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보고 시점 ‘대통령- 장관-청장 순’…이후 지시도 중구난방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일 밤 윤석열 대통령과 윤희근 경찰청장이 시차를 두고 일부 동일한 지시를 반복한 것을 두고 국가 재난 대응 체계의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사를 보고받은 순서가 ‘윤 대통령-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윤 청장’ 순으로 뒤집혔을 뿐만 아니라 뒤늦게 내린 각급 지시 또한 중구난방으로 하달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장관을 중심으로 모든 관계 부처 및 기관에서는 피해 시민들에 대한 신속한 구급과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 달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발생 1시간6분 만인 지난 10월29일 오후 11시21분 윤 대통령이 국정상황실장으로부터 사고 소식을 보고받고 내린 첫 지시 내용이다. 해당 지시는 대변인실을 거쳐 15분 만인 오후 11시36분 언론에 배포됐다. 경찰 최고책임자인 윤 청장은 대통령의 지시가 나오고 38분이 경과한 30일 0시14분 경찰청 상황1담당관으로부터 이태원 참사 발생 사실을 처음 보고받았다. 재난 대응을 총괄하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 역시 대통령보다 18분 늦은 29일 오후 11시20분 행안부 내 알림 문자로 사고 사실을 처음 인지했다. 참사 보고는 통상적인 보고 체계의 역순으로 이뤄졌다.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보다 먼저 사고를 보고받은 윤 대통령은 첫 지시를 내리고 33분이 지난 29일 오후 11시54분 “응급의료팀 파견 및 응급 병상 확보”라는 두 번째 지시를 했다. 30일 0시42분 대통령실 위기관리센터로 출근해 사고 관련 긴급 상황 점검 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피해자들의 신속한 의료기관 이송과 치료, 사고 현장의 차량·인원 통제 등을 통한 사고 수습을 지시했다.
윤 대통령이 긴급 상황 점검 회의에서 내린 지시 중 ‘사고 현장의 차량·인원 통제’는 윤 청장이 앞서 30일 0시19분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전화해 내린 지시 중 ‘구급차 진출입로 확보 등 교통활동 강화’ 지시와 대동소이하다. 23분 전 내린 윤 청장의 지시에도 차량 통제가 원활하지 않자 윤 대통령이 거듭 지시했거나 윤 청장이 이미 지시한 사실을 모르고 윤 대통령이반복해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다. 윤 대통령은 이후에도 같은 지시를 반복했다. 윤 대통령은 참사 현장 수습이 한창이던 30일 오전 1시56분 현장을 지휘하던 김 서울청장에게 전화해 구급차 진출입로 확보를 재차 지시했다. 사고 발생 후 3시간41분이 지난 시점까지도 현장에선 구급차 진·출입로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이런 보고 체계 붕괴가 늑장 대응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원인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