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참사 취재...“슬픔과 환대, 긴장 속의 7일”

최미랑 기자
튀르키예 아다나의 아파트 붕괴 현장 인근에서 9일(현지시간) 주민들이 모닥불가에 둘러앉아 추위를 녹이고 있다. 아다나 | 문재원 기자

튀르키예 아다나의 아파트 붕괴 현장 인근에서 9일(현지시간) 주민들이 모닥불가에 둘러앉아 추위를 녹이고 있다. 아다나 | 문재원 기자

이 기사는 뉴스레터 점선면 2월 24일자에 발행되었습니다. 점선면을 구독하시려면 다음 링크에서 신청해 주세요. 매주 화~금요일 메일함으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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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면] 튀르키예 참사 취재...“슬픔과 환대, 긴장 속의 7일”

독자님, 안녕하세요. 이번 주의 점선면 큐레이터 최미랑 기자입니다.

지난주에 전해드린 튀르키예 르포 <서로가 서로의 신이 된 사람들>을 읽고 많은 독자께서 감사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김서영 기자와 문재원 기자를 잡아채 이야기를 듣고 왔어요.

집도 길도 무너진 곳으로 갑작스레 떠난 두 사람은, 일주일간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요. 한국 구조대가 사람을 구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기도 하고, 어렵게 찾아간 시신 매립 현장에서 튀르키예 당국으로부터 쫓겨나기도 했답니다.

극한의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이번 취재로 자신의 일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취재했는지 함께 들어봐요.

긴박했던 출국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소식이 처음 전해진 건 이달 6일 오전 10시 무렵이다. 김서영 기자가 1보를 썼다. 출국은 어떻게 결정됐나.

김서영 = 사태가 워낙 급하게 돌아가서 2월 7일에 바로 출장이 결정됐다. 2월 8일 오전에 표를 끊고 그날 밤 바로 비행기를 탔다.

문재원 = 장례식장에서 조문하던 중 출장 통보를 받았다. 여권 기한이 남아있는지 확인부터 해야 했다. 마지막 출국이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취재였으니까. 곧장 집에 가서 만료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짐을 쌌다.

김서영 = 이스탄불 공항부터 취재가 시작됐다. 공항 곳곳에 근조 리본이 붙었고 세계 각국 구조팀이 속속 도착하는 중이었다. 지난해 7월 여행으로 튀르키예를 방문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상상 밖의 장면들

뉴스레터팀이 국제부 옆자리라 긴박한 상황을 감지할 수 있었다. 김서영 기자가 헬멧 세 개를 챙겨 황급히 떠나던 게 잊히지 않는다.

김서영 = 제 것, 문재원 기자 것, 그리고 통역 선생님 것, 이렇게 세 개를 챙겼다. 현장에선 한 번도 쓰지 않았다. 헬멧이 의미 있는 상황이 아니더라. 모든 것이 더는 무너지지 않기를, 그저 마음을 비우고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문재원 = 직전에 이태원 참사 현장을 취재했다. 셔터를 누르는 동안 시신이 계속 쏟아져나왔다.

지진 현장은 그때와는 또 달랐다. 시신을 보는 것은 차라리 익숙했다. 그동안 취재하면서 가족을 잃고 오열하는 사람은 많이 보았지만, ‘살려달라’ ‘우리 가족 좀 찾아달라’고 모든 걸 쏟아부으며 비는 사람들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직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 상상한 것보다 훨씬 마음이 아팠다. 충혈된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말 그대로 피눈물이었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6일째인 11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의 안타키아 지진 피해지역에서 주민들이 망연자실한채 서 있다. 안타키아(튀르키예)|문재원 기자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6일째인 11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의 안타키아 지진 피해지역에서 주민들이 망연자실한채 서 있다. 안타키아(튀르키예)|문재원 기자

김서영 = 글이 무력해지는 걸 경험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 중 성한 게 없었다. 멀쩡한 건물이 파괴되고 사람들은 폐허 속에 텐트를 치고 산다. 이 공간감과 냄새, 분위기를 담아낼 표현이 과연 있을까.

우리는 구조대가 아닌데, 우리에게 와서 ‘제발 저쪽으로 와달라, 소리가 들린다’ 하며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능력과 막막함이 너무 체감됐다. 한편으론 사람이 죽고 쓰러진 현장에서 이런 거에나 좌절하는 자신이 싫고 그랬다. 새벽마다 조금씩 울다가 잤다.

서울에 입국했을 때, 도로변에 건물들이 멀쩡하게 빛나는 광경이 어색했다. 왠지 이 건물들도 곧 무너질 것만 같았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매달리던 사람들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뭘 더 해주지 못하고 온 거니까.

안타키아의 무너진 건물 앞에서 문재원 기자가 사진을 찍고 있다. 안타키아 | 김서영 기자

안타키아의 무너진 건물 앞에서 문재원 기자가 사진을 찍고 있다. 안타키아 | 김서영 기자

희망의 역설

구조작업을 지켜보니 어땠나. 생존자를 찾기 위해 숨소리도 조심한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김서영 = 구조활동 자체가 ‘어디서 소리가 난다’는 제보로 시작된다. 뭔지 모르지만 일단 희망을 품고 가보는 것이다. 취재 중에도 ‘구조 중이니 조용히 해달라’는 요청을 종종 받았다. 한 사람을 구하려고 모든 장비와 사람이 숨죽이는 순간. 그 느낌이 인상적이어서 기사로 썼다.

문재원 = 65세 여성분을 구조해내는 장면을 시작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땅에 귀를 대고 소리를 감지한 후 뭔가 들리면 소리를 따라 잔해를 파내기 시작한다. 이쪽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다시 저쪽으로. 머리가 어디에 있는지 다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중장비가 아니라 자잘한 도구들을 썼다.

마침내 위치가 파악되자 트루키예와 우리나라 구조대, 자원봉사자까지 100여 명이 달려들었다. 이때부터 4시간이 걸렸다. 말 그대로 수작업이다. 돌덩이를 손으로 들어내서 양동이에 담아 내보내고 내보내고 하는 식으로. 상반신이 드러나고도 두 시간이 더 걸렸다.

구조 중에 이분의 네 번째 손가락에 금반지가 보였다. 후에 바로 옆에서 남편이 사망한 것을 목격했다. 100명이 4시간을 들여 1명을 구조하는 것을 보고 희망도 느꼈지만, ‘살리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구나’ 하는 절망감이 컸다.

튀르키예 강진 5일차인 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안타키아에서 구조 및 철거 작업을 하고 있다. 안타키아(튀르키예)|문재원 기자

튀르키예 강진 5일차인 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안타키아에서 구조 및 철거 작업을 하고 있다. 안타키아(튀르키예)|문재원 기자

김서영 = 우리가 방문한 현장은 그나마 접근이 가능한 대로변이었으니, 길조차 망가진 곳, 산더미처럼 건물 잔해만 쌓인 곳들에선 구조작업 자체를 시작도 못 했을 것이다.

문재원 = 저는 평소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편이다. 이번 취재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게 있다면 이것이다. 희망이 제일 슬프다는 것.

김서영 = 너무 슬프다. 저는 이번 취재를 하면서 믿을 건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마음 둘 곳은 남아있는 사람밖에 없더라. 주변 사람들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48시간도 모자란 하루

이런 혼란 속에 매일 마감을 해야 하니 정신이 없었을 것 같다.

김서영 = 한국인 통역사 선생님, 현지인 20대 운전기사, 이렇게 넷이 한 차를 타고 다녔다. 아침마다 우리끼리 ‘오늘 느낌이 좋다’ ‘운세가 좋은 것 같다’ 하면서 출발했다. 온종일 모든 게 다 변수니까. 서로 격려하면서 활기를 찾으려고 많이 애썼다.

쪽잠을 자다 일어난 김서영 기자가 자원봉사단과 체조하는 어린이들에 합류해 몸을 뻗고 있다.

쪽잠을 자다 일어난 김서영 기자가 자원봉사단과 체조하는 어린이들에 합류해 몸을 뻗고 있다.

문재원 = 우리가 주로 취재한 안타키아는 지진 피해가 가장 심각한 지역이다. 식당과 호텔, 카페가 전혀 없었다. 수도와 전기, 가스가 모두 끊겼다. 한국 해외긴급구호대(KDRT) 숙영지 근처에 차를 대놓고 먹을 것을 얻어먹고 화장실을 이용했다.

안타키아에는 주유할 곳이 없다. 구조대가 언제 출동할지 몰라 대기하던 밤에는 기름을 아끼려고 시동을 끄고 잤다. 이가 딱딱 부딪혔다.

김서영 = 한국 시간이 튀르키예보다 6시간 빠르다. 그곳 점심시간이면 한국에선 이미 마감 시간이다. 기사를 보내야 했기 때문에 새벽부터 정오까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마감을 하고 나면 베이스캠프인 아다나로 이동했다. 도착하면 밤 10시쯤 되어서 한 끼 먹고 쪽잠을 잤다.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이 없으면 동냥하면 된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취재 일정 중 가장 호화로웠던 식사. 구호시설 근처를 서성거리면 누군가 반드시 먹을 것을 내어주었다. 김서영 기자

취재 일정 중 가장 호화로웠던 식사. 구호시설 근처를 서성거리면 누군가 반드시 먹을 것을 내어주었다. 김서영 기자

문재원 = 아다나는 지진 피해가 안타키아보다는 덜해서 자고 먹을 곳이 있었다. 전 세계 취재진과 구조대원이 다 여기 몰려 있었다. 주유 등을 여기서 해결하고 출발하는데, 안타키아까지 4시간이 걸린다. 말하자면 거의 매일 서울과 포항을 왕복한 셈이다.

길이 다 망가지고 끊겨있는 데다, 구조 작업에 따라 시시각각 경로가 바뀌기 때문에 안타키아에서는 걸어서 5분이면 갈 거리를 돌아돌아 40분을 가곤 했다. 이동시간이 엄청 길었다.

좁은 차량에 넷이 타고 움직였다. 이동 중에 쪽잠을 자기도, 현장에 차를 세우고 차박을 하기도 했다.

좁은 차량에 넷이 타고 움직였다. 이동 중에 쪽잠을 자기도, 현장에 차를 세우고 차박을 하기도 했다.

정치와 천재지변

자연재해는 정치와 무관한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게 보도를 통해 계속 조명되고 있다. 권위주의 정권은 지진이 예견되었음에도 제대로 조처하지 않았다. 현지 민심과 관련해서도 감지한 게 있는지.

김서영 = 지금 튀르키예는 3선 집권을 목표로 하는 권위주의 정부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구조다. 바닥 민심과 정권의 의중 간에 괴리가 상당하다.

새벽부터 물어물어 시신 매립 현장을 어렵게 찾아갔다. 경찰이 취재를 막았다. 외신 기자가 올만 한 장례식장이나 매장지에 대통령실까지 보고를 올리는 정보 요원들이 흩어져 있다고 했다.

경찰이 기자를 단속하는 와중에도 시민들은 우리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이거나 고맙다고 말했다. 정치가 눈가림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을 텐데, 이 정도로 사상자가 발생하는 재난에서 보도를 통제하려 한들 성공할 수 있을까.

문재원 = 카메라를 들면 눈에 잘 띈다. 경찰이 와서 팔을 붙잡고 끌고 나갈 때까지 누가 다가오는줄도 몰랐다. 선배(김서영 기자)와 통역사분께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십 분을 실랑이했는데 결국 밀려났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8일째인 13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카라만라슈의 남쪽 교외의 한 공터에 마련된 지진 희생자 매장지에서 한 유족이 나무 묘비에 비닐을 씌우고 있다. 카라만마라슈(튀르키예)|문재원 기자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8일째인 13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카라만라슈의 남쪽 교외의 한 공터에 마련된 지진 희생자 매장지에서 한 유족이 나무 묘비에 비닐을 씌우고 있다. 카라만마라슈(튀르키예)|문재원 기자

김서영 = 구류될 수 있다고, 자기들이 제공한 사진만 쓰라고 했다. 더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찍은 사진이라도 지켜야 했다. 메모리카드마저 빼가려 할까 봐 걱정이 됐다.

이때가 딱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율이 지진 대응 문제로 떨어졌다는 기사가 나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다. 자국 언론은 어느 정도 통제가 되니 민감한 현장을 찾아와 외신까지 막는 듯 했다. 튀르키예 외교부에서 발급한 프레스카드를 보여줘도 소용이 없었다. 여러 가족 얘기를 듣지 못한 게 아쉽다.

튀르키예 사람들도 정부를 믿지 않는 것 같았다. 공식적 정보도 의심한다. 그러다 보니 유언비어가 오히려 잘 먹히는 상황도 있었다.

안타키아 구조 현장에서 차박을 하던 밤에 갑자기 사람들이 차를 빼서 후진하기 시작했다. 운전기사 말이, 지금 댐이 무너졌으니 모두 대피해야한다는 얘기가 돈다고 했다.

문재원 = 운전기사가 엄청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우리는 여진 걱정만 하고 있었는데 계속 빨리 도망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판단은 달랐다. 우리나라 구조대, 총영사관 직원들, 튀르키예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너무 평온했다. 나가서 둘러보니 모두 자고 있는 것이었다. 설득해도 운전기사가 믿지 않고 너무 불안해해서, 그를 달래는 데 애를 먹었다. 이 자리를 어떻게 맡았는데!

한참 후에 확성기를 단 차가 돌아다니면서 지금 돌아다니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안내 방송을 하면서 소란이 진정되었다.

혼란한 현장에서 약탈이 계속된다는 보도를 보고 두 분의 안위를 걱정했다.

김서영 = 이 부분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약탈 등 치안 혼란 상황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저희가 체감한 것보다 국내에서 훨씬 크게 느끼신 것 같다.

튀르키예에 시리아 난민이 많이 산다. 국경을 맞대고 있으니까. 지난해 여행으로 갔을 때도 사막 지역에 텐트를 치고 트럭을 몰며 사는 시리아 난민을 많이 보았다.

이 사람들이 혼란을 틈타 강도와 약탈을 한다는 얘기가 돌았고 일부 외신에 보도되기도 했는데, 빗대자면 관동대지진(간토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소문이 돈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본다. 어느 나라든 난민을 받았다고 감정이 다 우호적인 건 아니니까.

우리가 머물던 지역에서 자잘한 소요사태가 벌어진 적도 있다. 하지만 치안이 걱정된 적은 없었다. 거의 계엄 상황이라 무장한 군인이 항상 돌아다녔고, 여성인 저도 밤이든 낮이든 안전을 크게 걱정 않고 돌아다니며 취재했다. 밤마다 손전등과 최소한의 장비만 챙겨서 답사를 다니곤 했으니까.

서로의 신이 된 사람들

참사의 현장에서 ‘사람들이 서로의 신이 되어주고 있다’고 썼다. 많은 분이 그 문장이 뭉클했다고 전해왔다.

김서영 = 저는 이번 취재에서 가장 크게 놀란 것이... 말 그대로 집도 절도 없는 사람들이 자꾸 저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쥐여준다는 것이었다. 수첩 든 손 사이로 케밥을 쥐여주고, 커피랑 음료수를 담은 종이컵이 한번에 서너 개씩 들이밀어지고.

안타키아에서 문재원 기자가 어린이들의 요청으로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안타키아 | 김서영 기자

안타키아에서 문재원 기자가 어린이들의 요청으로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안타키아 | 김서영 기자

자기들끼리도 항상 돕고 있었다. 내 집이 무너진 게 아닌데도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음식을 해다 나르고. 좀비물이나 아포칼립스물 같은 걸 보면 극한의 재난 상황에서 인간의 악한 본성, 생존 본능이 드러나는 설정이 흔하지 않나. 실제는 반대일 수 있지 않을까, 그 가능성을 본 것 같다.

우리가 선한 신을 믿는다면, 왜 세상은 이렇게 고통에 차 있는가. 선하다는 신은 왜 인간을 이렇게 괴롭게 놔두는가. 저는 이번 지진 피해 지역을 보면서 이 의문이 계속 떠올랐다. 이웃과 가족 간에 생사가 갈리는 걸 보면 신이 어디서 뭘 하고있는 건지 궁금할 수밖에 없잖나.

그런 상태에서 눈앞에서 서로 돕는 사람들을 보니 이 사람들이 서로에게 신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썼다. 다른 분들이 어떻게 보셨을지 모르겠다.

문재원 = 같은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서 공감한다. 사람들이 파묻힌 곳에선 일단 굴착기로 작업을 시작한다. 알 수 없지만 그 아래에 생존자가 있을 수 있다.

이 사람의 생사를 누가 정하는 걸까. 현장을 보고 있으면 그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손길로 생존자가 빛을 보기 시작할 때, 이 사람에겐 자신을 구해주는 그 손길이 신과 같은 존재 아닐까. 생존자들은 서로가 서로의 신이 되는 게 맞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런 큰 재난은 국경을 넘어 함께 극복할 수 있을까.

김서영 = 튀르키예 혼자서는 극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규모였다. 튀르키예가 이렇다면 시리아는 어떨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자연재해는 전쟁과 다르니 국가 간 이해관계를 떠나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시리아는 제대로 외교 관계를 수립한 국가가 거의 없어서 관심과 지원에서 완전히 소외되고 있다.

당장 저희만 해도 시리아엔 취재를 못 가고 튀르키예만 갔다 왔다. 재난에 대한 지원도 결국 기존에 세계가 분열된 틈을 어느정도 따라가는 것 같다.

기자라서 다행이다

취재를 거절당하거나 윤리적으로 고민되는 순간도 있었는지.

문재원 = 오열하는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다. 시신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진을 찍지 않으면 제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사람을 살려주지도 못하고 음식을 갖다 주지도 못하는데 이것조차 안 한다면.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거부 의사가 분명하면 바로 카메라를 내렸다.

튀르키예 강진 5일차인 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안타키아에서 구조 및 철거 작업을 하고 있다. 안타키아(튀르키예)|문재원 기자

튀르키예 강진 5일차인 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안타키아에서 구조 및 철거 작업을 하고 있다. 안타키아(튀르키예)|문재원 기자

김서영 = 비행기에서부터 단단하게 마음의 각오를 했다. 거절을 많이 당할 거라고 생각해서. 참사 현장에 가면 백 번 두드려 두세 번 성공하는 게 유가족 인터뷰 아닌가. 마음의 벽을 많이 세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으니, 내처지고 거절당할 각오를 많이 하고 갔다.

이재민분들은 좀 달랐다. 취재진을 우호적으로 맞았다. 먼저 인사를 건네주기도 하고, 심지어 먼저 웃어주기도 했다. 그 관대함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자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구나.’ 부상을 각오하고 가야하는 험한 곳일지라도 그런 현장에 가야 한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이번 취재로 제 직업을 좀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문재원 = 다녀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기자를 꿈꿀 때 했던 생각들을 환기해주는 현장이었다.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그 고통을 더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모금이라도 한 푼 더 되었으면 좋겠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6일째인 11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의 안타키아 지진 피해지역의 붕괴된 주택에 가족사진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놓여 있다. 안타키아(튀르키예)|문재원 기자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6일째인 11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하타이주의 안타키아 지진 피해지역의 붕괴된 주택에 가족사진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놓여 있다. 안타키아(튀르키예)|문재원 기자

뭐든 돕고 싶은 시민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김서영 = 현장에 나온 구호단체 분들에게 물어보니 물자보다는 돈이 낫다고 한다. 튀르키예 대사관도 모금을 계속하고 있고, 국제 구호단체도 여러 곳이 모금을 진행 중이니 기관 중에 신뢰할 만 한 곳을 스스로 판단해서 기부하시면 좋겠다.

이런경향 <시사 소믈리에>에 출연한 김서영·문재원 기자


[점선면] 튀르키예 참사 취재...“슬픔과 환대, 긴장 속의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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