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 컨테이너 속 이주노동자…아무도 몰랐던 죽음의 사각지대

이혜리 기자

파주 컨테이너 불로 이주노동자 사망

정부·지자체는 “관리 어렵다” 답변만

지난달 22일 경기 파주시 조리읍의 한 공장 컨테이너에서 불이 나 이곳에 살던 인도 출신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다. 검게 탄 컨테이너의 모습. 권도현 기자

지난달 22일 경기 파주시 조리읍의 한 공장 컨테이너에서 불이 나 이곳에 살던 인도 출신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다. 검게 탄 컨테이너의 모습. 권도현 기자

냄비, 밥그릇, 의자, 티셔츠, 운동화, 수건, 소형 냉장고, 매트리스. 지난달 23일 찾은 경기 파주시 조리읍의 한 공장 앞 컨테이너 이곳저곳엔 검게 그을린 세간살이가 널브러져 있었다. 컨테이너 내부 물건의 양이나 종류를 봤을 때 하루이틀 잠깐 머무른 공간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곳에 살던 사람은 인도 출신 이주노동자 A씨(46)다. 전날 밤 불이 나 그는 이곳에서 죽었다.

“살릴 수 있었는데, 2분만 있으면 구할 수 있었는데….” 뒤편 공장 사장은 컨테이너 앞에 막걸리와 소주를 뿌리며 말했다. 야근을 하다 불이 난 것을 보고 달려와 도끼로 컨테이너 앞 쇠창살을 뜯어냈지만 A씨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사장은 A씨가 평소 한국말을 잘 못했는데 인사성은 밝았다고 했다. 불이 났을 때 ‘살려달라’는 한국말 대신 무어라 외치는 소리만 들었다고 했다.

A씨는 미숫가루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노동자는 A씨를 포함해 2명뿐인 작은 공장이다. 이 공장은 온라인 지도상으로는 컨테이너 근처에 있다고 나오지만 간판도 하나 붙어있지 않았다. A씨는 난민 신청을 한 상태로 임시 체류 비자(G1)를 받아 취업했다. 공장에서 일한 것은 2019년부터다. A씨가 번 돈으로 인도에 있는 아내와 아이가 생계를 이어갔다.

보통 이주노동자들은 사장이 제공하는 공장 근처의 공간에서 숙식한다. 깔끔한 방 한 칸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 내 간이시설에서 여러명이 함께 생활하기 일쑤였다. 이런 곳에 소방시설이 갖춰져있을 리 만무하다. A씨가 살았던 컨테이너 주변엔 깨진 유리창과 쓰레기가 쌓여있었다. 컨테이너 위엔 스티로폼과 슬레이트만 덮여있었다. A씨가 숨진 다음날 경기 김포시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컨테이너에서 불이 나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2020년 12월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이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시설이 사회 문제로 불거졌다. 정부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여전히 이주노동자는 집다운 집에서 살지 못하고 있고, 그러한 집에서 살다 죽고 있다. A씨 죽음의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봤다.

지난달 22일 화재로 사망한 이주노동자 A씨가 살았던 경기 파주시 조리읍의 공장 컨테이너 앞쪽에 옷가지와 그릇, 신발 등이 널브러져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달 22일 화재로 사망한 이주노동자 A씨가 살았던 경기 파주시 조리읍의 공장 컨테이너 앞쪽에 옷가지와 그릇, 신발 등이 널브러져 있다. 권도현 기자

■정부도, 지자체도 몰랐던 죽음의 사각지대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월 농·어업 분야 이주노동자 주거시설 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사업장이 불법 가설 건축물을 이주노동자에게 숙소로 제공하면 신규 고용허가를 불허하고, 현장 점검을 통해 열악한 주거시설을 관리감독한다는 내용이다. 또 기존 사업장에서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이용하는 이주노동자는 희망에 따라 사업장 변경을 허용키로 했다. 고용허가제란 인력 수급을 위해 정부 허가를 통해 이주노동자를 국내에 들여오는 제도를 말한다.

하지만 이번 A씨 사례는 노동부 대책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게 노동부 입장이다. 주거시설 대책은 한국과 고용허가 협약을 맺은 16개국 출신 노동자를 사용하는 고용허가제 사업장에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속헹의 본국인 캄보디아는 한국과 고용허가 협약을 맺은 국가이지만, A씨의 본국인 인도는 아니다.

한 노동부 관계자는 “고용허가로 나가는 외국 인력에 대해서는 주거시설 지침에 따라 숙소 환경을 엄격하게 따져 허가를 내준다”며 “A씨는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인력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부 관리 대상이 아니고, 알지 못한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주거시설 대책은 E-9(비전문 취업)과 H-2(방문취업) 비자를 사용하는 고용허가 사업장에 한정되는 것”이라며 “(A씨가 있던 공장은) 노동부 영역 바깥의 사업장”이라고 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5월 기준 전체 외국인 취업자 85만5000명 중 E-9과 H-2 비자를 가진 비중은 약 36%다. 상당수는 고용허가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거시설 대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을 수 있다.

컨테이너와 같은 가설 건축물을 ‘임시 숙소’로 사용할 때는 건축법 제20조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도록 돼있다. 이 조항을 위반하면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고 법에 나와있다. 그러나 A씨가 살았던 컨테이너는 지자체에 임시 숙소로 신고된 적이 없다.

국토교통부는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건축법에서 말하는 가설 건축물은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는 취지로 답변한 적이 있다. 가설 건축물은 일반적인 건축물과 달리 소방 안전 등 여러 규제가 빠져있다는 점에서 임시·한시적인 용도가 아닌 지속적인 주거 용도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그러면서 구체적인 신고·단속 등 절차는 지자체 담당이라고 했다.

파주시는 난색을 표했다. 가설 건축물 관련 사무는 시가 아니라 읍·면의 행정복지센터에서 담당한다고 했다. 조리읍의 행정복지센터는 담당 인력이 1명뿐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조리읍 쪽 관계자는 “계획을 짜서 전체적인 단속과 적발을 하면 좋겠지만 건축 담당자가 현재 업무 처리에도 바쁘기 때문에 불법 가설 건축물은 신고에 의존하게 된다”며 “불시 점검이나 일제 단속은 어렵다. 파주시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일 것”이라고 했다. 파주시청 관계자도 “파주 지역에 워낙 규모가 작은 공장이 많고 인력 한계로 인해 불법 가설 건축물을 전체적으로 다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편법적으로 (이주노동자 숙소로) 사용하는 곳이 있는 것 같다”며 “가설 건축물 사무라고 해서 읍·면에 떠넘기는 건 아니고 시에서도 신고가 들어오면 조치하고 있다”고 했다.

노동부의 주거시설 대책이 아니더라도 근로기준법 제100조는 사용자가 기숙사를 설치할 때 적절한 공간을 확보하고 화장실, 냉·난방 설비, 소방시설 등을 갖춰야 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이 규정 위반으로 형사처벌된 사례는 많지 않다. 윤자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노동부가 법적으로나 행정적으로는 A씨가 고용허가제에 해당되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인권 차원에서는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A씨도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이고 넓은 의미에서 노동자로 볼 수 있다는 차원에서 최소한의 보호 대상으로 봐야한다”고 했다. 이주노동자 인권을 다룬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등은 대상을 ‘모든 사람’으로 명시한다.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 소장은 “현장에 가보면 공장 앞에 컨테이너를 두거나, 공장 안의 공간에 침대 하나 두고 사람을 바로 작업장 옆에 살게하는 경우도 있다”며 “정부가 주거의 최저선을 모두에게 적용하도록 관리감독하고, ‘이런 숙소는 안 된다’는 신호를 명확하게 줘야 사업주가 개선해나갈 텐데 현재는 부족하다”고 했다. 고용허가제 바깥에 있는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시설에 대해서도 관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 질문에 노동부 관계자는 “국적에 따라 차별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안전에 관한 사항이니까 내부적으로 조금 더 논의해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고 했다.

지난달 22일 화재로 사망한 이주노동자 A씨가 살았던 경기 파주시 조리읍의 공장 컨테이너의 뒤편에 깨진 유리창과 쓰레기 등이 쌓여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달 22일 화재로 사망한 이주노동자 A씨가 살았던 경기 파주시 조리읍의 공장 컨테이너의 뒤편에 깨진 유리창과 쓰레기 등이 쌓여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달 22일 화재로 사망한 이주노동자 A씨가 살았던 경기 파주시 조리읍의 공장 컨테이너의 내부 모습. 권도현 기자

지난달 22일 화재로 사망한 이주노동자 A씨가 살았던 경기 파주시 조리읍의 공장 컨테이너의 내부 모습. 권도현 기자

■농·어촌 외에 제조업 숙소도 열악

농·어촌의 열악한 이주노동자 주거시설은 문제로 부각됐지만, 제조업 공장의 경우 상대적으로 형편이 낫다는 점 때문에 부각되지 못한 측면도 있다. 노동부는 제조업을 포함해 전 업종에 대해서도 지난해 7월부터 주거시설 대책을 시행했는데, 그 이후인 지난해 8월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B씨는 살던 컨테이너에서 불이 나 죽을 뻔한 일을 겪었다. 방글라데시는 한국과 고용허가 협약을 맺은 국가로, 주거시설 대책의 적용 대상이다.

제조업 공장에서 일했던 B씨는 컨테이너 숙소 안에서 잠을 자고 있던 중 바깥에서 사람들이 문을 뜯고 들어와 겨우 목숨을 구했다. B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2년 전엔 한 컨테이너에서 3명이 함께 살았다”며 “힘들어서 더 이상 한국에서 일할 수 없고 방글라데시로 돌아가려고 한다”고 했다. 컨테이너에 음식을 조리할 자리는 물론 화장실도 없어 B씨는 공장 사무실의 화장실을 써야했지만 그러면서도 월세로 25만원씩을 냈다고 한다. 그는 현재는 수개월째 임금도 받지 못한 상태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는 “컨테이너는 그야말로 임시로 사용하는 시설일 뿐이지 결코 상주하는 주거시설로 사용할 수 없다”며 “농·어촌은 물론이고 그동안 주목을 못 받은 제조업을 포함해 지자체가 불법 가설 건축물을 관리하고 철거해야 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또 “미등록 외국인만 40만명으로 고용허가제 바깥의 이주노동자가 많다”며 “지금도 이들은 불법 가건물에서 살고 있는데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노동부는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에게 숙식을 제공한 때 임금에서 해당 비용을 공제할 수 있도록 한 지침에 대해 개선을 논의했지만 지난해 말 회의 종료 후 별달리 진전된 것은 없다. 노동계에선 임금을 사업주가 직접 노동자에게 ‘전액’ 지급하도록 한 근로기준법에 이 지침이 어긋난다고 주장해왔다. 사업주가 노동자에 대해 별도의 채권을 갖고 있더라도 노동자 보호를 위해 임금에서 일방적으로 뺄 수 없도록 한 것인데, 노동부 지침은 이주노동자에게 예외를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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