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노동자 ‘아버지’…첫 태아산재 신청

고희진 기자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일하던 남성 노동자가 병을 안고 태어난 아이에 대해 태아산재 보험을 신청했다. 그간 어머니의 유해요인 노출로 인한 태아산재 신청 및 인정 사건은 있었지만, 아버지의 노출로 인한 태아산재 신청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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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은 1일 삼성전자 LCD 사업부(현 삼성디스플레이) 설비엔지니어로 일했던 최현철씨(가명)가 근로복지공단에 자신의 유해요인 노출로 인한 태아 산재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그간 태아산재로 알려진 제주의료원 간호사와 반도체 노동자 사례는 모두 어머니가 유해요인에 노출된 경우였다.

최씨는 2004년 삼성전자 LCD 사업부에 입사해 2011년까지 7년 동안 근무했다. 최씨가 근무했던 TFT(박막 트랜지스터) 공정은 LCD를 구동시키기 위한 기판을 만드는 과정의 일부였다. 최씨는 해당 공정에서 일하며 생식독성물질의 하나인 이소프로필알코올(IPA)을 다량 사용했다. 최씨는 태아산재를 신청하며 소감문을 통해 “IPA를 천보루에 부어 설비를 클리닝한 후 헛구역질 또는 토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최씨의 부인이 임신한 것은 최씨가 한창 사업부에서 근무하던 2007년 8월이었다. ‘차지 증후군’을 앓는 첫째 아이는 이듬해 5월에 태어났다. 차지 증후군은 태아 발달기에 발생한 기형이 여러 장기에서 나타나는 희귀 질환이다.

반올림은 “정자의 생산주기를 감안할 때 아버지의 경우 임신 전 3개월의 유해요인 노출이 가장 주요하게 영향을 미친다”며 “최씨는 부인이 임신하기 3년 전까지 평상시와 같이 (유해 환경에 노출돼) 근무했다”고 했다. 이어 “최씨가 근무할 당시는 전자산업 직업병 문제가 알려지기 전으로, 회사의 안전보건 관리 수준이 낮았다”며 “가장 중요한 호흡기 보호구(방독면)의 경우 2010년 즈음에야 배치됐다”고도 했다.

최씨는 IPA의 위험성에 대해 2018년 삼성전자와 반올림의 반도체 피해 보상 관련 논의가 언론에 알려진 이후 알게 됐다고 했다. 이에 최씨는 2019년 1월 아이를 ‘삼성전자 반도체/LCD 산업보건 지원보상 위원회’에 피해자로 신청했고, 그해 5월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최씨는 “현재 태아산재 관련 법안이 21대 국회에 발의 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이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엄마의 업무상 요인도 있지만, 아빠의 업무상 요인도 분명히 있다. 산재보험법이 개정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법원이 제주의료원 간호사의 태아 건강 손상 또한 산재로 보호돼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뒤 국회에는 몇 건의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현행 산재보험법은 적용 대상을 노동자로 명시하고 있어 임신 중 유해 물질에 노출된 노동자가 낳은 아이가 선천성 질병을 가질 경우 요양급여를 지급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 반올림 등 노동인권단체들은 개정법에 어머니를 비롯해 아버지의 유해요인 노출로 인한 2세 건강영향도 포함할 것과 함께 과거 2세 피해자에 대한 개정법 소급적용 등이 반영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제주의료원 간호사 태아산재 사건의 피해자 대리를 했던 권동희 노무사는 “지난해 대법원에서 태아의 건강손상이 산재라는 획기적인 판결을 했지만,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며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담긴 제대로 된 법안을 만들지 않는 것은 국회와 고용노동부, 근로복지공단의 직무유기 행위다. 하루빨리 실태조사와 당사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풀어줄 수 있는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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