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공군 김 하사의 죽음 - 군 수사기록 1600쪽 입수

이 중사, 김 하사, 최 일병···제20전투비행단 연이은 비극, 왜

조해람·김혜리 기자

“서산에서 젊은이들 다 죽게 생겼다고요 지금….” 지난달 28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분노 섞인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2019년 2월 충남 서산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김모 하사의 아버지가 같은 부대에서 지난 5월 성추행 피해를 입고 세상을 떠난 이모 중사의 아버지를 만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리였다. 이 중사의 유족이 이날 첫 기자회견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이 중사의 아버지는 사연을 듣고 “20비(제20전투비행단) 안되겠네!”라며 화를 냈다.

이 병원 안치실, 이 중사의 바로 옆 자리에는 3년째 안치실을 떠나지 못하는 또다른 청년이 누워 있다. 2018년 11월 같은 비행단에서 행정병으로 복무하다 상관들의 괴롭힘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최모 일병이다. 제20전투비행단에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은 이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죽음이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군 성폭력 사망사건 피해자 이모 중사 유족들이 지난달 28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석우 기자

공군 성폭력 사망사건 피해자 이모 중사 유족들이 지난달 28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석우 기자

청년들이 연이어 목숨을 잃는데도 군 수사기관의 수사는 늘 부실하다. 김 하사의 사망사고를 수사한 제20전투비행단 헌병대대·보통검찰부는 부대 내 괴롭힘 정황을 대부분 파악하고도 사건을 단순 변사로 종결했다(관련기사▶[단독]이 중사 목숨 앗아간 공군 20전투비행단, 2년 전에도 ‘억울한 죽음’). 책임자 처벌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연이은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평소 내성적이고 소심”…개인 성격을 왜?

군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건·사고를 축소시키거나 처벌을 무마한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제20전투비행단 김 하사 사건 수사기록을 보면, 군 수사기관은 결론 부분에서 김 하사가 당한 부조리를 열거하다가 개인적인 문제를 첨부한다. 김 하사가 2019년 초 알게 된 한 여성에게 그해 2월17일쯤 메신저로 마음을 표시했다가 거절당한 일이 스트레스를 키웠다는 것이다. 제20전투비행단 헌병대대는 “여성의 거절 후 스트레스가 가중돼 스스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다. 보통검찰부는 “평소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말을 덧붙였다. 사망자의 개인적 특성을 강조한 것이다.

수사기록에는 김 하사가 이성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은 정황과 주변인 진술 등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군조차 그것이 사망 원인의 극히 일부에 그친다고 인정했다. “오로지 개인적인 원인으로만 사망한 것은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는 것이다. 이성 문제가 좌절되기 전에도 김 하사는 부대에서 겪은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감으로 자살을 결심하였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고 헌병은 판단했다. 헌병이 확보한 증거 중에는 김 하사가 해당 여성에게 거절당하기 전부터 유튜브나 인터넷 포털 등에 극단적 선택과 관련된 검색을 한 기록이 있다. 김 하사는 2018년 6월30일 ‘회사 따돌림’ ‘직장 인간관계’를 검색하기도 했다.

‘증거 불충분’도 사건을 축소하는 수단이다. 장교들의 폭언과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2018년 11월26일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최 일병 사건에서 군은 “개인적인 원인 등에 의해 사망한 것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잦은 질책 및 언어폭력으로 힘들어 한 상태에서 스트레스, 심적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도 모욕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했다. 윤모 소위가 서울 4년제 대학생이던 최 일병을 두고 “OO대 학생 맞냐?”며 비아냥거리고, 실수를 하면 휴가를 자르겠다고 윽박지른 정황을 모두 확보한 채였다. 1심 재판부는 윤 소위에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협박 혐의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형량을 유지했지만 협박 혐의를 뺐다.

제20전투비행단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최 일병이 생전 친구에게 불만을 토로한 카카오톡 대화. 최 일병 유족 측 제공

제20전투비행단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최 일병이 생전 친구에게 불만을 토로한 카카오톡 대화. 최 일병 유족 측 제공

협박 혐의가 빠지는 데는 군 부대 차원의 공모가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2심 재판에서 9명의 병사는 최 일병이 당한 부조리를 증언한 동료를 비난하는 사실관계확인서를 냈고, 이 증언은 탄핵됐다. 최 일병의 유족은 이들이 증언을 탄핵하기 위해 공모했다고 의심한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군은 ‘재판 절차가 모두 끝나야 한다’며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를 미루고 있다.

■‘고인 물’ 군대의 ‘닫힌 문’…사건은 조용히 묻힌다

연이은 비극의 뒤에는 군 특유의 강압적인 분위기가 있다. 김 하사 사건 수사기록에는 김 하사가 근무하던 관제탑의 강압적인 분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 하사와 같이 근무하던 이들은 관제탑 업무가 매우 힘들며 선임 관제사들의 감시·질책도 부담이라고 헌병에 진술했다. 전역한 한 부사관은 “국지관제사(항공기의 이·착륙과 활주로 운행 등을 담당)는 몇 사람 빼고는 다 기피한다. 뒤에서 관제탑장 등이 지켜보며 뭐라 할 걸 뻔히 아는데 왜 욕 먹으며 앉아있겠나”라고 진술했다. 헌병대대는 모든 관제사들이 관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진술했다.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부대 내의 문제점은 밖으로 알려지지 못한다. 심리검사도 형식적으로 이뤄져 위험 요인을 조기에 발견할 수 없다. 김 하사 수사기록에서 전역한 부사관은 “(심리검사에) 솔직하게 답해서 기록이 이상하게 나오면 위에서 전화한다, 그래서 그냥 다 좋게 찍는다”고 진술했다. 최 일병의 경우 사망 전 진행한 검사에서 ‘지속적으로 괴롭힘 당하고 있다’고 체크하는 등 스트레스를 분명하게 드러냈음에도 부대는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피해자를 회유·협박하며 ‘식구’인 소속 구성원의 범죄를 덮기도 한다. 성추행 피해를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이 중사의 상관들은 이 중사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즉각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면서 한 번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회유하고, 당시 이 중사의 남자친구에게까지 연락해 ‘가해자가 불쌍하지 않냐’며 신고를 무마하려 했다. 한 상관은 1년 전 성추행을 당한 이 중사에게 ‘문제가 알려지면 가해자가 연금을 못 받게 된다’며 입막음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 중사를 회유·협박하며 2차 가해한 두 상관은 지난달 30일 구속기소됐다.

지난달 12일 공군 부사관 성추행 피해 사망 사건 관련 2차 가해 혐의를 받는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노 모 준위(왼쪽)와 노 모 상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상사·준위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12일 공군 부사관 성추행 피해 사망 사건 관련 2차 가해 혐의를 받는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노 모 준위(왼쪽)와 노 모 상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상사·준위 모습. 연합뉴스

■자기 범죄를 자기가 수사·재판하는 군대…“해체 수준으로 문제 뿌리뽑자”

전문가들은 군 수사기관의 ‘제 식구 감싸기’식 부실수사와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수사를 담당하는 군 수사기관과 범죄가 발생한 군부대가 결국은 같은 조직이라는 것이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군에서의 수사나 재판이 지휘관으로부터 독립이 안 돼 있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공정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 군이 안에서 일어난 문제를 자기 스스로 찾아내고, 자기 스스로 재판해서 유·무죄 여부를 따지고 책임을 묻는 건 잘못됐다”며 “군 사법체계를 민간으로 이전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했다.

군 법무관 출신인 김정민 변호사는 “사단이나 비행단에 수사권한을 주면 사단장이나 비행단장의 요구가 투영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훌륭한 수사관이라도 자신이 소속된 사단장이나 비행단장이 대상이라면 수사기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사건이 터졌을 때 적당히 무마하고 피해를 최소화해야 일을 잘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제대로 된 수사)을 열심히 해봐야 욕 먹는데 누가 열심히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군 뿐만이 아니라 군대가 다 마찬가지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알고, 어쩔 수 없이 정에 이끌리고 해서 처벌이나 사건처리가 안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군에서 자녀를 잃은 유족들도 철저한 수사와 가해자 처벌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 하사 아버지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수사해서 재발방지해야 할 사람들이 자꾸 관행만 따진다. 억울한 사람만 계속 나오고, 똑같은 패턴이 재발된다”며 “깊이있는 수사를 안 하고 빨리 덮으려고만 하니까 이 중사 사건이 또 터진 것이다. 이 기회에 해체 수준으로 조사해서 (범죄의) 잔재를 뿌리뽑아야 한다”고 했다. 최 일병의 어머니 송수현씨는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해야 군부대에 피해자가 안 나온다”며 “가해자의 가해를 축소하고, 가해자 수를 줄이고, 사건의 크기가 커지지 않게 하는 등 ‘제 식구 감싸기’ 때문에 가해자들이 더 마음 놓고 아랫사람을 괴롭힌다”고 했다.

송씨는 언론 인터뷰를 그만두고 싶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자료와 사진을 뒤질 때마다 아들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그래도 언론 인터뷰를 계속 하겠다고 한다. “가만히 있으면 아들의 사연이 묻힐까봐 인터뷰를 멈출 수 없어요. 제가 인터뷰를 더는 안 할 수 있게 처벌이 제대로 마무리되길 바랍니다.”


Today`s HOT
휴전 수용 소식에 박수 치는 로잔대 학생들 침수된 아레나 두 그레미우 경기장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해리슨 튤립 축제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