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으로 ‘플렉스’하는 10대들…그 이면의 결핍, 어른들이 채워야

전현진 기자

청소년 도박 관련 법 제안한 정은혜양과 서민수 교수가 말하는 ‘청소년 도박’

지난 7일 서울 중구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서 만난 정은혜양(17·왼쪽)은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도박중독 예방교육을 규정하는 법률 제정안을 제안해 최근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청소년 문제 전문가인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교수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대책 마련을 고민하게 될 정도로 도박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지난 7일 서울 중구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서 만난 정은혜양(17·왼쪽)은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도박중독 예방교육을 규정하는 법률 제정안을 제안해 최근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청소년 문제 전문가인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교수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대책 마련을 고민하게 될 정도로 도박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학교 밖 청소년 도박 중독 예방교육과 지역사회의 연계 관련 법률 제정안.’ 지난 9월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서 진행한 ‘청소년 도박 추방 법·정책 제·개정 공모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정은혜양(17)이 제안한 법률이다.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서 입시 준비를 하는 자신의 상황에서 착안했다.

도박 중독 예방교육은 법으로 정한 의무는 아니다. 공교육 틀 안에서 지자체별로 예방교육에 대한 조례를 두고 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은 교육받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2018 청소년 도박 문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 밖 청소년은 76.6%(재학 중 청소년 69.9%)가 예방교육을 받지 않았다. 도박 문제 위험집단 비율도 학교 밖 청소년(21.0%)이 재학 중 청소년(6.4%)보다 높다.

정양은 직접 해본 적은 없다. 청소년 사이에 도박이 얼마나 흔한 주제인지는 잘 알았다. “페이스북에서 ‘얼마를 땄다’거나 ‘5만원 빌려주면 10만원으로 갚겠다’는 식의 친구들 글을 자주 봤어요. 다 도박 얘기예요.”

청소년 문제 전문가인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교수는 “청소년 사이에 퍼지는 도박 문화가 얼마나 심각하고 위험하기에 청소년 스스로 대안을 제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도박에 빠진) 청소년들을 범죄자로 보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도박을 대체할 만한 건전한 활동을 어떻게 제시할지도 고민해야 한다”고도 했다.

정양과 서 교수는 지난달 17일 제12회 도박중독추방의날 토크콘서트에 함께 참여했다. 지난 7일 오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청소년 문제 전문가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교수. 이상훈 선임기자

청소년 문제 전문가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교수. 이상훈 선임기자

‘도박 청소년’을 범죄자로 볼 게 아니라
대체할 만한 건전한 활동 제시해야

언뜻 보면 게임 같은 ‘토토’
내 아이도 혹시 의심되면
계좌번호·옷차림 살펴야

- 청소년들에게 도박이 하나의 문화가 된 것 같습니다.

정 = 학교나 아르바이트하는 데서 도박에 대해 아주 쉽게 이야기해요. 요즘은 코로나19 사태로 SNS를 이용할 시간이 많아졌는데, 페이스북 같은 곳에는 도박 사이트 광고가 엄청 많아요. 도박을 하기만 하면 몇 배로 쉽게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드는 것 같아요. 불법에다 가치관 때문에 하지 않는 청소년도 많긴 하죠. 다들 어떤 종류의 도박이 있고, 얼마나 많이 하는지는 잘 알아요.

서 = 청소년들이 지금 환경에서 돈에 대한 가치관을 건전하게 키워갈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광고를 안 보면 동영상 한 편도 볼 수 없습니다. ‘플렉스’(사치를 과시하는 행동) 같은 말이 유행하는데, 청소년도 많은 돈을 갖고 싶게 만들죠. 누군가 ‘300만원 땄다’ ‘700만원 땄다’고 하면 흔들리게 됩니다.

정 = 제가 도박을 하진 않지만, 도박하는 청소년들 심리는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하면 최저시급을 받죠. 명품 옷을 사 입으려면 아르바이트해서는 어려우니까 더 많은 돈을 더 쉽게 벌 수 있는 도박으로 사야겠다고 생각해요. 남자아이들이 주로 도박을 한다는데, 주변을 보면 여자아이들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서 = 1990년대 이전까지는 환각제에 빠진 청소년이 많았습니다. 환각제가 사라진 건 게임으로 대체돼서 그런 것 같아요. 쾌락과 성취감, 인정욕구를 충족할 수 있게 해주는 거니까요. 스마트폰과 SNS, 도박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들이 자아실현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게 그만큼 없다는 것이죠.

정 = 저는 중학교 때까지는 학교에서 소속감을 느꼈어요. 고등학교 들어가서 성적이 잘 안 나왔는데, 인정받지 못하고, 학교에서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를 나온 뒤에는 혼자 공부하지만 만족스럽게 지냅니다. 또래들이 SNS에 올리는 글을 보곤 해요. 다 좋고 행복한 것만 보여주려는 것 같아요. 그만큼 남들 눈치를 보고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러지 않으면 좋겠어요.

‘학교 밖 청소년 도박 중독 예방교육 관련 법안’ 제안한 정은혜양. 이상훈 선임기자

‘학교 밖 청소년 도박 중독 예방교육 관련 법안’ 제안한 정은혜양. 이상훈 선임기자

페북 등 SNS에 넘치는 도박 사이트 광고
학교나 알바하는 데서 아무렇지 않게 얘기

중요한 건 중독 예방교육
희망자 위주 지금 방식보다
효과적인 방법 찾아야

- 도박에 빠졌다는 사실을 주위에서 알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서 = 또래들끼리는 누가 도박을 하는지 다 알 수 있죠. 문제는 부모님이나 주위 어른들이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녀라도 스마트폰을 빼앗아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스마트폰은 가장 사적인 장치이자 필수품이죠. 무리하게 자녀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해도 도박을 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접속하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옆에서 보면, 도박이 아니라 게임하는 것 같죠. 사실 계좌번호를 확인하거나 아이의 옷차림이 바뀌었는지 보면 낌새를 알 수 있습니다. 값비싼 옷을 입었다면 보통 ‘친구한테 빌렸어’라고 해요. 부모님이 사실 확인을 잘 안 하니까요.

정 = SNS는 필수니까 스마트폰에 많이 의지하는 것 같아요. 과제를 하거나, 연락을 주고받는 데 꼭 필요하니까요. SNS에서 도박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요. 그래서 광고도 많은 것 같아요. 부모님 세대는 이런 SNS를 잘 안 해서 그런지 그런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서 = 청소년들이 심각하게 도박에 빠지는데도 우리 사회는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들도 수백만원 규모의 도박을 합니다. 우습게 보거나 무시하면 안 돼요. 보통 도박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파괴하면 결국 사회도 파멸되겠죠. 지금 이해할 수 없는 청소년범죄가 일어나는 건 5년 전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5년이 지나면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런 사회에서 부모들은 어떻게 안심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겠습니까.

정 = 결국 도박 중독 예방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조사된 것만 봐도 예방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이 많지 않아요. 학교 밖 청소년들을 교육하는 ‘꿈드림센터’에서 예방교육을 하지만 희망자에 한해서만 하죠. 학교 밖 청소년 모두가 꿈드림센터에 다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좀 더 효과적으로 예방교육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면 좋겠어요.

서 = 교육 효과를 내려면 전달력도 높여야 한다고 봅니다. 수십명 모아놓고 일방적으로 하는 교육은 효과가 없겠죠. 도박은 ‘학교폭력예방법’을 둔 폭력과 달리 법규정도 없고 교육부 소관도 아니어서 의무교육을 할 수 없습니다. 개별학교 의지가 없으면 예방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아이들이 ‘내가 굳이 왜 교육을 들어야 하냐’고 되묻기도 합니다. 교육을 받으면 도움이 된다는 걸 알려줘야 합니다. 교육 점수를 준다거나 상품을 주는 식으로 청소년 특성을 반영하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도박은 학교폭력과 같은 현행법에서 규정하는 청소년 문제가 아니다. 학교에서 매년 이뤄지는 전수조사 항목에 도박 중독을 묻는 문항도 없다. 청소년 도박 실태 조사를 위해 몇 가지 문항을 추가하려고 해도 부처 간 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실태를 파악하기 힘들다.

서 = 청소년들이 도박을 하게 된 건 어른들의 잘못입니다. 청소년들은 자신이 범죄자라고 생각해 곤란을 겪어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피해 아동으로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적인 문제를 정비해야 합니다. 사회의 관심도 커져야 해요. 한국 기업들이 10대들에게서 얻는 경제효과만큼 청소년들에게 혜택을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청소년들은 경험하고 싶은 게 있어도 돈이 없어서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영화나 야구를 무료로 보게 해주고, 여행도 보내주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해야 도박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 10대들 덕에 돈 버는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더 배려하면 좋겠습니다.


Today`s HOT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