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노동의 미래 그리고 기본소득 : 분배정의에 대한 새로운 상상”

이다혜 |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
[녹아내리는 노동]“기생충, 노동의 미래 그리고 기본소득 : 분배정의에 대한 새로운 상상”

영화 <기생충>에서 아버지는 “계획은 원래 없다”고 한다. 영화 말미에 아들은 “아버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돈을 벌겠습니다. 아주 많이요”라고 화답한다. 우리는 아들의 그 소원이 성취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아버지의 ‘계획 없음’보다 아들의 ‘계획 있음’이 더 절망적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열심히 일하면 돈이 모이고 계획을 성취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을까?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지난 3세기 동안 자본소득의 증식이 노동소득을 추월했음을 보여줬다. 불평등과 양극화는 글로벌 경제도, 우리 사회에서도 최대 고민거리다. 일을 통한 재산 축적은커녕 당장 생활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전환이라는 키워드들 속에 기존 일자리조차 위협받는다. 기술 발전은 사람의 노동을 대체한다. 과거엔 전화로 짜장면을 주문하면 철가방을 든 낯익은 중국집 종업원이 방문했다. 지금은 스마트폰 터치 몇 번이면 낯선 앱 배달기사가 온다. 최근 이러한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들의 근로 여건에 대한 논란이 많다. 그런데 가까운 장래에는 로봇과 드론 배송을 보게 될 것이다. 공유경제, 디지털 플랫폼은 인공지능(AI) 상용화 전 과도기다. AI가 보편화되면 플랫폼 노동 일자리조차 사라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새로운 사회안전망으로 제안하는 논의가 활발하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주어지는 일정한 소득인데, 일하지 않아도 소득을 준다는 점에서 거부감을 표하는 이들도 많다. 당연한 반응이다. 우리의 정의 관념은 지금의 사회 구조를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을 말하지만, 법과 제도는 여전히 산업화 시대에 기반해 있다. 산업자본주의의 핵심은 고용을 매개로 생존을 담보하는 것이다. 20세기 초 영국 경제학자 존 케인스와 현대적 사회보장을 설계한 윌리엄 베버리지는 완전고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대전 이후 경제는 고속성장을 거듭했고, 일자리가 아닌 일손이 부족했다. 취업하는 것이 당연했기에 일하지 않는 사람이 이상한 사회였다. 서구에서 경제성장과 고용보호를 모두 달성한 1945~1975년 사이를 복지학에서는 ‘영광의 30년’이라고 한다. 한국은 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부터, IMF 위기를 맞은 1997년까지가 짧은 ‘영광의 10년’일 것이다.

글로벌 경제도, 한국 경제도 이 시기 이후로는 저성장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영광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독일 정치경제학자 볼프강 슈트렉은 <시간 벌기>에서 경제성장, 고용보호를 동시에 누린 이 시기는 인류사적으로 매우 특수했음을 지적한다. 역사 전체를 볼 때 경제성장이란 행운은 늘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환경은 급변하는데, 산업화 시대의 정의 관념은 그대로 남아 있다. 청년실업, 고령빈곤 모두 심각한 문제다.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해도 취업이, 노후보장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헌법 제32조는 모든 국민의 일할 권리를 보장한다. 그러나 일자리의 양과 질까지 책임지지 못한다. 현재의 고용 체제는 고기를 직접 주지 않고, 잡는 법을 익혀 각자 생존하라는 것이다. 취업 실패는 개인의 능력 탓이다. 그런데 아무리 고기 잡는 법을 열심히 갈고 닦아도 연못에 고기가 없거나, 먹지 못할 부실한 고기만 있으면 어찌할 것인가? 제임스 퍼거슨은 저서 <분배정치의 시대>(원제: Give a Man a Fish)에서 통념을 뒤집고 고기를 먼저 줄 때 성공적이었던 남아공의 기본소득 시도를 소개한다.

기술혁신으로 이윤창출 구조와 노동의 방식이 변한다면, 근로소득을 통해 재화가 분배되던 기존 방식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과거 기업은 노동집약적 제조업으로 이윤을 창출했지만, 지금 기업은 빅데이터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며 종래 사람의 일을 디지털 기술과 AI로 처리한다. 그런데 기술과 노동의 관계 설정 문제는 인류가 처음 겪는 것이 아니다. 18세기 1차 산업혁명 때도 노동자들은 기계로 인한 대량실업을 두려워했지만 ‘노동의 종말’은 오지 않았다. 기술 발전으로 새로운 직종이 생겨났고, 각국이 산업화 문제 해결을 위해 헌법과 법률로 노동권, 사회보장권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론은 인류가 계속 씨름해온 생존권 보장, 노동 문제 해결의 역사와 계보를 같이 한다. 현재의 보호 시스템이 부족하다면, 기술혁신으로 증가하는 생산성을 기본소득의 근거이자 재원으로 고민할 수 있다. 기본소득의 현대 이론을 정립한 대표 학자 필리페 판 파레이스는 기본소득이 기존 노동법이나 공공재적 사회보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며, 각국 사정에 맞게 점진적·부분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기본소득이 바라보는 세상은 반대론자들이 우려하듯 아무도 일하지 않는 무력한 사회가 아니라, 모든 이가 적절한 발판을 토대로 더 안전하게, 더 가치있게 일하는 정의로운 사회다. 열심히 노력해도 지하실에 갇힌 듯한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기생충이라는 비난이 아니라, 어둠에서 한 발짝 나올 수 있는 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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