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고용형태 변화·산업전환 가속노동운동, 변해야 살아남는다

정대연·고희진 기자

정규직·비정규직 나뉜 ‘이중구조’
플랫폼노동·젊은층 사무직 노조
대기업·중장년 중심 체제에 균열

정부 “탈탄소” 석탄발전소 폐쇄
노조의 기후위기 대응 ‘발등의 불’

A씨(34)가 다니는 지방공기업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상급단체로 둔 2개의 노조가 있다. 하지만 A씨는 아무 데도 가입하지 않았다. A씨는 “다수 조합원 의견을 듣지 않고 나이 많은 간부들이 마음대로 결정한 뒤 관철시키려고만 한다”며 “무임승차한다는 생각은 들지만 노조에 가입해 활동할 만한 동기가 없다”고 밝혔다. 이런 인식은 청년층에서 특히 강하다.

게임업계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는 B씨(34) 회사에는 노조가 없다. 최근 회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있지만 직원들은 회사 눈치를 보며 얘기하기를 꺼린다. B씨는 휴게실도 없는 닭장 같은 곳에서 일한다. 같은 업계의 다른 회사들에 노조가 생겨 노동조건과 처우가 달라졌다는 얘기를 들으면 솔깃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B씨는 “노조가 생긴 후 다른 직원들이 노조에 많이 가입한다면 모르겠지만 불이익이 있을까봐 가입하기 꺼려진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노동운동은 급속한 양적 팽창을 이뤘다. 2019년 말 기준으로 전체 노조원 수는 253만1000명이다. 노조조직률은 2010년 9.8%에서 12.5%로 껑충 뛰었다. 노조원 10명 중 8명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이다. 양대 노총은 조합원 100만명 시대를 맞았다.

양적 성장의 이면에서 대기업·정규직·중장년 중심 노동체제에 균열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2000년대 들어 ‘노동운동의 위기’가 거론되지 않은 적은 없다. 하지만 현 상황은 존재론적 위기에 가까워 보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더해 플랫폼노동이라는 새로운 고용형태가 급속히 확산 중이다. 젊은층이 중심이 된 대기업 사무직 노동자들의 별도 노조 결성 흐름은 노동 내 세대 간 간극을 보여준다.

기후위기와 산업전환이라는 거대한 해일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탄소배출량이 많은 발전·자동차·제철·석유화학 등 산업 노동자들에게 기후위기는 발등의 불이다.

경향신문은 19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과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전체대표자회의가 석탄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1만1000여명 중 36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후위기로 인한 산업전환 과정에서의 고용실태 조사’ 결과를 입수했다. 전체 발전소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이 같은 대규모 조사가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조사는 지난 3월25일부터 지난달 30일까지 진행됐다.

석탄화력발전소는 정부의 탈탄소 기조에서 가장 먼저 사업장 폐쇄 등이 결정된 곳이다. 노동자들의 위기의식은 설문조사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10명 중 8명 가까이(76%)가 발전소 폐쇄로 고용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독일 등 해외에서는 2000년대 이전부터 노조가 정부·사용자와 기후위기, 산업전환 대책을 마련해왔다. 하지만 한국 노동운동은 여전히 ‘대화냐, 파업이냐’는 이분법에 갇혀 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기후위기와 산업전환, 플랫폼·프리랜서를 비롯한 ‘노동 밖의 노동’, 노조 내 세대·젠더·고령화 등에 대응해 변화하지 않으면 10년 후쯤 일부 노조는 역사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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