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성장은 있고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없는 기후위기대응법?

김한솔 기자

유럽연합(EU)은 지난 28일(현지시간)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를 명시한 ‘유럽기후법(European Climate Law)’을 공식 승인했다. 법에는 EU의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최소 55% 감축하고, 2050년까지는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가 담겼다. ‘탄소중립’이 단순한 선언이 아닌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된 것이다.

국내에서도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기본법 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29일 현재까지 국회에서 발의된 기후위기대응 법안은 모두 7개다. 더불어민주당 안호영·이소영·이수진 의원, 국민의힘 유의동·임이자 의원, 정의당 강은미·심상정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모든 법안의 목적은 기후위기대응과 2050 탄소중립 실현이지만,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환경부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문위원실과 이들 7개 법안을 검토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정부안으로 제시했다. 기후위기대응법은 향후 우리나라의 기후환경정책을 결정하는 기본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지금까지 환노위 환경법안소위에서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주요 쟁점을 짚어봤다.

정부의 기후위기대응을 촉구하는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들의 시위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부의 기후위기대응을 촉구하는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들의 시위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MB 때 만든 녹색성장법 ‘폐지 vs 유지’

지난 28일 열린 환경소위에서 가장 먼저 쟁점이 된 것은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녹색성장법)의 폐지 여부였다. 이 법은 이명박 정부(MB) 때인 2010년 제정됐다. 녹색성장법은 제1조에 “경제와 환경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저탄소 녹색성장에 필요한 기반 조성” “녹색기술과 녹색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 도모, 저탄소 사회 구현”을 법의 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름에 ‘녹색’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법의 목적부터 ‘환경’보다는 ‘경제’가 앞서고 내용적으로도 ‘경제 발전’과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대규모 토목 공사 프로젝트인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면서 환경파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소영 민주당·강은미 정의당 의원안은 녹색성장법 폐지를 전제로 한다. 반면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녹색성장법을 폐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안은 법안명에 녹색성장이 들어가 있고, 내용적으로도 녹색성장법을 일부 차용했다.

강 의원은 소위에서 “녹색성장이라고 하면 결국은 ‘성장’의 패러다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제목에 ‘녹색성장’이 들어가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녹색성장법을 만든) 그 당시 녹색성장이 실제로 녹색세탁, 녹색분칠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지금 시기에 성장 프레임을 계속 가져가야 하는 것이냐”고 했다. 이에 임 의원은 “이 법(녹색성장법)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탄소 넷제로를 할 수 있다. 왜 폐지시켜야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기존 법에 변화된 상황을 반영해 개정하면 된다는 취지다.

환경부는 “당면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정책수단으로 탄소중립 사회 이행과 녹색성장을 제시”한다는 입장이다.

2017년 촬영된 낙동강 하류 지점에서 녹조가 발생한 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7년 촬영된 낙동강 하류 지점에서 녹조가 발생한 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온실가스 감축목표 명시 여부

두번째 쟁점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의 ‘달성 의무’와 이를 위한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법에 명시할지 여부다. 이소영·이수진 의원안과 유의동·임이자 의원안, 강은미 의원안에는 정부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도록 ‘의무화’ 하는 내용이 담겼다. 반면 정부안은 ‘의무화’ 하는 대신 ‘국가비전’에 포함하도록 완화했다.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여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고, 환경과 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국가비전으로 한다”는 것이다.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법에 명시할지, 또 그 이행상황을 점검하는 것까지 법에 포함시킬지 여부도 논의 대상이다.

안호영·임이자 의원안에는 NDC 시점과 수치는 대통령령에 위임하도록 했고, 이소영 의원안은 2030년까지의 수치는 대통령령에 위임하도록 했다. 나머지 안은 2030년까지 구체적인 수치를 포함하고 있다. 이수진 의원안은 2017년 대비 50%(약 3억5485만t), 강은미 의원안은 2010년 대비 50%(약 3억2815만t), 유의동 의원안은 2017년 대비 24.4%(5억3653만t) 등이다. 안호영·유의동 의원안을 제외한 나머지 안은 이 목표를 ‘5년 마다 재검토’ 한다고 되어있다. 정부안에는 NDC 시점과 수치는 대통령령에 위임하되, 5년 마다 재검토 한다고 되어있다.

환경부가 시점과 수치를 대통령령에 위임하자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파리협정에서 NDC를 5년마다 제출하라고 되어있지만, 그 목표를 ‘이행하는 기간’에 대해서는 아직 협상이 타결되지 않은만큼 달성 시기를 법에 명시하는게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목표 상향’을 위해서라도 법에 명시하지 않는게 낫다는 이유도 들었다. 환경부는 “올해와 같이 기후위기의 시급성을 고려해 5년 주기 내에 추가 상향을 요구하는 국제적 분위기가 형성될 경우, 법률에 중장기 감축목표를 명시하면 정부가 목표를 상향 조정하고자 해도 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해 본회의에서 의결되기 전까지는 국제사회에 감축목표 발표가 어렵다”고 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과 정의당 강은미 의원 등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환경소위가 열린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후위기 외면하는 제2의 녹색성장법 반대한다’ 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위기비상행동과 정의당 강은미 의원 등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환경소위가 열린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후위기 외면하는 제2의 녹색성장법 반대한다’ 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로운 전환 vs 공정한 전환

환경부가 소위에 제출한 통합의견에는 현재 혼용돼 쓰이고 있는 ‘정의로운 전환’과 ‘공정한 전환’에 대한 용어 정리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담겼다. 영어의 ‘Just Transition’이 번역된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위기에 대응해 어떤 지역이나 업종에서 급속한 산업구조 전환이 일어날 때, 과정과 결과가 모두에게 ‘정의로워야’ 한다는 개념이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는데, 지난해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 등 주요 발표 과정에서는 ‘공정한 전환’이라는 용어가 주로 쓰였다. 현재 대통령직속 탄소중립위원회 내의 분과명도 ‘공정전환분과’로 되어있다. 환경부는 통합의견에서 “환경정책의 중요 원칙인 ‘환경정의’로부터 ‘기후정의’ 용어를 도출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구체화하기 위한 개념으로서 ‘정의로운 전환’ 용어를 제안한다”고 했다.

■환경단체 “녹색성장 용어 빼고, 목표도 명시해야”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지난 28일 정부안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법안명에 ‘녹색성장’이 들어가는데 동의할 수 없고, 목표도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녹색성장은 기본법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말이 아니라, 국민과 사회에 매우 잘못된 신호를 주는 단어다. 그야말로 ‘계속 하던대로’ 해도 좋고, 실패해도 좋다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또 “(목표를 명시하지 않는 것이) 보다 적극적인 2030년 NDC 향상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은 궁색하다”며 “최소한의 목표 규정을 하고, 상향 여지를 남겨두는 방법들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위는 내달 6일 계속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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