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노동운동, 조직화 어려운 '법 밖' 노동자 외면"

정대연·고희진 기자

‘성’ 밖 노동자와 청년 - 누군가에겐 ‘허울’인 노조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지난달 28일 열린 ‘라이더유니온 라이더 정책 배달데이’ 행사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오른쪽에서 다섯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지난달 28일 열린 ‘라이더유니온 라이더 정책 배달데이’ 행사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오른쪽에서 다섯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처럼 근로기준법 보호 범위의 바깥에 있는 노동자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노동조합에서 전부터 있었지만 뚜렷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총연맹이나 산별노조들이 다양한 미조직사업을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당장 조직화할 가능성이 낮아보이는 영역은 소홀히 다루다 보니 취약 노동자들은 노동운동 안에서도 주변화됐다. 나도 민주노총 조합원이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사무총장은 25일 노동운동의 현 상황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지난 1월 법내 노조가 된 권리찾기유니온은 2019년 10월 비영리단체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권유하다)로 출발했다. 사업주가 노동법상 의무를 회피하려고 실제와 달리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서류를 조작하거나 노동자를 사업소득세 3.3%를 내는 사업자로 위장하는 사례를 피해자들과 함께 고발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화를 촉구하는 운동을 노동계에서 처음 시작했다.

‘권유하다’가 출범할 당시 발기인의 3분의 2가량은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기존 노조 활동가들이었다. 하지만 노조로 전환한 이후 가입하는 조합원은 청년 등 태어나 처음 노조를 접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정 사무총장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조직화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노조가 이들에 대한 사업에 역량을 집중해 취약 노동자의 지지를 얻는다면 정부나 기업과의 역학관계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 고용형태가 다양화하는 시기에 변화를 선도할 수 있는 공격적인 조직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취약 노동자 “노조, 도움 안 돼”

프리랜서 등 취약 노동자들
노동운동 안에서도 주변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사업에서 취약 노동자가 후순위로 밀리고, 취약 노동자는 취약 노동자대로 노조를 외면하고 적대하는 악순환은 해소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현실은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3월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프리랜서·특수고용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고졸 학력 이하, 회사에 노조가 없는 경우일수록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현재의 노조 활동이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많았다. 설문에선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일수록 노조 가입률이 낮은 이유가 무엇인지도 물었다(최대 2개 중복응답). ‘기존 노조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47%), ‘노조 가입에 따른 불이익’(43.6%), ‘노조에 가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27.8%), ‘조합비·노조 활동 등 노조 가입 문턱이 높아서’(19.1%) 등 답이 돌아왔다.

노동계는 이번 설문조사 질문에 ‘민주노총·한국노총’이 들어간 점에 주목한다. 노조의 일반적 역할과 기능은 긍정적으로 보지만 양대 노총 중심인 현 노동운동에 대해선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박정환 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은 “양대 노총이 조합원 이익을 무엇보다 우선시한 결과”라며 “성(노조)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겠지만 노조 깃발 아래 모일 수 없는 사람들은 (양대 노총 활동을) 사회 전체 이익을 경시하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고 말했다.

■ 노동의 다양화와 노조 안팎 시도

1999년 설립된 전국여성노조
2019년 출범 라이더유니온 등
양대 노총 밖서 다양한 시도

노동운동 안에서도 성을 넓히려는 움직임이 있다. 2018년 네이버·넥슨·스마일게이트·카카오 등을 시작으로 노조 결성이 본격화한 정보기술(IT)·게임업계가 대표적인 사례다. 회사 안에서는 본사와 계열사 직원이 하나의 노조로 모였고, 회사 밖에서는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로 뭉쳤다. 서승욱 화섬식품노조 카카오지회장은 “본사, 자회사, 손자회사 직원들이 같이 모여 일하는데 각자 처우가 다른 게 이상하다는 인식이 직원들 사이에 있다”며 “회사 방침에 따라 누구든 소속 회사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계열사 간 복지, 휴가, 휴식, 안전 등에 대한 격차를 줄이는 게 임금·단체협상의 목표”라고 말했다.

여성·청년·플랫폼 등 취약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과소 대표되는 것을 극복하려고 양대 노총 바깥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전국여성노조는 대공장, 정규직, 남성 중심인 양대 노총 운동에 문제의식을 느낀 여성 활동가들이 주도해 1999년 만들었다. 조합원은 주로 학교 공무직·대학청소 노동자·골프장 캐디 등 처우가 열악한 여성들이다. 2010년 한국 사회 첫 세대노조로 등장한 청년유니온의 고민도 비슷했다. 설립 당시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주변부 노동시장은 노동운동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은 “민주노총 안에서 노조를 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창립 때부터 들어왔지만 운동의 파급력 면에서 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했다”며 “청년노동에 대한 고민의 방향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2019년 출범해 플랫폼노동 문제를 앞장서 제기해온 라이더유니온은 빠른 의사결정과 집행,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는 점을 스스로의 장점으로 꼽는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출범 당시 노동운동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서 플랫폼노동에 무지하던 상황이라 독자적인 활동이 효과적일 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설립된 문화예술노동연대 웹툰작가노조의 하신아 사무국장은 “상급단체를 두면 조직 정비 면에서 유리하다”면서도 “노동형태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플랫폼 노동자이자 용역 노동자이고, 저작권자이기도 한 웹툰작가의 특성을 상급단체가 이해하고 문제 해결에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노조, 과감한 실험 필요”

“초기업단위 교섭 가능하도록
법·제도 개선 함께 이뤄져야”

전문가들은 갈수록 다양화하는 노동형태에 맞게 양대 노총이 과감한 실험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는 “플랫폼으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아 혼자 작업하는 노동자들을 조직하려면 노조의 조직적 틀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노조보다는 느슨한 형태의 조직이 적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플랫폼·영세사업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이미 진행 중인 실험도 있다. 노동공제회 운동이 한 예다. 노조 결성·가입이 어려운 처지의 노동자들에게 상조·의료·소액대출 등 혜택을 제공해 느슨한 형태로 연대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화섬식품노조 서울봉제인지회가 2019년 11월 만든 봉제인공제회는 국내 첫 노동공제회 시도다. 현재 200명가량 가입해 있다. 한국노총은 올해 하반기 플랫폼노동공제회 설립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은 “음식배달기사, 대리기사, 셔틀버스기사, 미디어 비정규직 등이 노동공제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며 “시간은 걸리겠지만 소규모 사업장 노조 조직률이 전체 평균(12.5%)에 도달해 이들이 노동운동의 주축이 될 경우 소득 격차 등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2019년 말 기준 3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는 절반 이상(54.8%)이 노조에 가입한 반면 30~99인 사업장 노동자는 1.7%,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0.1%만 노조에 가입해 있다.

2017년 11월 e메일·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한 무료 법률 상담 제공을 시작하며 노동운동에 새 바람을 일으킨 직장갑질119는 온라인 노조 설립이라는 또 다른 실험을 준비 중이다. 현재 직장갑질119는 어린이집 교사·사회복지사·콜센터 상담사 등 10개가량의 업종별 온라인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3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온라인으로 가입해 익명으로 활동할 수 있는 노조가 있다면 가입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절반 가까이(45.6%)가 ‘그렇다’고 답했다(‘아니다’ 16.6%, ‘잘 모르겠다’ 37.8%).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업종별 온라인 노조가 의미있는 힘을 발휘하려면 사용자단체가 교섭에 응해야 한다. 초기업단위 교섭이 실질적으로 가능하도록 법·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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