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페이 받으며 사고위험 노출…대학생 현장실습 ‘노동인권 사각’

유선희 기자

충남 천안시의 한 특수목적대학교에 재학 중인 A씨(27)는 올해 1월 4주 현장실습에 나섰다가 실습기관 측과 갈등을 빚었다. 학교를 통해 실습기관을 소개받았는데, 전공과 관련 없는 단순 노동 업무만 주어졌다. 직무 관련 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했고, 주 5일 40시간(휴게시간 1시간 포함해 하루 8시간)씩 4주간 일하고 받은 실습비는 올 최저임금 기준 급여의 약 34% 수준인 50만원이었다.

A씨는 17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직무교육이랄 것도 없는 데다 기계공학 전공에 맞는 업무가 아닌 전선 피복을 벗기고 전선을 잘라 커넥터에 꽂는 작업 등만 반복했다”며 “공업용 열풍기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자칫 화상을 입을 우려도 있었지만 목장갑 외에 별다른 보호장구는 없었다”고 말했다. A씨는 문제제기를 하자 담당 부장으로부터 되레 폭언과 힐난을 들었다고 밝혔다.

결국 A씨는 대학교 측에 실습기관 교체를 요청하고 일을 그만뒀는데, 이후 제대로 된 기관을 찾지 못하면서 그나마 40시간 이수한 근무기록마저 삭제됐다. 학교 측은 “실습기관과의 협의, 실제 직무교육시간 등 운영상 미흡한 부분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연속해 현장실습이 이어지지 못하면 학점으로 인정할 수 없어 이전 근무기록을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0일 경기 고양시 화정동의 한 화훼농장에서 대학생 B씨(20)가 상토혼합기(비료 배합 기계)에 포대에 담긴 흙을 붓는 도중 넘어지면서 상반신이 기계의 회전체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B씨는 국립대학인 한국농수산대학교에 재학 중이었고, 이 학교는 2학년이 되면 무조건 두 학기 동안 ‘장기 현장실습’을 받아야 한다.

“주 40시간 일하고 월급 90만원 받아”

대학 현장실습제 ‘구멍 숭숭’

B씨가 학교, 사업주와 맺은 ‘장기현장실습교육 협정서’를 입수해 살펴보니, B씨는 이 농장에서 3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일할 계획이었고 실습비는 주 5일 40시간 일하는 조건으로 월 90만원을 받는 조건이었다.

대학 측이 사고가 발생한 화훼농장을 실습기관으로 선정한 것은 2020년 10월로, 농장에서 현장실습 대학생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화훼농장은 1인 사업장으로, 산업재해 가입 사업장이 아니었다. 현장실습 학생도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다.

대학생 현장실습을 둘러싼 ‘열정페이’ 논란과 산재사고는 과거부터 반복돼왔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생 현장실습제도는 미흡하게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장실습학기제는 ‘표준형’과 ‘자율형’으로 구분하는데, A씨는 대학교, 실습기관과 3자 간 ‘표준 현장실습학기제 협약서’를 체결했다.

표준 현장실습학기제 운영규정에 따르면 직무 관련 교육시간은 총 실습시간의 10~25%를 차지해야 하고, 실습비는 최저임금의 75%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실습비는 실습기관에서 학생에게 지급하는 비용으로, 학교를 통한 장학금 형태로 지급해서는 안 된다. A씨의 경우 이런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교육부의 운영규정을 보면 학생보호 조치의 일환으로 실습기관은 현장실습 학기제에 참여하는 학생에 대해 산재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또 산재보험 가입 여부를 증명하는 서류를 가입 후 일주일 이내에 학교에 제출해야 한다. 이 규정대로라면 한국농수산대학교는 규정을 어긴 것인데, 해당 대학은 ‘한국농수산대학 설치법’이라는 별도 법령에 따라 의무실습을 진행하고 있어 교육부 운영규정 고시 적용을 받지 않아도 됐다.

한국농수산대학교 측은 “설치법에 따라 장기현장 실습 훈령을 만들어 운영해왔다”며 “일반적으로 근로자 없는 사업장의 경우 산재보험 가입 제외인데, 학생들이 실습을 나갈 경우 근로자가 없어도 산재보험에 가입하도록 노동부에 제도개선을 요구할 생각”이라고 했다.

권미정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상임활동가는 “대학생 현장실습에 대한 산재 현황이나 규모, 학생들의 인권실태 등을 유형화해 공개하는 자료가 없는데, 부처 간 업무가 나뉘어 있다보니 발생하는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며 “주기적·정기적인 관리·감독과 정보공개 창구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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