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법 위반 한승헌 변호사, 43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 선고

이혜리 기자

일명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된 김규남 의원을 옹호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구속되고 유죄 판결까지 받았던 한승헌 변호사가 43년만에 재심에서 다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 변호사는 “권력자에 의한 사법농단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재판장 이헌숙 부장판사)는 1975년 한 변호사가 반공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한 변호사는 1972년 중앙정보부의 공안조작 사건 중 하나인 유럽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김규남 의원이 사형됐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잡지에 <어떤 조사>라는 글을 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한 변호사는 <어떤 조사>에서 사형 집행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쓴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검찰은 한 변호사가 김 의원을 옹호해 북한의 선전활동에 동조하고 고무 찬양해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했다며 기소했다.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지난 2015년 대법원이 김 의원에 대해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함에 따라 한 변호사도 재심을 신청했다.

재심 재판부는 한 변호사에 대한 조사가 위법하게 이뤄져 진술조서 등을 유죄의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검찰이 한 변호사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연행해 3일간 불법 구금한 상태에서 조사를 했고,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가혹행위도 했다는 것이다.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도 보장되지 않았다. 형사소송법 309조는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으로 이뤄진 것이면 유죄의 증거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재판부는 <어떤 조사>를 살펴보더라도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을 위반해 사형을 당한 사람을 애도한다는 내용은 없고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는 주장도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증거능력이 없는 증거를 제외하고 봤을 때 이 사건 수필이 반국가단체에 이익이 된다고 보기 어렵고, 한 변호사가 수필을 쓰면서 반국가단체에 이익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선고 이후 기자들과 만나 “기쁨보다는 착잡함이 더 크다”며 “아직도 저처럼 정치탄압의 대상으로 억울하게 옥고를 치른 분들이 많은데 앞으로 어떤 독재 권력도 자기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의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한 변호사는 자신에 유죄 판결을 내렸던 사법부에 대해서는 “권력자에 의한 사법농단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요즘 사법개혁에 대한 이야기가 안팎에서 많은데 국민들에 떳떳한 사법부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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