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 지자체, 청년을 잡아라

최고의 당근은 현금보다 일자리…‘지속 가능한 삶터’에 사활

박태우·권기정·배명재·백승목 기자
경북 문경 산양면 불암리의 편집숍 ‘산양’에서 배다희씨가 부산에서 문경으로 오게 된 얘기를 하며 미소 짓고 있다.  백경열 기자

경북 문경 산양면 불암리의 편집숍 ‘산양’에서 배다희씨가 부산에서 문경으로 오게 된 얘기를 하며 미소 짓고 있다. 백경열 기자

‘10만명을 회복하라.’ 1980년까지 20만명에 육박하던 경북 상주시 인구가 지난 2월 들어 1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40년간 매년 2500여명씩 감소한 셈이다. 상주시는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진 충격 속에 비상이 걸렸다. 직원들은 ‘성찰과 다짐’ 차원에서 2월21일 검정 넥타이를 매고 출근했다. 충격을 받은 상주시는 10만명 회복을 외치며 인구 늘리기에 총력전을 펼쳤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9만9000여명 선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구절벽에 직면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인구 늘리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여전히 출산·육아·전입 지원금 등 현금 퍼주기와 지자체 간 ‘인구 빼가기’ 출혈경쟁 구태가 반복되고 있지만, 최근엔 점차 청년 일자리 창출 등으로 정책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일회성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부호가 붙으면서다. 바뀌는 정책 추세에 청년들도 점차 호응하고 있다.

■ 퍼주기에서 일자리 창출로

전남도는 외지 청년을 끌어들이기 위해 올 하반기부터 순천·화순 등 5개 시·군에 ‘청년행복캠프 30일’을 시범 시행한다. 전남 거주를 희망하는 청년 160명을 모집해 실제 농촌생활을 체험토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현지 청년들과 외지 청년들을 짝지어주고 정착 확정자에겐 귀농에 따른 다채로운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또 청년창업농 258명에게 최장 3년간 최대 월 100만원씩 지원하고 경영자금도 3억원까지 융자해준다.

전북도도 올 하반기부터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청년수당을 시범적으로 도입한다. 농업·중소기업체 등에 종사하는 저소득층 청년들에게 연간 360만원을 신용카드와 연계한 포인트 형식으로 지급한다.

인구 10만 무너진 상주시, 검정 넥타이 매고 비상근무
전북도는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청년수당’ 시범 도입
대구시 청년 귀환프로젝트 예정 등 대도시도 예외 아냐

대도시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사망자(2만2600명)가 출생자(1만9100명)를 앞지르는 ‘데드크로스’에 진입한 부산시는 대학생활에서부터 취업준비 및 창업, 주거안정에 이르기까지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시책을 쏟아내고 있다. 취업준비 단계에서부터 일자리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소통공간을 시내 곳곳에 마련했고, 대학과 지역 강소기업이 채용협약을 맺고 기업이 요구하는 훈련을 거쳐 취업으로 연계하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도심과 떨어진 산업단지에 취업한 청년들을 위해 전기차 임대를 지원하는 사업을 펼치는가 하면, 해운대구 좌동에 100호 규모의 창업자를 위한 15층짜리 창업지원주택이 내년 상반기에 들어설 예정이다.

[‘인구절벽’ 지자체, 청년을 잡아라]최고의 당근은 현금보다 일자리…‘지속 가능한 삶터’에 사활

조선업 불황으로 젊은층이 빠져나가는 울산시도 다양한 청년 유인책을 꺼내들었다. 지난해 도입한 ‘울산청년 일+행복 카드 지원사업’은 중소기업에 입사해 3개월 이상 근무(기준 중위소득 150% 이하)하고 있는 520명을 대상으로 100만원의 복지포인트를 제공한다. ‘청년이 만드는 우리 울산 프로젝트’는 2017년 1월 이후 관내 중소기업에 취업했거나, 창업 후 전입한 300명(기준 중위소득 150% 이하)에게 100만원의 주거비를 지원한다.

대전시는 청년 취·창업 지원을 위해 2021년까지 스타트업 2000개를 육성해 일자리 1만개를 창출할 예정이다. 지난해 20대 6000여명이 외지로 빠져나간 대구시는 내년부터 ‘청년귀환 프로젝트’를 펼친다. 대구를 떠난 청년들에게 지역의 정주여건, 맞춤형 일자리 정보 등을 제공해 유턴을 유도할 방침이다.

김요한 대구시 청년정책과장은 “20대에는 교육, 일자리 등 때문에 수도권으로 떠났지만 30대에는 높은 생활비와 주거·교통난 등으로 지방으로 다시 돌아오려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차별화된 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구시가 2016년 지역 청년(19~39세) 900명을 무작위로 설문조사한 결과, 20대에 외지로 나간 198명이 30대에 귀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연구위원은 “청년들을 정착시키려면 지역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실질적인 컨설팅 등이 뒤따라야 한다”면서 “정주여건 개선 차원에서 들어서는 각종 시설도 청년들의 요구 수준과 맞닿을 수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인구 빼가기’ ‘먹튀 논란’ 여전

인구 유치전 과열에 실적 압박 공무원이 위장전입하고
출산장려금 등 현금 챙기고 도시로 떠나는 먹튀 사례도
“정부·지자체가 손잡고 일회성 넘는 아이디어를 내야”

지자체 간 인구 유치전이 과열되면서 볼썽사나운 장면도 불거지고 있다. 전남 광양시는 2016년부터 공무원을 동원하면서 ‘위장전입 논란’과 함께 이웃 순천시와 갈등을 빚고 있다. 광양시가 12월까지 ‘전입실적’을 직원 인사에 반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광양시에서는 지난해 말 전입인구의 78%가 올 1월에 빠져나갔다. 매년 반복되는 ‘기현상’이다. 광양시 인구는 인근 순천 인구 유입 등으로 지난해 12월 말 15만8168명에 달했다. 하지만 한 달 뒤인 올 1월 말에는 15만5474명으로 2694명이 감소했다. 주소지만 옮기는 위장전입으로 인구수를 일시적으로 늘린 뒤 유치기간이 지나면 되돌아가는 것이다.

출산장려금만 챙긴 뒤 도시로 떠나는 ‘먹튀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전남 해남군은 2012년부터 첫째 아이 300만원, 둘째 350만원, 셋째 600만원, 넷째 이상 72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파격적인 출산지원금에 힘입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5069명이 태어났다. 그러나 지난해 현재 6세 이하 어린이는 3337명으로 집계됐다. 출산장려금을 노린 세대가 일시적으로 머문 뒤 외지로 대거 빠져나간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충북 제천시는 지난 4일 다자녀 가정에 상수도 요금을 20% 감면해주는 ‘수도급수 조례 시행규칙안’을 입법예고했다. 소멸위험지역 1위와 3위에 각각 오른 경북 의성군과 군위군은 대구 통합(민간·군사)공항 유치전을 치열하게 펼치고 있다. 통합공항을 유치하면 최소 1만2000명 이상의 인구유입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만 공주대 교수(행정학과)는 “지자체들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으로 인구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어 실효성이 낮은 단기유인책에 급급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국토균형발전 정책과 함께 지자체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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