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배제’ 이번 국회서도 사실상 처리 무산…도대체 언제?

이혜리 기자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지난달 16일 참여연대 등 노동시민 사회단체가 5인 미만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지난달 16일 참여연대 등 노동시민 사회단체가 5인 미만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법안 논의를 보류하면서 이번 임시국회 내 처리가 사실상 무산됐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35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이들에 대한 차별이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데도 의견 수렴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처리를 미뤘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국회 논의를 지원하겠다면서도, 당장 적용보다는 시간을 두고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6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지난 4일 열린 환노위 고용노동 법안심사소위에서 소위 위원장인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러 이견이 있다’며 5인 미만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법안(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처리 여부를 결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영세 자영업자의 의견과, 법 적용에 있어 정부의 영세 자영업자 지원 방안 등을 더 들어봐야 한다는 이유를 댔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한 때가 2020년 9월, 민주당·국민의힘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한 때가 2020년 11·12월로 1년 넘게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의견수렴이 덜 됐다는 것이다.

법안이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면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회부된다. 오는 11일 본회의가 열릴 예정인 상황에서 그 전에 물리적으로 법안심사소위가 다시 열리기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이달 내 법안 처리는 무산된 것이다. 3월 대선을 앞두고 있어 당분간 법안이 논의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달 환노위의 민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법에 의한 차별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며 국민의힘을 향해 법안 처리를 호소했지만, 법안심사소위에서 법안 논의 보류에 대해 별다른 항의나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을 통해 “민주당의 호언장담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가장 중요한 의제인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은 또 다시 미뤄졌다”며 “말만 앞세우는 민주당과 실태조사 운운하며 대놓고 반대하는 국민의힘이 만든 합작”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부도 전면 적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다. 안 장관은 이날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열어놓고 검토해야 한다”, “국회 논의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하면서도,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안 장관은 “근로조건을 차별 없이 보호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있지만 회사마다 여건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현실적인 법 준수 능력이 조화를 이루는 게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며 “고민해야 될 사항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 않겠냐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안 장관은 적용 시기와 방법, 기업의 부담 완화 방안 등에 관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논의를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며 “노사와 국민 공감대를 이뤄가면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대통령 소속인 경사노위는 노사정으로 구성된 사회적 대화기구이지만 민주노총은 불참하고 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국회에서 신속하게 논의를 진행해야 할 상황에 다시 경사노위로 이 문제를 끌고 오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배제는 오랫동안 비판 받아온 문제다. 이들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는 근로기준법의 부당해고와 구제신청, 주 12시간 연장 한도, 연장·휴일·야간 가산수당 적용, 연차휴가 관련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노동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정한 게 근로기준법인데, 더 열악한 노동환경의 5인 미만 사업장에 오히려 법을 적용하지 않아 사각지대로 방치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업주의 재정이나 관리 능력을 따지지 않고 단순히 노동자 수(사업장 규모)만을 기준으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배제하는 것은 주요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입법례다.

1989년 현재와 같이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의 일부 조항 적용을 배제하는 체계가 만들어진 뒤 현재까지 30년이 넘었지만,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영계 의견 수렴 등을 이유로 개선 논의는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008년엔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엔 문재인 정부의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부당한 차별이라며 개선을 권고했지만 바뀌지 않았다. 이재명·윤석열 등 대선후보들도 이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아 대선 주요 쟁점이 되기도 어려워보이는 분위기다.

노동계는 국회의 법안 처리 무산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물론 81개 시민사회·노동단체가 모인 ‘5인 미만 차별폐지 공동행동’은 시위와 항의방문 등을 통해 이달 본회의에 개정안을 상정하라고 강력히 요구해왔다.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사무총장은 “대선 후보들이 소외된 국민을 만나겠다면서 여러가지 이벤트를 벌이지만, (이번 법안 처리 무산을 보면) 정작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수백만명의 노동자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사무총장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보통의 국민들”이라며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정치적 셈법 때문에 개선대책을 공론화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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