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꺼졌지만…속은 계속 타요”

최승현·윤희일 기자

강원 강릉시, 곳곳에 토사·낙석…장마 때 산사태 가능성 커

“3년 전에도 2차 피해” 녹색댐 대체할 사방댐 등 설치 필요

강원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도로변 철망이 16일 산불로 인한 낙석을 버티지 못하고 찢겨 있다. 김영기 남양2리 이장 제공

강원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도로변 철망이 16일 산불로 인한 낙석을 버티지 못하고 찢겨 있다. 김영기 남양2리 이장 제공

“산사태 우려가 커지고 있어요. 산불이 진화된 직후부터 곳곳에서 낙석이 굴러떨지고 있어 정말 걱정입니다.”

16일 오전 강원 강릉시 옥계면 남양2리 이장인 김영기씨(66)는 산불 피해지에서 쏟아져 내린 토사와 낙석으로 인해 파손된 도로변 철망 4곳을 발견해 면사무소에 신고했다. 강릉시 옥계면 남양2리는 지난 5일 발생해 나흘간 이어진 산불로 인해 주택 7채가 불타고, 마을 주변의 산림 대부분이 소실된 지역이다.

김씨는 “3개월 후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면 산불로 초토화된 경사지 등에서 산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3년 전 옥계면 일대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한 이후 1~2년간 산사태가 이어져 도로가 통제되는 일어 빚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 2019년 4월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은 초속 12m의 강풍을 타고 동해시로 번져 산림 1260㏊와 관광시설, 주택 등을 태워 610억원 상당의 피해를 냈었다.

김씨는 “대형 산불이 발생한 이후 신속하게 재해 예방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더 큰 재앙이 찾아올 수 있다”며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주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대형 산불의 2차 피해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2000년 4월 발생한 산불로 1400여㏊가량의 산림이 소실된 강릉시 사천면 석교리의 주민들은 2년 후 또다시 대규모 재난을 겪었다. 2002년 9월 ‘태풍 루사’가 시간당 100㎜ 안팎의 폭우를 쏟아내자 산불 피해지인 사천면 석교리 일대 야산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산사태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석교리 주민들은 “산불 피해지에서 산사태가 이어지며 흘러내린 토사와 폐목들이 하천에 쌓이면서 물이 범람해 주택 수십채가 파손되고, 동네 이웃 3명이 숨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태풍 루사’ 때 주택 225채가 파손된 동해시 삼화동 역시 2000년 4월 산불 당시 산림이 대규모로 소실됐던 지역이다. 산불 피해지의 경우 토양 접합력이 약해져 토사 유출 방지기능이 130배가량 떨어지고, 수분 저장기능도 절반으로 감소해 산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지난 4~5일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강릉·동해·영월 등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해 최장 8일간 지속된 산불로 인해 소실된 산림의 면적은 2만5003㏊에 달한다. 이는 여의도 면적(290㏊)의 86배가 넘는 엄청난 규모다. 울진, 삼척 등 산불 피해지역 주민들은 “역대 최대 규모의 산림 피해가 발생해 녹색댐 역할을 상실한 만큼 산사태 우려지역에 우선적으로 사방댐을 조성하는 등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한 시설을 대폭 보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산림청은 피해 조사가 끝나는 대로 복구 계획을 수립해 산사태 등으로 인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응급복구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김영혁 산림청 산사태방지과장은 “장마철 이전인 오는 6월까지 산사태 우려지역에 골막이나 계류보전, 사방댐 등의 시설을 설치하는 등 응급 복구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800~1000도가량의 화염이 휩쓸고 간 산불 피해지 곳곳에 숯덩이로 변한 각종 나무와 다량의 재가 뒤덮여 있는 것도 큰 문제다. 비가 올때 불에 탄 나무의 잔가지와 알카리성을 띤 잿물이 하천과 바다로 유입되면 물고기 폐사 등 수중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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