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묵 “90년대생에게 ‘공정’은 가치·논리보다 감각적·반사적 반응에 가까워”

김민아 선임기자

‘K열풍’ 명암 입체적으로 분석한 ‘K를 생각한다’ 저자 임명묵

'K를 생각한다'의 저자 임명묵씨는 지난 9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한국의 능력주의는 일종의 ‘시험-지대주의’인 게 문제”라며 “일회적 시험이 아니라, 계속해서 능력을 측정하고 그에 맞춰 보상이 분배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K를 생각한다'의 저자 임명묵씨는 지난 9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한국의 능력주의는 일종의 ‘시험-지대주의’인 게 문제”라며 “일회적 시험이 아니라, 계속해서 능력을 측정하고 그에 맞춰 보상이 분배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불안·위축의 결과물로 개혁이든 특혜든 ‘시스템 교란’에 경계심

K방역, 자유주의 지키면서 안전·편의 지켜낸 것처럼 말하는 모순
자유와 편의성 등 가치 충돌 재연될 텐데 무엇 선택할지 생각해야

21세기 한국은 접두어 ‘K’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K팝, K드라마, K뷰티, K방역에 이어 K할매, K장녀까지….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매우 한국적인’ 그 무엇을 설명할 때 ‘K’는 유용하다. 1994년생 임명묵(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은 이 같은 ‘K열풍’의 명암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야심찬 작업에 도전했다. 그 결과물로 펴낸 'K를 생각한다'(사이드웨이)는 키워드 ‘K’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를 파헤친다. 임명묵은 K가 상징하는 자부심과 그 뒤편에 숨은 스트레스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우리 자신의 특질”이라고 말한다. 90년대생·코로나19 방역·민족주의와 다문화·86세대·입시와 교육 등 전혀 달라 보이는 다섯 가지 영역을 촘촘하게 연결시킨 그의 솜씨가 만만찮다. 책은 출간 한 달 만에 3쇄에 들어갔다. 출판가에서는 ‘지적 아이돌의 탄생’이라고 상찬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 9일 서울역 근처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임명묵 “90년대생에게 ‘공정’은 가치·논리보다 감각적·반사적 반응에 가까워”

- 책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호평을 기대했나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시운’을 탄 것 아닌가 싶어요. 요즘 ‘90년대생’이 화두이고, 청년정치에도 관심이 높아지다보니,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 5가지 개별적 주제들을 ‘K’란 키워드로 묶어내는 대담한 시도를 했습니다.

“원래는 그동안 매체에 기고해온 글들을 모아서 책을 내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처음부터 새로 쓰는 걸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2021년 한국이란 공간이 세계적으로도 유별나고 독특한 방식으로 변화를 진행시키고 있어서, 그런 측면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영역들을 골랐습니다.”

‘찐 90년대생’이 쓴 ‘90년대생론’은 특히 흥미롭다. 기성세대는 1990년대생을 보며, 개인주의적이고 절차적 공정을 최우선시하는 ‘다소 냉정한 세대’라는 인상비평을 해온 게 사실이다. 임명묵의 관점은 다르다. 90년대생의 공정은 가치와 논리보다는 느낌, 즉 ‘공정감’의 문제라고 본다. 90년대생은 자신들이 겪는 심리적 압박을 해소할 다른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시스템의 신뢰성에 강하게 매달리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 “90년대생이 원하는 것은 불안을 더는 키우지 않는 것과, 신뢰의 기반이 쓸려나가는 와중에도 신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90년대생이라고 특별히 공정에 철두철미하지는 않아요. 제도를 우회해서 혜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적극적으로 거부할까요. 70년대생이나 80년대생하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개인주의를 체화한 세대라고 보기도 어렵고요. 셀럽이나 인플루언서의 소셜미디어에 몰려가서 간섭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모습을 보이잖아요. 90년대생의 ‘공정’은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인, 스스로까지 규율할 수 있는 근대적 가치라기보다, 감각적·반사적·즉각적 반응에 가깝다고 봅니다. 심리적 불안과 위축의 결과물이에요. 90년대생은 국가 시스템이나 시험 제도에 대해선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인정하면서, 이 시스템을 허물지 말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진보의 개혁이든, 보수의 특혜든 시스템이 교란되는 걸 경계합니다.”

- ‘90년대생’ 담론이 오해하거나 간과하는 게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 ‘90년대생이 아니면 90년대생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86세대가 아니지만 86세대 이야기를 썼으니까요. 하지만 (기성세대가) 90년대생을 볼 때, 자기 관심사를 투영해서 보는 측면은 있는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 자녀와의 관계, 직장에서 신입 직원과의 관계 등에서 오는 ‘의아함’에 착안하는 거죠. 그리고 정치적 표심으로 나타난 결과물에 주목하고요. 저는 총체적 맥락에서 ‘90년대생의 심리적 모형’을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어떻게 심리를 표출하고 어떻게 행동하는가, 어떤 걸 즐기는가에 천착했습니다. 90년대생은 커뮤니티 문화에 익숙하고, 온라인에서 집단적으로 여론을 형성해 행동하고, 정치를 엔터테인먼트적으로 즐기는 등의 특성이 있습니다.”

임명묵은 ‘신화화’된 K방역에 대해서도 거리를 둔다. K방역의 성과 자체는 평가하면서도, 이를 자유·개방·투명성과 같은 자유주의 가치의 승리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세계적 팬데믹 위기에서 한국이 K방역을 바탕으로 좋은 성과를 낸 것은 인정합니다. 다만 K방역이 성공하니까 자유주의·민주주의를 지키면서 안전과 편의도 지켜낸 것처럼 말하는 건 모순이라고 생각해요. 뜯어보면 자유주의적 가치나 프라이버시 등을 상당 부분 억누르거나 희생함으로써 안전과 편의를 획득한 것이거든요. 앞으로 정보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또 다른 팬데믹 등 위기도 다시 찾아올 겁니다. 자유와 편의성 같은 가치들이 충돌하는 딜레마 상황도 재연될 텐데, 우리가 선택할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책의 제4장 ‘대한민국 386의 일대기’는 86세대의 위선적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상위 기득권 1%를 비난하면서도 그들을 동경하고 모방했던,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계층 세습에는 어떻게든 도덕적 면죄부를 주려는 상위 10%, 20%의 감수성에 질겁했다. 그들의 세습 프로젝트가 완료된다면, 각자의 계층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90년대생들은 미래에 이 사회에서 어떤 존재로 자리 잡게 될까?”

- ‘조국 사태’는 진행형입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과하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회고록을 냈습니다.

“한국인들의 강력한 정서 중 하나가 억압구도와 피해의식입니다. 세상은 억압자와 피억압자로 나뉘어 있다고 보는 거죠. 좌파든 우파든 보편적 정서입니다. 우파는 좌파를 두고 엘리트 기득권이라 비판하고, 좌파는 재벌·검찰·보수언론이 문제라고 하죠. 조국 사태도 이런 의식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파에선 타락한 엘리트 기득권으로 공격하고, 좌파에선 진짜 보수 기득권에 맞서다 억압당한 피해자로 바라봅니다. 진영 간에 격렬한 무한투쟁이 벌어지고, 몰입하기 좋은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조국 전 장관을 ‘아이돌’로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회고록은 ‘굿즈’(아이돌과 관련된 상품들)라고 보면 되고요.”

책의 마지막 장 ‘입시, 그리고 교육의 본질’은 뜨거운 쟁점인 ‘능력주의’를 다룬다. 임명묵은 “현재의 능력주의는 진정한 능력주의가 아니라 일종의 시험-지대주의인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능력주의의 함정에 대해 고민하는 것보다, 능력주의의 진정한 이상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한다. 구체적 방법을 묻자 그는 능력주의의 역사적 뿌리로 거슬러 올라갔다.

“1950년대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능력주의)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마이클 영이나,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촉구하는 마이클 샌델이나 모두 서구 학자들입니다. 서구는 현대적 메리토크라시를 받아들인 역사가 짧습니다. 오랫동안 귀족정이 주류였어요. 공동체적 덕성을 갖춘 귀족 엘리트가 기층 민중까지 보듬는 구조이지요. 반면 동아시아는 1000년 전부터 ‘과거(科擧)’라는 시험에 기반한 능력주의 시스템을 갖고 있었습니다. 서구에 시험 시스템이 도입된 건 동인도회사를 통해서예요. 외려 동아시아에서 시험 시스템을 수출한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서구 석학들의 이론을 근거로 능력주의를 비판하면 사람들에게 잘 와닿지 않게 되지요. 소 팔아 자식 시험공부시켜 출세하게 만드는 게 영원한 로망인데 말이죠. 동아시아에서 능력주의를 걷어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능력주의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는 쪽이 낫습니다.”

- 지금은 시험이라는 허들을 한두 번 넘으면 영원히 혜택을 누리는 상황인데요.

“과거제의 유산이 안 좋게 남은 건 문제입니다. 시험 한번 합격하면 놀아도 된다는, 한국의 능력주의는 ‘과거주의’죠. 역전의 가능성은 줘야 합니다. 일회적 시험이 아니라, 계속해서 스스로의 능력을 측정하고 그에 맞춰 보상이 유연히 분배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능력을 측정하는 데 기술적 한계가 있어서 대학 학벌이나 학점을 근거로 삼았지만,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면 보다 투명하게 능력을 측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임명묵은 오는 8월 학부를 졸업한다. 대학원에 지원했고, 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책은 계속 쓸 계획이다.

- 출간 계획이 잡힌 책이 있습니까.

“'K를 생각한다'를 펴내기 전에 19세기의 ‘그레이트 게임’(영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를 둘러싸고 벌인 패권 경쟁)에 대해 먼저 쓰고 있었어요. 이 책을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는 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문화와 관련된 책도 준비 중입니다. 저희 부모님이 조치원에서 식당을 운영하셨는데, 그때 이주민 여성들을 많이 고용했어요. 그분들을 인터뷰하고, 또 그분들을 매개로 만나게 된 분들까지 인터뷰해서 책을 내려고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를 언급할 때 배타성·차별·혐오 등의 비판이 뒤따르는데요. 제가 관찰하고 경험한 다문화는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포용하고 동화되는 모습을 보아왔거든요. 개인적으로, 직접 관찰해서 현장감 있게 이야기를 풀어주는 작업을 좋아합니다. 편견 없이 전달할 수 있는 매개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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