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낸 차별금지법…14년 만에 국회 문턱 넘을까

이혜리 기자
차별금지법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차별금지법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 24명이 ‘차별 금지’에 관한 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이 이 법안을 내놓은 것은 8년 만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10만명 요건을 채운 가운데 차별금지법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 등은 지난 1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평등에 관한 법률안(평등법)’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박용진·권인숙·박주민·이재정·이탄희 등 민주당 의원들과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 김홍걸 무소속 의원 등이 발의에 참여했다.

법안은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로 인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하며, 차별을 예방하고 실질적 평등을 구현해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차별금지 사유로는 성별·장애·병력·나이·출신 국가·출신 민족·인종·피부색·신체조건·혼인 여부·종교·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등이 명시됐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직접차별’ 외에 ‘간접차별’도 금지되고, 차별한 사람에게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각종 법령과 정책에 차별 금지의 취지를 반영해야 하고, 행정부와 입법부·사법부는 차별시정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해 시행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의 입법 시도는 지난 14년간 여러 차례 있었지만 보수 기독교 단체들의 반대로 번번이 좌초됐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는데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13년엔 김한길·최원식 민주당 의원 등이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다가 자진 철회했다.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 등 내용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21대 국회 들어 지난해 6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 등이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지만 1년간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179개 여성시민사회단체 주최로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10만 행동 돌입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지 1년이 지나도록 국회는 법 제정을 위한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10만 행동에 돌입해 국민동의청원을 넘어 법 제정까지 굳건히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윤중 기자

179개 여성시민사회단체 주최로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10만 행동 돌입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지 1년이 지나도록 국회는 법 제정을 위한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10만 행동에 돌입해 국민동의청원을 넘어 법 제정까지 굳건히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윤중 기자

올해 들어 스스로 트랜스젠더라고 밝힌 첫 직업 군인 변희수 전 육군 하사를 비롯해 성소수자들이 잇달아 사망하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 14일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10만명 요건을 달성했다. 이 청원은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인 20대 여성 A씨가 지난달 올렸다.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2020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10명 중 9명(88.5%) 가량이 차별 금지법 제정에 찬성했다. 반대는 11.5%에 불과했다.

이상민 의원은 “(평등법 제정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헌법을 좀 더 구체화한 것일 뿐”이라며 “민주당 지도부에 법 추진을 당론으로 정해달라고 요청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대선 주자들을 향해서는 “저희가 평등법에 대한 입장을 요구할 것”이라며 “민주당 후보로 나선다면 그 정도의 정체성은 가져야 한다”고 했다. 헌법 제11조 1항은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시민의 요구에 민주당에서 응답이 시작됐다”며 이번 평등법 발의를 환영했다. 연대는 “이후 법 제정을 위한 토론은 차별받는 사람의 위치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차별받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권리를 더 잘 주장할 수 있을 것인지, 차별의 판단과 시정이 차별받은 사람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변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민주당은 21대 국회가 차별금지법·평등법에 대한 공감대 위에서 연내 법 제정에 이를 수 있도록 지금 바로 적극적 행동에 나서라”며 “국민의힘은 제1야당으로서 법 제정을 바라는 시민들의 요구에 진지하게 응답하라”고 했다.

윤지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도 “더 이상 평등을 기다릴 수 없다”며 “한국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한다면 국제인권법과 국제인권기준에 따른 국가 의무를 다할 뿐만 아니라 아시아 국가 중 차별금지 입법화를 개척하는 선도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31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이상민·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 등과 함께 평등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달 31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이상민·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 등과 함께 평등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 대선 주자로는 유일하게 법안 발의에 참여한 박용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집권여당이 중심되어 법 제정을 목표로 평등법을 출발시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평등법은 대한민국의 가치를 한 단계 높이는 결과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은 17일 “평등법이 민주당 당론으로 채택돼야 한다”며 “그게 민주당의 진보적 개혁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길이자, 법안 통과 과정에 가해질 고질적인 반대와 외압을 함께 이겨내는 길”이라고 밝혔다.

장혜영 의원은 “차별금지법 법사위 법안소위 심사를 6월 임시국회에서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야권 대선후보들은 조속히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BBS라디오 인터뷰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보수 진영 내에서는 차별금지에 관한 논의가 기독교적 입장과 맞물려 혼재돼 있다고 설명하면서 “아직까지 사회적 합의가 충분치 않고 대한민국 국민 상당수가 아직까지 이 법안에 우려하고 있다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보수 진영이 젠더이슈 다뤄서 지지세를 획득한 것처럼 차별에 대한 부분도 폭넓게 다뤄야 한다는 원칙론에는 공감한다”고 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21주년 기념 토론회 후 기자들이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을 묻자 “나도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윤 전 총장이 먼저 대답한 다음에 내가 하는 걸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에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윤석열을 방패 삼아 몸을 사리는 모습은 지사님답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 지사는 지난 2017년 대선 때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2012년 대선 때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때는 공약에 담지 않았다.

윤 전 총장은 2019년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서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우리 사회에 부당한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면서도 “다만 차별금지법 제정 여부, 차별금지 사유에 관하여는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 논의 과정에서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성소수자에 관해서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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