혈압, 당뇨병의 유병률이 모두 비장애인보다 더 높다. 평균수명도 2020년 기준 76.7세로 비장애인을 포함한 전체 기대수명(83.5세)보다 낮다. 재원씨는 이에 대해 “장애 때문에 아프고 죽었다기보단 장애로 인해 체육관을 가지 못하고 운동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빨리 아프고 더 빨리 죽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에게 강도 높은 유산소 운동은 비만과 그로 인한 성인병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유지민양이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체육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최유진 PD

유지민양이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체육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최유진 PD

필라테스 1년차 지민양의 가장 큰 고민도 ‘유산소’였다. 체중 감량을 하는 데 근력 운동과 식단만으로는 한계를 느꼈다. 예전에 살던 동네엔 집 앞 좋은 산책로가 있어 그곳을 매일 휠체어로 달렸지만, 새로 이사온 동네엔 ‘휠체어가 달릴 수 있을 만한’ 매끄러운 산책로가 없었다. 얼마전 지민양은 “돈을 많이 주고” 휠리엑스라는 휠체어 트레드밀을 장만했다. 아이패드로 노래를 틀어놓고 3㎞를 휠체어로 달리면 400 칼로리가 빠진다고 한다.

재원씨의 ‘유산소 운동 찾기’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재원씨는 지난 2년동안 다리 대신 상체를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로잉머신을 탔다. 장애로 변형된 몸을 ‘조금 억지로’ 기구에 밀어넣은 모양새지만 매일 30분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유산소 운동이었다. 그러다 얼마전 담당 의사에게 “척수 신경을 자극할 수 있으니 로잉머신을 타지 마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이제 재원씨는 그동안 잘 사용한 로잉머신을 보내줄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대신 수영복과 수경을 장만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수영인데, “학교 체육관 수영장에 등록은 했지만 강사가 수업을 해도 된다고 받아주는 건 다른 문제”다. 재원씨는 “긴장이 된다”고 했다.

변재원씨가 지난 1일 자신의 집에서 휠체어 위에 앉아 덤벨 운동을 하고 있다. 뒤에는 재원씨가 지난 2년간 유산소 운동을 하는데 사용했던 로잉머신이 있다. 최유진 PD

변재원씨가 지난 1일 자신의 집에서 휠체어 위에 앉아 덤벨 운동을 하고 있다. 뒤에는 재원씨가 지난 2년간 유산소 운동을 하는데 사용했던 로잉머신이 있다. 최유진 PD

‘눈바디'만 가능한 나의 운동일지

45.7㎏인 성인 남자가 ‘고도비만’의 BMI(평균 체질량 지수)가 나올 수 있을까. 마비된 한쪽 다리의 근육이 전혀 없는 재원씨에겐 가능한 얘기다. “특수체육 교실에서 장애인이 잴 수 있는 인바디 기기를 사용해봤는데 체지방률이 38.7%가 나오더라고요. 인바디 결과서 논리대로 지방을 뺄 만큼 빼면 저는 한 30㎏이 돼버리는데 그럼 제가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어요.(웃음) 아쉽게도 제가 참고할 수 없는 자료가 돼버린 거죠.”

변재원씨가 지난달 23일 경향신문과 인터뷰 도중 자신이 인바디 결과서를 보여주고 있다. 척추측만증이 심한 재원씨는 키 139cm에 몸무게 45.7kg인데, 비장애인 기준의 인바디 결과에서는 ‘고도비만’에 해당한다. 최유진 PD

변재원씨가 지난달 23일 경향신문과 인터뷰 도중 자신이 인바디 결과서를 보여주고 있다. 척추측만증이 심한 재원씨는 키 139cm에 몸무게 45.7kg인데, 비장애인 기준의 인바디 결과에서는 ‘고도비만’에 해당한다. 최유진 PD

비장애인의 몸에 맞춰 설계된 BMI 지수와 인바디 결과가 장애인에겐 무용지물이다. 척수 장애인도 활용할 수 있는 ‘덱사’라는 의료기기가 있지만 가격이 수천만원에 이를 뿐더러 일부 대학에만 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지민양은 체중조차 재기 어렵다.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는 200만원짜리 체중계는 대학병원에 가야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일한 참고자료는 ‘눈바디’다. 재원씨는 “장애인은 제일 큰 문제가 지금 어디까지 운동이 됐고 앞으로 얼마나 더 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장애인 생활체육을 지도하는 이순홍씨(27)는 “대부분 우리가 유튜브에서 보는 다이어트 식단 등 영양학적인 부분도 비장애인 기준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이 운동을 해도 돼?”

한 쪽 눈이 보이지 않는 어진씨는 20대 초반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요가강사가 됐다. 몇달 만에 요가강사 자격증을 바로 딸 정도로 운동신경이 좋았지만, 어진씨 역시 ‘장애인이 어떻게 운동을 하냐’는 질문을 종종 들었다. “나는 한쪽 눈 시력이 없는 거지 몸을 못 움직이는 게 아닌데 ‘너 진짜 노력 되게 많이 했구나’ 이런 소리를 너무 많이 들었어요. 물론 노력했지만, 장애인이 패럴림픽 나가면 매체에서 보내는 그런 시선만큼 그렇게까지 노력을 하진 않았거든요.”

최어진씨가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체육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최어진씨가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체육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어진씨는 ‘피나는’ 노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지 않았다. 회사생활보다 요가강사가 더 재밌어보였고, 하고 싶은 일을 한 것 뿐이다. 하고 싶었던 운동이 직업이 된 ‘운동하는 장애인’은 더 노골적인 차별에 시달렸다. “요가 수업을 제가 들어가는데 원장님이 따라 들어오시는 거예요. 수업 참관하는줄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회원님들한테 ‘죄송합니다’ 사과를 하는 거예요. 저는 본인이 뭘 잘못했는 줄 알았어요. ‘이분이 지금 장애인이라서 굉장히 부족하신 분이거든요. 그러니까 양해를 좀 부탁드려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날 수업하고 바로 잘렸어요.”

지난해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의 ‘재활운동 및 체육 서비스 제공을 위한 장애인 요구도 분석’ 결과를 보면, 장애인 운동 참여의 제약 요소로 ‘비장애인들의 부정적 인식(장애인이라고 수근거려서, 장애인이랑 함께 운동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 때문에)’, ‘비장애인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운동할 때 신기한 눈으로 처다봐서, 불쌍한 눈길로 쳐다봐서)’ 등 인식에 관한 제약을 지적했다.

‘오늘도 운동 완료’

어진씨와 재원씨, 지민양이 운동을 하는 이유는 비장애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진씨는 “체력이 늘어나니까 피곤하지 않아서 마음의 여유가 많이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체력을 기르고자 유행하는 필라테스를 시작한 지민양은 요즘 ‘갓생’ 사는 재미에 푹 빠졌다. 재원씨는 헬스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운동하는 비장애인들 사이에서 ‘깍두기’가 아닌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변재원씨가 지난 1일 학교 캠퍼스 안을 산책하고 있다. 현재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재원씨는 건강을 위해 매일 학교 근처 공원까지 걷는다고 했다. 민서영 기자

변재원씨가 지난 1일 학교 캠퍼스 안을 산책하고 있다. 현재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재원씨는 건강을 위해 매일 학교 근처 공원까지 걷는다고 했다. 민서영 기자

달라진 체력과 몸무게만큼 실감하는 건 내 몸에 대한 마음가짐이다. “장애당사자 중에 자기 몸을 아껴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장애 정체성을 받아들인다는 건 결국 내 몸이 마비되고 변형되고 절단된 부분까지도 담담하게 하나의 특징으로 이해하는 건데 그 과정이 굉장히 어렵거든요.”

스스로의 몸이 싫었다는 재원씨는 “운동을 하면서 자기 몸을 계속해서 바라보니까 ‘내가 이 몸과 여기까지는 타협을 보면서 같이 살아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고 했다. 지민양의 운동 목표는 “온전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나의 몸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건강해지고 싶은, 내 몸을 지금보다 조금 더 사랑하고 싶은 이들의 운동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유지민양이 지난달 27일 평소 다니는 필라테스 교습소에서 필라테스 운동을 하고 있다. 지민양은 일주일에 3번 운동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최유진 PD

유지민양이 지난달 27일 평소 다니는 필라테스 교습소에서 필라테스 운동을 하고 있다. 지민양은 일주일에 3번 운동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최유진 PD

최어진씨가 지난달 23일 경향신문과 인터뷰 후 요가 동작을 시연하고 있다. 요가강사로 일하고 있는 어진씨는 매일 요가 ‘홈트’를 하고 있다. 최근엔 리듬체조 레슨도 받기 시작했다. 최유진 PD

최어진씨가 지난달 23일 경향신문과 인터뷰 후 요가 동작을 시연하고 있다. 요가강사로 일하고 있는 어진씨는 매일 요가 ‘홈트’를 하고 있다. 최근엔 리듬체조 레슨도 받기 시작했다. 최유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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