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숨의 기록

(상)배냇저고리 한 번 못 입고…왜 아기들은 죽어갔을까

조문희·김희진·탁지영·조해람·오경민 기자

‘성명불상’ 위패만 남기고…

■아동학대 사망 3명 중 2명이 영아…이름도 없이, 아무 말도 못한 죽음

20일마다 한 명씩 아기들이 학대로 죽는다. 한강 둔치, 등산로, 학교 옆 풀숲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아파트 화단, 헌옷 수거함, 화장실 변기에 차가운 몸으로 누워 있다. 비닐봉지, 종이상자, 사탕 깡통 속에 물건처럼 포장돼 숨이 멎는다. 집 안 장롱, 여행용 가방, 베란다에서도 아기는 죽는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올해 들어서도 최소 8명의 영아가 세상을 떠났다. 영아는 통상 생후 24개월 미만 젖먹이를 지칭하는 용어다. 옹알이와 울음뿐 말도 배우지 못한 나이다. 일부는 이름조차 갖지 못했다.

영아들이 학대로 가장 많이 죽는다. 2018년 전체 아동학대 사망자 28명 중 영아가 18명으로 64.3%에 달한다.

영아들은 죽어서 버려지거나 버려져 죽는다. 때로는 부모의 경제적 어려움이, 때로는 미성년자, 비혼 부모를 향한 차별적 시선이 영아의 죽음에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 그들을 죽일 의도가 없어도, 방치돼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보육교사, 위탁모, 부모의 지인도 영아를 숨지게 한다.

학대로 가장 많이 숨지는 취약 집단이지만 영아학대 사망은 그간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공식 통계는 학대로 사망한 영아의 전체 규모를 담아내지 못한다. 말을 하지 못하고, 외출하는 경우가 적어 사전에 학대 정황을 발견하기도 어렵다. 숨진 채 발견돼도 학대가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일부는 유족을 찾지 못해 무연고 장례를 치른다.

경향신문은 ‘세계 아동학대 예방의날’ 20주년을 맞아 영아학대 사망에 주목했다. 언론보도와 판결문을 분석해 학대로 숨진 영아의 통계를 추출했다. 무연고 사망한 영아의 목록을 처음으로 입수했다. 영아의 숨을 앗아간 학대의 유형을 들여다봤다. 이들이 학대당하며 말 대신 터뜨린 울음에 사회가 응답하지 못한 이유를 살펴봤다.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 활동가와 자원봉사자들이 지난 13일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무연고 0세 남아 시신이 담긴 관을 운구하고 있다. 성인 관의 반쯤 되는 작은 관 위에 흰 천을 둘렀고 빈 유골함과 배냇저고리, 양말을 올려뒀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 활동가와 자원봉사자들이 지난 13일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무연고 0세 남아 시신이 담긴 관을 운구하고 있다. 성인 관의 반쯤 되는 작은 관 위에 흰 천을 둘렀고 빈 유골함과 배냇저고리, 양말을 올려뒀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비닐에 싸여 땅에 묻힌 채로
지난 6월2일 발견된 아기 시신

‘성명불상’ 위패 앞에 바나나 우유가 놓였다. 영정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근조’ 액자가 있었다. 지난 13일 오전 11시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이름이 없는 만 0세 남아의 장례가 치러졌다. 아기의 마지막 길엔 가족 아닌 사람들이 함께했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치르는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 활동가들,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기자였다.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가 고인을 짧게 소개했다. 단 세 문장이었다. “성명불상의 아기는 남자 아기 시신이었습니다. 지난 6월2일 오전 8시쯤 서울 성북구 정릉동 한 초등학교 뒤편 등산로를 지나던 등산객에게 사망한 채 발견됐습니다. 사인은 알 수 없고 연고자가 없어서 무연고자가 됐습니다.” 그마저도 죽음 이후의 기록이었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떤 성격이었는지,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했는지…. 생에 대한 이야기는 한 줄도 없었다.

■죽어서도 이름이 없었다

CCTV 없어 용의자 추적 난항
수사 두 달여 지나 ‘무연고’ 장례

무연고 장례를 치르는 영아들
친부모 몰라 학대 신고 포함 안 돼

아기의 관은 남녀 어른 두 명이 거뜬히 들 정도로 가벼웠다. 성인 관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였다. 13일 승화원에서 만난 의전업체 ‘해피엔딩’ 관계자는 “아기는 성인 남성 손으로 두 뼘 정도 크기였다”며 “부패가 심해 눈과 코도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시신은 염한 뒤 천과 한지로 고이 감쌌다. 관 위에는 상아색 배냇저고리와 파란색 줄무늬 아기 양말 한 켤레가 놓였다. 임정 나눔과나눔 장례지도사는 “배냇저고리도 입어보지 못하고 죽은 아기를 위해 샀다”고 말했다. 관이 화장터로 향하는 내내 대한불교조계종 염불자원봉사단원들이 국화 한 송이씩 들고 노래 ‘나무아미타불’을 불렀다.

아기의 죽음은 지난 6월17일 언론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지난 6월4일 등산객의 신고를 받고 시신을 찾았다. 당시 아기는 비닐에 싸인 채 땅에 묻혀있었다. 시신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을 거쳐 서울 강북구 한 장례식장에 안치됐다.

경찰은 아이가 발견된 곳 주변에 폐쇄회로(CC)TV가 없어 용의자 추적에 난항을 겪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아이 출생신고도 안 돼 있어 (DNA 조사로도) 신원 확인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사에 착수한 지 두 달여가 지나며 부패가 심해지자 아기는 ‘무연고자’로 처리돼 장례를 치르게 됐다.

이날 ‘보통의’ 장례도 수없이 열렸다. 상복을 입은 유가족들과 검은색 옷을 입은 조문객들이 화장터 입구에 빽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유족들은 영정과 이름이 적힌 위패를 들고 운구를 기다렸다. ‘성명불상’ 위패를 들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시선이 쏠렸다. “왜 성명불상인 거예요?” 기자에게 묻는 시민도 있었다.

나눔과나눔은 승화원 2층 서울시 공영장례 전용 빈소 ‘그리다’에서 거의 매일 두어명의 무연고 장례를 치른다. 이곳은 2018년 무연고 사망자와 저소득층을 위해 마련됐다. 50~60대 초반이 대부분이다. 만 0~1세 영아 무연고 장례는 드물다.

무연고 영아 장례는 올 들어 세 번째다. ‘이름조차 없는’ 영아의 장례는 올해 처음이다. 친부모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민석 나눔과나눔 활동가는 “구청으로부터 오는 공문에 보통 신생아들은 ‘성명불상’으로 나온다. 하지만 저희가 산모를 아는 경우는 ‘혹시 아기 이름으로 생각해두셨던 게 있는지’ 물어 위패에만은 이름을 적는다”고 말했다.

■한 줌 재, 무연고 추모의집으로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2층에 마련된 서울시 공영장례 전용 빈소에 무연고 0세 남아의 ‘성명(불상)’ 위패가 모셔져 있다. 술 대신 바나나우유가 놓여있다. 오경민 기자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2층에 마련된 서울시 공영장례 전용 빈소에 무연고 0세 남아의 ‘성명(불상)’ 위패가 모셔져 있다. 술 대신 바나나우유가 놓여있다. 오경민 기자

영정 없이 한 줌 유골 담긴 목함
5년간 ‘무연고 추모의집’ 봉안

관이 화로에 들어간 지 한 시간 남짓 흐르자 “냉각 중”이라는 안내가 나왔다. 화장이 완료됐다는 뜻이다. 23번 화로 앞으로 가니 유골이 나왔다. 화로에서 꺼낸 통에서 뼛조각과 가루가 빗자루질 두 번 만에 쓸려나왔다. 손가락만 한 뼈가 두어 개 남짓 보일 정도였다. 함께 수골 작업을 지켜보던 김 활동가는 “유골 양이 거의 없는 걸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분골 기계를 거쳐 가루가 된 유골은 겨우 한 줌이었다.

승화원 직원이 유골 가루를 한지로 싸서 노란색 ‘천년포’ 주머니에 넣고 목함에 담았다. 흰 보자기로 목함을 감싸는 내내 덜컹거렸다. 만져도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김 활동가는 “원래 갓 분골을 마친 뒤 나온 목함을 만지면 따뜻하다. 아기는 유골 양이 없어서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해가 담긴 목함은 경기 파주시 용미리 제1묘지 100구역에 있는 ‘무연고 추모의집’에 봉안됐다. ‘2020년 캐비닛’ 맨 위쪽 줄에 안치됐다. 이곳에서 앞으로 5년 동안 봉안된다. 혹시나 연고자가 나타날 것에 대비한 것이다.

추모의집은 다른 납골당과 달리 창고 형태로 돼 있다. 시간을 내서 추모하거나 애도를 하는 장소가 아니다. 캐비닛에 유골함 외에 사진이나 편지, 꽃 등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추모의집은 1년에 한 번씩 합동 위령제를 지낼 때만 개방된다.

■사각지대의 무연고 사망 영아

출산 중에 숨진 뒤 버려졌는지
학대가 원인인지 분류 어렵기도

아기의 사망 원인은 ‘외력에 의한 머리 손상’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아이는) 정상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변사 사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아기가 죽은 채로 태어난 건 아니며 학대로 인해 사망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영아들이 매년 학대로 죽어가지만 그 죽음은 제대로 집계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매해 내놓는 ‘아동학대 주요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죽음도 있다. ‘무연고 사망 영아’가 대표적 사각지대다. 길이나 강 둔치 등에 버려진 영아는 학대로 사망해도 통계에 잡히기 어렵다. 숨진 뒤 버려졌는지, 유기·방임이 사망 원인인지 분류하기 힘들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무연고 영아 장례 시행 목록에 따르면 2016년부터 현재까지 총 13명의 무연고 장례가 치러졌다. 이들 중 8건은 시체 검안서 등을 볼 때 유기·방임 등 학대로 인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기관에 신고가 들어온 사례 외에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을 통보하거나 언론보도가 나온 사건은 학대 사례로 취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이 장례를 치른 8건 중 5건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장화정 아동권리보장원 아동보호본부장은 통화에서 “무연고 장례를 치르는 영아는 친부모를 모르기 때문에 학대 신고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출산 과정에서 숨진 건지, 학대로 숨진 건지 애매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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