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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IOC 위원, “IOC푸대접? 그런건 없다”

박병률 기자
유승민/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 제공

유승민/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 제공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겸 대한탁구협회장은 2020 도쿄올림픽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다. 유 위원에게 올림픽에 대한 기억은 남다르다. 그가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당시 세계최강이던 중국의 왕하오 선수를 꺾으며 환호하던 장면은 한국 스포츠사에 명장면으로 남았다. 신유빈 선수가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지만, 탁구는 도쿄올림픽에서도 노메달에 그쳤다. 유 위원에게 도쿄올림픽과 우리 탁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유 위원이 귀국한 다음날인 8월 10일 아침 전화로 진행됐다.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 등 20개의 메달을 땄다. 성적이 좋지 않다는 평도 있지만 사실 예상했던 수준 아닌가.

“성적으로만 놓고 보면 예상했던 언저리다. 다만 메달 기대종목에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게 대중적인 표현일 것이다. 팬데믹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올림픽이 1년 연기되면서 선수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방역지침을 지키고 제한적 상황에서 훈련했다. 어느 때보다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게다가 외교적인 문제로 사회 곳곳에서 보이콧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올림픽이) 좋은 이미지보다 안 좋은 이미지가 형성되면서 선수와 지도자들이 불안해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올림픽이 시작되니 그런 것들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선수들의 투혼, 열정, 감동적인 모습, 페어플레이 정신 등이 국민에게 다시 한 번 어필하면서 올림픽과 스포츠의 위대함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귀국할 때 공항에 몰려온 수많은 인파를 봤다. 선수들이 정말 진심으로 올림픽에 임했기 때문에 이런 게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과거에 비해 메달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도 많이 바뀐 것 같다.

“메달보다는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더 중요해졌다. 왜냐하면 국민을 대표해 나가는 국가대표 선수들이니까. 또 선수 개개인의 스토리, 선수가 준비해온 과정이 조금 더 깊숙하게 어필이 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성적이 표면적으로 먼저 나왔지만, 지금은 성적이 좋더라도 매너 부분, 열정적인 부분이 부족하면 때로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선수들의 분위기가 바뀌고 점차 성숙돼 가고 있다.”

-현실적으로 메달을 못 따면 연금이나 병역 문제에 부딪히지 않나.

“선수들은 올림픽에 갈 때 연금, 병역, 포상금을 염두에 두고 가지는 않는다. 올림픽이란 무대는 꿈의 무대다. 그 무대에서 자기가 준비한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게 선수들의 목표다. 그 결과, 이겼을 때 그만큼 추후 보상이 따르는 것으로 생각한다. 제가 선수 때도 (보상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연금·병역 혜택 등은) 끝나고 보상, 플러스알파다. 다만 성적이 안 나오면 탁구협회 등 경기단체는 숙제가 좀 많아진다. 선수들의 국제경쟁력은 협회 운영하는 데 또 하나의 성과지표다.”

IOC 선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 제공

IOC 선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 제공

-올림픽에서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붐이 일었다가 6개월쯤 지나면 가라앉지 않았나. 엘리트 체육의 단기성과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

“요즘은 워낙 다양하게 즐길거리가 많아 예전처럼 올림픽 임팩트가 지속되는 기간이 짧아진 것 같다. 다만 올림픽이 끝나고도 경기단체마다 국제대회가 있고,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 등 계속 이어진다. 올림픽은 협회나 경기단체, 선수들이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체육계만 열심히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체육계와 기업의 후원, 정책적 뒷받침이 삼위일체가 돼 관심과 지원이 지속적으로 돼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정치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기업후원이 위축됐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 기업들의 지원이 줄어들었나.

“줄고 늘고는 경기단체 회장의 능력의 차이도 있다. 확실한 것은 체육계에 여러 안 좋은 이슈로 인해 기업들이 후원하는 잣대가 높아졌다. 예전처럼 관행적으로 후원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가지를 꼼꼼히 들여다본다. 도쿄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진정성이 어필하는 부분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것들이 정착되면 기업후원도 조금 더 활발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엘리트 체육 대신 생활체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체육계 내부의 여러 안 좋은 일로 인해 체육계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외부로부터 많았다. 이게 일정 정도 엘리트선수 육성 위축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신유빈 선수가 고등학교에 안 가고 실업으로 바로 갔다. 그 이유는 중학교 3학년 말에 종합선수권이라는 가장 권위 있는 대회가 열렸지만 국제대회 출전 때문에 수업일수가 부족해 대회에 나갈 수가 없었다. 황선우, 김제덕, 여서정 선수 등 또래 선수들이라면 비슷한 고민이 있을 것이다. (선수들의 학습권 배제에 대해) 무작정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되지만 이들이 전문스포츠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전문성을 인정해 좀더 융통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엘리트선수로 등록하는 수도 줄고 있다. 스포츠클럽을 통한 육성 등 다양한 방향을 제시하는 데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 생활체육과 엘리트 체육이 함께 발전하면서 균형을 맞출 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된다. 어떤 정책 하나가 발전해 하나가 소외되면 급격히 균형이 깨어질 수 있다.”

-유튜브를 보니 탁구클럽에서 원 포인트 레슨도 많이 하던데.

“탁구는 생활체육이 가장 발전한 종목 중 하나다. 생활체육에서의 관심과 응원, 생활체육 인프라는 탁구발전에 도움이 된다. 예전에는 덩치가 좋거나 달리기 잘하면 학교에서 운동시켰다. 당시는 한반에 5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었으니까 신체조건 좋은 아이들을 찾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하지만 지금은 반도 몇개 되지 않고, 한반에 30명이 안 된다. 다만 초등학생 대상으로 장래희망을 물으면 항상 운동선수가 1·2위 한다. 운동선수는 누구나 꿈을 가질 수 있는 친숙한 분야다. 이런 점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일선에서 들어보니 농구, 배구 등은 선수가 정말 부족하다고 하던데.

“팀스포츠는 선수가 부족해 시합을 못 할 정도다. 정책의 변화 때문이라기보다 인구감소로 아이들이 줄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탁구만 해도 2세들이 많이 한다. 아빠·엄마가 생활체육인인 경우가 많다. 일반인의 자녀가 선수가 되는 것은 정말 적어졌다.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거다. 그래서 유망주 발굴과 신인육성에 어려움이 있다.”

-우리는 과거 올림픽 성적을 내기는 어렵다는 얘기인가.

“저출산으로 인해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든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도 좋은 신인이 많이 나오지 않았나. 이런 신인들이 나오면 누군가는 이들을 보고 또 운동을 시작한다. 이런 신인들이 나왔을 때 반짝 끝나지 않도록 엘리트선수 육성을 위한 전문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전략적으로 접근했으면 싶다. 엘리트 전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하자는 거다. 유망주에 대한 장학금 지원사업, 해외 전지훈련이나 해외경기를 뛰게 해주는 융통성 있는 정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되면 어려운 상황임에도 유망주는 지속적으로 발굴될 수 있다.”

한국 탁구는 2012 런던올림픽 남자 단체전 이후 메달과는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탁구는 2012 런던올림픽 남자 단체전 이후 메달과는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에 선수촌 플래카드 등으로 IOC랑 마찰이 좀 있었다. IOC위원으로서 이 사건을 어떻게 봤나.

“특정 외교적인 부분은 다 함께 고민하고 해결할 부분을 찾아봐야 한다. 내 생각에는 대한체육회가 대체로 적절하게 대처했다. IOC랑 국가 차원의 문제가 생기면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에서 대표성을 갖고 나서야 하는데 우리는 그게 대한체육회다. 물론 나나 또 다른 IOC위원인 이기흥 대한체육회회장이 IOC에 레터를 보내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도쿄올림픽 때 IOC가 한 것을 보면 한국이 푸대접받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

“푸대접? 그런 건 없다. 다 같은 조건이다. 대한민국이 푸대접 받았다면 예전 남북단일팀 구성이나 평창동계올림픽 개최가 이뤄졌겠나. IOC에서도 한국에 대해서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다. 이번에 일부 논란이 좀 있긴 했지만, 우리가 차별을 받는다거나 하는 것은 전혀 없다.”

-탁구 얘기 좀 해야겠다. 2012 런던올림픽 이후 메달이 없다. 원인이 뭘까.

“우선은 중국이 워낙 강해졌다. 일본은 도쿄올림픽을 겨냥해 10년 전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대대적 투자가 있었다. 중국 선수들을 귀화시켜 경기에 내보냈고, 중국 출신 지도자들도 적절히 활용했다. 우리랑 일본, 중국과는 탁구선수 수도 크게 차이가 난다. 그러다 보니 국내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내에서 대표선발전을 하면 매번 만나던 선수를 또 만난다. 실업 선수로 등록된 수가 100명이 채 안 되니 경기가 돌고 돈다. 일본은 몇만명 수준이다.

두 번째는 탁구협회 차원에서 다양한 지원을 해야 하는데, 그게 부족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탁구가 침체기에 있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우리가 메달을 못 땄을 뿐 1회전에 탈락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올림픽은 한게임 승부다 보니 그렇게 보일 수 있는데, 잘 보완해 준비하면 된다.”

-탁구의 국내경쟁력을 높이려면 국내 프로리그도 필요할 것 같다.

“지금 준비하고 있다. 빠르면 올해 말, 내년 초라도 프로리그를 도입해 선수들이 계속 경기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려 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올림픽에 선수로, IOC위원으로 참가했다. 올림픽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 체감하나.

“IOC위원의 시각에서 보면 전체적으로 올림픽이 굉장히 젊어지고 있다. 열두 살짜리 메달리스트도 나왔고 종목도 스케이트보드, 스포츠클라이밍, 서핑 등이 추가됐다. 디지털화도 많이 진행됐다. 올림픽 관련 뷰어 수가 굉장히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관중이 입장하지 못한 게 아쉽지만, 디지털 세대가 올림픽에 관심을 갖는 데는 성공했다. 전체적으로 이렇게 되다 보니 올림픽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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