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강민구 부장판사 “장충기 사장에게 인사청탁 할 이유 없었다”

류인하 기자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 / 경향DB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 / 경향DB

강민구라는 이름 석 자가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은 것은 일명 ‘장충기 문자’가 공개된 직후였다.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지난 4월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60·사법연수원 14기)가 부산지법원장으로 재직하던 2015년 8월부터 2016년 7월 사이 당시 대외협력업무 최고책임자였던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13건을 폭로했다. 법원장을 역임하고, 대법관 후보에도 올랐던 현직 고법 부장판사가 삼성 고위간부에게 사적인 연락을 취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관련기사들이 연이어 보도됐다. 그러나 강 부장판사는 지난 6개월간 침묵했다. 평소 활발하게 하던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도 끊었다.

그가 얼마 전 또다시 조명을 받았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벌인 SNS 설전(舌戰) 때문이었다. 강 부장판사는 지난 10월 법원 내부전산망인 코트넷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검찰의 밤샘조사 ‘관행’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조국 민정수석으로부터 공개비난을 받았다. 조국 수석은 페이스북에 “법관은 재판 시 독립을 보장받아야 하지만, 그 외 스스로 행한 문제 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예컨대 재벌 최고위 인사에게 문자 보내기, 사법농단 수사에 대한 조직 옹위형 비판 등”이라고 썼다. 노골적으로 강 부장판사를 지목한 글이었다. 이 설전은 강 부장판사가 코트넷에 “더 이상 권한과 지위를 남용해 법관을 치사한 방법으로 겁박하지 말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강민구 부장판사는 법원 내에서 정치적 인물로 분류되는 판사는 아니다. 오히려 ‘IT괴짜’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사법부의 송무시스템을 비롯한 사법정보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대법원 사법정보화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주간경향>은 21일 서울 서초동 법원 내 사무실을 찾았다. 그의 집무실에는 4대의 컴퓨터가 설치돼 있다. 언제든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도록 세팅된 카메라도 눈에 띄었다. 강 부장판사는 이날도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었다. 정년퇴임을 얼마 남기지 않은 고령의 법관이지만 IT기술에 관한 설명을 할 때면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사전동의 없이 진행됐다. 강 부장판사는 대화의 대부분을 휴대전화 앱을 이용한 각종 활용법을 설명하는 데에 할애했다.

-장충기 문자 건은 묻지 않고 넘어가기가 어렵다.

“장충기 건은 내가 문자를 보낸 건 사실이고, 법원장급이나 되는 인사가 그런 사람(대기업 고위간부)을 알고 지내도 되는 거냐고 비판한다면 할 말은 없다. 6남매 중 막냇동생이 한양대 전자과를 나와 1984년도에 삼성전자에 들어갔다. 이후 35년째 근무하며 내가 장충기를 알기 훨씬 전인 10년 전에 이미 임원으로 승진했다. 그런데 동생이 5년 전부터 인도지사 법인장으로 근무하면서 윗사람과 갈등이 좀 있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힘들어했다. 그만두겠다고 했다. ‘네가 잘 견뎌내야지’라고 했지만 그래도 형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해서 장충기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답문도 ‘사장이 동생분에 대한 평가가 좋으니 (동생이) 참고 잘 지내면 될 것 같다’고 왔다. 동생 일이라 ‘고마운 마음 깊이 새기고 잊지 않겠다’는 과한 표현을 썼다. 사람들은 도대체 뭘 얼마나 혜택을 받아서 ‘마음에 깊이 새긴다’는 표현을 썼냐고 하지만 나는 인사청탁을 한 적이 전혀 없고, 향응·접대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있었으면 당장 징계받고, 사표를 써야지.”

전국공무원 노동조합 법원본부는 지난 4월 일명 ‘장충기 문자’로 논란을 일으킨 강 부장판사에 대한 대법원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법원노조는 “삼성 수뇌부에 인사청탁을 암시하는 등의 문자를 보내고, 광고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등 법관으로서 부적절한 소행을 한 강민구 부장판사를 철저히 조사할 것을 요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본인을 ‘삼성 홍보대사’라고 표현했다.

“그게 2015년일 거다. 내가 그때 갤럭시 노트5를 처음으로 사서 강의를 하는데 빔프로젝터랑 미러링을 했다. 노트북이 아닌 스마트폰으로 빔프로젝터에 현출시키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에 너무 흥분했다. 그때 삼성이 처음으로 그 기술을 탑재했다. 이런 기능을 내가 강연을 하며 최초로 썼다는 사실이 너무 기분 좋았다. 그래서 ‘남들이 보면 나를 삼성의 홍보대사라고 할까봐 겁이 날 정도였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그 문자가 마치 내가 기업에 아부나 하는 사람처럼 해석되고 있었다. 삼성페이(PAY) 문자도 갤노트5에 삼성페이 기능이 탑재돼 앞으로는 지갑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길래 이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고 결제를 해보려니 막상 결제가 안 됐다. 단말기 설치가 안된 것이었다. 소비자에게 이런 기능을 쓰라고 홍보를 했으면서 실제 현장에서는 활용하기 어려운 점을 문자로 보낸 것이다.”

강민구 부장판사는 유튜브에 공식 채널을 갖고 있는 유튜버다. 각종 IT기술을 시연하는 장면을 직접 촬영해 업로드한다. 사법부 내에서 유일하다. 스마트폰은 새로운 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구입해 한 기종을 2년 이상 사용하는 경우가 없다. 그는 “며칠 전에 또 새로 구입했다”고 말했다.

-IT영역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너무 괴짜스러운 면이 있다.

“별난 놈이라고 하겠지. 남들이 볼 때는 오지랖도 너무 넓고 판사가 재판만 안 하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욕하겠지. 하지만 내가 맡은 사건은 미루는 일 없이 항상 처리해 왔다. 법원 내에서 사건 처리건수나 조정·합의건수로 보면 알 수 있다. 통계가 말해주지 않나.”

-애초에 장충기 사장을 어떻게 알았던 건가.

“고향 선배가 연말모임에 한 번 나오라고 해서 나간 적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있는 자리였는데 그 자리에서 명함 교환을 했다. 이후 1년에 한 번 정도 여러 명이 모일 때 인사하는 ‘느슨한 지인’으로 알고 지냈다. 27년간 수만 건의 재판을 했지만 삼성화재보험 교통사고 사건을 제외하고 나는 민·형사사건 다 합쳐 삼성과 관련된 사건을 맡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번 임우재·이부진 이혼소송이 삼성 관련 건으로는 처음인 건가.

“그렇지. 그런데 맡았다고 할 수도 없다. 1심 선고가 내려지고, 항소장이 우리 재판부에 들어오자마자 기피신청이 들어왔다. 처음 사건이 우리 부에 왔을 때 재배당을 해야 하지 않냐는 논의를 먼저 했었는데 배석판사들이 반대했다. 그렇게 하면 진짜 삼성 장학생으로 낙인 찍힌다고 했다. 그 말도 옳은 것 같아서 판단을 받아보자고 했는데 고법 가사2부에서 임우재씨의 기피신청을 기각했다. 그래서 지금 대법원에 기피신청이 가 있는데 대법원이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

-계속 기다려야 하는 건가.

“그건 내가 알 도리가 없지. 창원·부산지법원장 등 기관장을 4년간 맡는 바람에 6개월간 사법연구로 가야 하는 것을 못 갔다. 대법원은 매일이 어수선한데 내 개인적인 요구를 들어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법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내가 결정을 해보려고 한다.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을 해야 하지 않겠나.”

-최근 조국 수석과 SNS 논쟁도 벌였다.

“모든 건 내가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조국 민정수석도 내 개인을 미워한다기보다는 혹시 법관들이 그런 비판적인 의견을 자꾸 내면 영장이 기각되거나 수사동력이 떨어질까봐 걱정한 게 아닌가 싶다. 조 수석이 나를 미워할 이유는 없다. 나보다 서울대 법대 5년 후배이고, 우리 딸도 조 수석한테 배웠다. 물론 개인적인 인연은 없다. 나는 해프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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