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동 노동자 쉼터 철거 위기…지친 몸과 마음 어디에 누이라고

4년 전 시민이 건립한 ‘꿀잠’

해마다 4000명 이상 다녀가

최근 재개발조합 ‘정비계획’

쉼터 존치 목소리 반영 안 돼

대책위, 구청 앞 절박한 호소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 꿀잠대책위’가 4일 서울 영등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길2구역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비정규직 노동자 쉼터 ‘꿀잠’을 지켜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2017년 서울 영등포구에 문을 연 비정규직 노동자 쉼터 ‘꿀잠’이 신길동 재개발로 사라질 상황에 처했다. 100여 단위의 개인과 단체가 모인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 꿀잠대책위’는 4일 영등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꿀잠을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고 문중원 기수 유가족 오은주씨, 문정현 평화바람 신부 등이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12년 이상 해고 상태였다가 2018년 복직한 KTX 승무원 김승하씨도 9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현장을 찾았다.

꿀잠은 시민들 후원과 연인원 1000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지어진 국내 첫 비정규노동자 쉼터다. 장기투쟁으로 지친 비정규직 노동자와 해고노동자가 마음 편하게 쉬고 활동할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자는 취지로 2015년 8월 처음 제안됐고, 시민 2000여명이 모금에 참여해 7억6000여만원을 후원했다.

고 백기완 선생과 문정현 신부가 서각과 붓글씨 전시회를 열어 꿀잠 건립비에 보태기도 했다. 이렇게 2017년 8월19일 개소한 후 노동자뿐 아니라 청년단체 등의 숙박 및 공간 대관 이용이 크게 늘었다. 꿀잠에 따르면 한 해 평균 이용자는 4000여명에 이른다.

꿀잠은 노동자를 떠나보낸 유가족들에게도 기댈 언덕이 됐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2018년 12월 아들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를 당해 서울대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됐으나 서울에 연고가 없어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는 옥탑방 딸린 5층 건물 꿀잠에 머물던 날을 잊지 못한다. 김씨는 “마치 친정집 같았고 따스하게 보호받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문중원 기수의 아내 오은주씨도 “남편이 한국마사회의 부당함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을 때, 100일간 힘든 투쟁 속에서도 꿀잠에서만큼은 지친 몸과 마음이 잠시라도 쉴 수 있었다”고 했다.

꿀잠이 있는 신길2구역은 2009년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재개발추진위원회 활동에 진척이 없다가 지난해 3월 재개발조합이 설립됐다. 꿀잠 측은 “재개발조합과 영등포구청에 꿀잠 공간은 그 자체로 역사적 공간이기 때문에 존치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최근 재개발조합이 공시한 정비계획변경조치계획안에는 꿀잠의 의견이 반영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아직 정비계획변경 최종안이 나온 것이 아니다”라며 “이후 진행될 주민공람과 주민설명회를 통해 꿀잠 측이 의견을 주면 확정된 안을 서울시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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