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의 트렌드 이끄는 박태준… 신작 ‘퀘스트지상주의’와 ‘김부장’의 명암

칼럼니스트 위근우

성공지상주의 세계관·캐릭터 공유하며 작품 양산…‘성공’이 맞을까

네이버웹툰 신작 <퀘스트지상주의>는 강해지고 싶은 평범한 고교생 김수현의 눈앞에 게임 같은 퀘스트 창이 나타나며 벌어지는 스토리를 담았다. 네이버웹툰 캡처

네이버웹툰 신작 <퀘스트지상주의>는 강해지고 싶은 평범한 고교생 김수현의 눈앞에 게임 같은 퀘스트 창이 나타나며 벌어지는 스토리를 담았다. 네이버웹툰 캡처

“요즘 웹툰 존나 재미없네.” 박태준 작가가 운영하는 박태준 만화회사의 네이버웹툰 신작 <퀘스트지상주의>의 첫 장면은 해당 회차 제목과 동일한 어느 ‘일진’의 대사로 시작된다. 같은 무리는 서로 “뭐만 하면 찐따가 강해져”, “요즘 학폭이 어딨다고 시발”, “작가들이 틀딱이라 그래”라고 요즘 웹툰에 대한 혹평을 주고받는다. 영리한 도발이다. 그러한 ‘요즘’ 웹툰의 트렌드를 만들어낸 게 박태준 작가 본인이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피해자에 혐오의 대상인 주인공이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잘생기고 강한 몸으로 변해 있더라는 <외모지상주의>의 아이디어는 역시 약자 포지션인 주인공이 싸움 동영상 채널을 보고 강해지는 과정을 담은 <싸움독학>이나, 현재 잘나가는 과거의 가해자가 어떤 계기로 과거 자신의 피해자 몸으로 들어가 자신의 싸움 노하우로 과거를 바꿔나간다는 <인생존망>에서 반복되었다. 지난해 말 완결된 <인생존망>을 포함해 세 작품 모두 네이버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으며 다른 작가들도 비슷한 패턴의 ‘일진물’로 인기를 모았다. 하여 앞의 대사는 종종 웹툰 획일화의 주범으로 몰리는 스스로에 대한 희화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컷의 시점이 바뀌면 일진들의 대사가 무색하게 그들에게 괴롭힘당하는 주인공 김수현이 등장한다. 그러니 도발이다. 제목부터 <외모지상주의>의 패러디인 이 작품에서 수현은 박태준의 다른 만화처럼 “찐따가 강해”지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고, 어느 순간 바람대로 그의 눈엔 게임 같은 퀘스트 창이 보인다. 대표 본인이 대중화시킨 ‘일진물’이 클리셰가 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박태준 만화회사는 또 다른 요즘 웹툰 트렌드인 게임처럼 레벨업하는 주인공 클리셰를 끼워 넣어 도발한다. 자신들은 다른 것도 잘할 수 있다는 도발인 동시에, 어차피 ‘일진물’을 포함해 성공하는 작품 패턴은 정해진 것 아니냐는 도발. 만약 <외모지상주의>와 <퀘스트지상주의>를 연결하는 세계관이 있다면 그것은 ‘성공지상주의’일 것이다.

실제로 <퀘스트지상주의>와 <외모지상주의>는 세계관을 공유한다. 두 작품만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박태준 만화회사의 또 다른 신작 <김부장>을 포함해 이들 신작은 <외모지상주의>를 포함한 박태준의 기존 세 작품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종의 스핀오프 프로젝트다. 전에도 <싸움독학>의 캐릭터 중 하나인 김문성이 <인생존망>에 등장해 작중 악의 축인 과거의 장안철과 종합격투기 대련을 하는 에피소드가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기본적으로 수많은 10대 일진 강자들이 등장하는 각 작품 간 컬래버레이션에 대한 독자 바람이 있었던 만큼 이번 두 신작은 그에 대한 전략적 산물처럼 보인다. <퀘스트지상주의>와 기존 작품 간 연결고리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를 무대로 하는 만큼 캐릭터 간 만남과 서사의 교차는 어렵지 않고, <김부장>의 주인공 김부장은 이미 <외모지상주의>에서 국가비밀요원 출신 중년 고수로 등장한 바 있다. <외모지상주의> <인생존망> <싸움독학>의 스토리를 직접 담당하며 동시 연재를 성공적으로 해냈던 박태준 작가라면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더 많은 작품을 본인 지휘 아래 충분히 일관성을 유지하며 생산해낼 법하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일관성이다.

대중의 동시대적 욕망과 윤리 분리
자극적 만족주는 테크닉 뛰어나

서사 속도·사이다 같은 쾌감 녹여
시장 요구 맞는 규격화 모델 갖춰

노력 부족·실수에 의한 불량률보다
재미 추구 위한 왜곡 이루어져

‘요즘’ 웹툰과 박태준 세계 동일시
그렇다고 ‘성공 기준’ 말할 수 있나

앞서 말했듯 장르적으로 <퀘스트지상주의>는 박태준의 기존 작품과 어느 정도 궤를 달리하며, 납치된 딸을 찾는 중년의 추적과 복수를 담은 <김부장>은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또한 <퀘스트지상주의>는 수많은 웹소설과 웹툰에서 반복된 게임과 레벨업이라는 클리셰를 기존 작품들의 비슷한 구조 안에 적절히 결합한 것에 가깝고, <김부장> 역시 영화 <테이큰> <아저씨>에서 쉽게 볼 수 있던 몇 가지 클리셰를 박태준 작가 특유의 강자와 약자 간 관계 역전의 쾌감으로 연결한다. 장르가 바뀌고 스토리 작가가 바뀌고 그림 작가가 바뀌었지만 박태준 만화회사의 신작은 놀라울 정도로 박태준의 방식을 거의 그대로 답습한다. ‘아싸’로 분류되던 수현은 퀘스트를 통한 레벨업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일진에게 승리하고 노래방에서 통할 고음까지 레벨업해 ‘인싸’에 진입하며, 김부장의 액션과 분노는 <테이큰>의 브라이언(리암 니슨)보다는 차라리 인터넷 커뮤니티의 ‘비밀요원 출신이 깡패 참교육 한 썰’에 가까운 정서로 연출된다. 학교 일진이나 김부장의 딸을 폭행하는 깡패의 모습은 충분히 부정적으로 그려지지만, 작품은 판타지에 가까운 계기로 그들을 징벌하는 쾌감에 집중할 뿐 윤리적 전망을 남기지 못한다. 아니, 남기지 않는다. 이 쾌감은 악에 대한 징벌이 아닌 약자가 기존의 나쁜 강자를 짓밟고 그 위에 서는 상승의 욕망에 기대기 때문이다. 일진은 나쁜 놈이지만 힘에 의한 서열은 그대로여야 한다. 박태준 유니버스는 단순히 캐릭터만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특유의 능력주의적인 관점까지 공유한다. 이 세계가 ‘성공지상주의’인 건 그래서다. 대중의 동시대적 욕망을 윤리와 분리해 가장 자극적인 방식으로 만족시켜주는 박태준 작가의 테크닉은 다른 장르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만큼 대량 생산 공정으로 매뉴얼화 됐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또 다른 신작 <김부장>을 포함해 박태준 작가의 기존 세 작품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종의 스핀오프 프로젝트다. 네이버웹툰 캡처

비슷한 시기에 나온 또 다른 신작 <김부장>을 포함해 박태준 작가의 기존 세 작품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종의 스핀오프 프로젝트다. 네이버웹툰 캡처

물론 박태준 만화회사의 대량 생산을 윗세대의 만화 공장장인 김성모 작가나, 그 김성모 작가조차 혀를 내두를 대량 생산 체계를 갖췄던 대본소 시대의 작가들과 비교할 수는 없다. 비록 모든 작품에서 이레즈미를 한 남자 깡패와 여성 캐릭터의 다리나 가슴 클로즈업이 강박적일 정도로 자주 등장하긴 하지만, 데생 재활용이 많아 김성모 화실엔 캐릭터 얼굴도장이 있다는 우스개를 떠올리면 박태준 유니버스의 작화는 각 그림 작가의 개성과 공력이 충분히 드러나는 편이다(<김부장>의 그림 작가 정종택의 과거 트레이싱 논란은 논외로 치겠다). 다만 작품의 윤리와 서사의 완성도보다는 시장의 요구에 맞춰 작품을 규격화된 방식으로 찍어낸다는 점에서만큼은 박태준 만화회사는 대본소 만화 공장의 계보를 잇는다. 양과 속도, 자극의 격전장이었던 대본소가 공장화된 시스템을 만들었다면, 서사의 속도와 사이다 같은 쾌감이 중요해진 웹툰 시장에서 박태준 만화회사도 시장에 최적화된 양산화 모델을 만든 셈이다. 작품 안에서도 밖에서도 ‘성공지상주의’는 반복된다. 그리고 현재까지 실제로 성공 중이다. 그 성공은 어떤 모습인가.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개별 작품의 완성도 차이와 별개로 박태준 유니버스는 공통의 결함까지 자기 복제한다. 한 편을 곱씹기보단 바로 다음 편으로 넘어가도록 플롯은 단순하게 짜되, 자극적 장면과 소동의 연속으로 정보량과 자극을 늘려 많은 이야기가 진행된 것 같은 착시를 만든다. 비호감인 악역에 대한 징벌의 쾌감을 강화하되, 폭력과 서열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 제기는 하지 않는다. ‘아싸’를 경멸하는 여성 캐릭터들을 마음껏 혐오할 판을 깔아주되, 대상화된 여체 이미지를 다양한 구도에서 소비할 수 있게 배치한다. 이것은 노력 부족이나 실수에 의한 불량률이라기보다는 어떤 종류의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한 필연적인 왜곡이다. 이런 왜곡된 세계 재현이 여러 작품을 통해 네이버라는 플랫폼 정체성 상당 부분을 구성하고 대표하는 중이다. 그러니 문제는 박태준 유니버스의 성공이 아니라, 그것이 성공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글머리에 인용한 “요즘 웹툰 존나 재미없네”라는 대사는 그래서 보이는 것 이상으로 의미심장하다. 그것이 자조든, 자신감의 역설적 발로든, ‘요즘’ 웹툰과 박태준 유니버스를 동일시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박태준 만화회사가 아무리 많은 작품을 양산하더라도 그 밖의 요즘 웹툰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아마 성공의 기준도 그러할 것이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