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왜 엄마의 몫인가

이영경 기자
[맘고리즘을 넘어서]육아는 왜 엄마의 몫인가

저는 경기도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행정자치부가 공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에 따르면 경기도의 232만164명 ‘가임기 여성’ 중 한 명입니다. 정부에서는 아마 저를 경기도 자궁 232만100호 정도쯤으로 여길지도 모르겠군요. 저를 ‘걸어다니는 자궁’ 취급하는 정부지만,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하나 낳았으니 저도 정부에 아주 할 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아니, 사실은 아주 할 말이 많습니다.

대다수의 가임기 여성들은 남자와 똑같이 교육받고, 일하고,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고 자랐습니다. 크고 작은 현실의 벽과 폭력을 마주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엄마’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더군요. 특히 ‘한국 엄마’로 살아가는 것은 말입니다.

아직 몸이 성치 않던 산후조리원 시절부터 남편은 직장으로 사라졌습니다. 다행히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지만, 부모가 함께하는 육아를 꿈꿨던 이상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달리기 경주 출발선에서 총성이 울렸는데, 아이를 안고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함께 달리는 줄 알았던 남편은 야근에 회식·주말근무·눈치보기 등 각종 장애물에 걸려 저 뒤에서 헉헉대고 있었습니다. 복직을 하니 문제는 더 복잡해졌습니다. 이제는 어머니와 번갈아 아이를 안으며 곡예 같은 달리기를 하고 있군요.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눈치와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등시민’으로 전락한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습니다.

합계출산율 1.24명. 지난해 신혼부부 5명 중 1명은 아이를 낳지 않았고, 그중 맞벌이(0.72명)는 외벌이 부부(0.9명)보다 아이를 덜 낳았습니다. 맞벌이 가구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40분,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증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5.6%로 턱없이 낮지요. 가임기 여성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윽박지른다고 출산율이 높아질까요. 취업난과 치솟는 집값에 젊은 세대는 결혼하지 않고, 육아가 여성에게 전담된 현실에서 ‘일하는 엄마’들은 둘째를 낳을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한국 엄마들은 ‘워킹맘’ ‘전업맘’ ‘경단녀’로 이름만 바꿔가며 저평가 무보수의 ‘육아노동’을 수행합니다. 믿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할머니들은 다시 육아전선에 동원됩니다.

경향신문은 육아와 돌봄을 여성(mom)에게 전가함으로써 돌아가는 한국 사회의 작동방식(algorithm)을 ‘맘고리즘(momgorithm)’으로 명명했습니다. 부모가 함께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사회,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을 국가가 마련해주는 사회를 꿈꾸고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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